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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xley Oct 16. 2023

사람의 기질은 바뀌지 않고 나의 기질은 충동을 추구한다

  어제는 갑자기 홀로 번화가 근처의 이자카야에 가 잔을 비웠다. 오늘은 충동에 흠씬 젖어 두 눈과 두 귀를 막은 채로 제주행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지금껏 충동으로 저지른 일이 많다. 충동적으로 국문학과를 택했고, 충동적으로 고백했고, 충동적으로 자취를 시작하고, 충동적으로 책을 썼다. 뭐, 그렇게 충동적으로 여러 일을 벌였다.      



  과거에는 충동이 두려웠다. 행여 좋지 못한 충동이 나를 죽이게 될까 봐. 설상가상으로 당시의 나는 그리 건강하지 못한 인간이었기에, 그와 같은 걱정이 드는 건 꽤 당연한 전개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는 건강하다. 인간 이진솔은 수년 동안의 치료를 통해 꽤 많이 건강을 회복했고, 웬만한 불안으로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심지가 단단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충동을 즐기게 됐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말해 즐긴다기보다는 구태여 피하지 않는 수준이다. 뒷일은 이제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언젠가는 칵테일바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충동적으로 2차를 가지기도 했고, 바보처럼 친한 척을 하기도 했다. 굳이 언급하지 않을 만한 일들도 있었다. 자연스레 나는 지금의 충동이 주는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고서 더한 수준의 충동을 갈급하게 되었다.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와 다를 게 없었다.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 애정 결핍이 어떤 수준의 애정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충동 결핍에 시달리게 되었다. 자꾸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충동적으로 시작하게 된 내 모습을 볼 때, 어쩌면 나의 충동 결핍에는 애정 결핍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외의 여러 결핍이 포함되었을지도 모르지.

  이런 걱정스러운 말을 애써 내뱉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다. 사람의 기질은 바뀌지 않고, 나의 기질은 충동을 추구하니깐. 솔직히 말해 크게 걱정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기다려진다.      



  나는 소극적인 인간이다. 지금까지 벌여온 충동적인 일들을 제외하면, 그리 크게 이루어낸 일도 없다. 충동이 지금까지의 이진솔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픈 마음은 없다. ‘그래야 할까?’라는 걱정은 느껴져도, 걱정은 걱정에 그칠 뿐이다. 충동이 나를 만들었다. 나의 커리어와 나의 현재를 만들었다. 다음날의 나를 만들기도 할 테다.      



  그렇기에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다. 그저 나의 충동이 최대한 자주 나를 옳은 길로 이끌기를 말이다. 지금까지의 이진솔을 봐왔을 때, 나는 나의 충동을 이겨낼 수 없으므로. 막을 수 없고 조절할 수 없다면, 어쩌겠습니까. 즐기는 수밖에.     



  수요일에 있을 제주 여행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풍광을 많이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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