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스물다섯 살이 되기를 바란다. 어서 서른 살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서 더 큰 어른이 되길 바라는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라면, 그저 어린 애 취급이 싫은지도. 아무튼, 어서 나이를 먹어 적당한 어른이 되고 싶다. 적당한 어른이 된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 아무튼, 현재의 스물셋 이진솔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렇게 느껴진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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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스무 살이 끝나갈 때쯤 한 번의 큰 이별을 겪고서, 이후의 여러 이별은 그리 와닿지 않았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관계의 형태와 상관없이 말이다. 끽해야 잠깐 자존심이 상하거나 불쾌했을 뿐. 한 차례 독한 예방 주사를 맞은 일과 같다고 해야 할까.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다. 당연히 그립지도 않았다. 몇몇은 이름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관계를 가벼이 여기게 된 걸까. 나는 진중한 관계를 원하는데, 나의 감정은 그것을 막고 있다. 사랑한 만큼 아프다는데, 나는 아프길 원하지만 그리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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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급할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되려 급할수록 독이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느껴질 뿐이었지. 급하게 관계를 키우려다 떠난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어린 마음에, 불안한 생각에 이 사람을 어서 붙잡아 두려다 관계가 어그러진 경험이 많다. 더는 똑같은 경험을 겪길 원치 않는다. 그러니 명심하기. 인간관계에서 급해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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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을 잘 믿지 않게 되었다. 이런 인간성을 원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러지도 않았다. 되게 마음을 잘 주고, 곁을 잘 내어주었다. 애정을 끊임없이 퍼주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몇 년째 가까이 지내온 몇몇을 제외하고는 잘 믿지 않는다. 몇 번의 관계에서 데이고 나니, 더는 얼마 되지 않은 관계가 깊이 발전될 것이라 믿지 않게 되었다. 내가 주는 애정의 힘 또한 믿지 않게 되었고. 추억에는 힘이 없는 만큼, 추억조차 얼마 쌓이지 않은 관계는 그보다 더 힘이 없다. 그래서 잘 믿지 않는다. 새로운 이와의 관계가 시작될 때면, 언제나 관계가 끊어지게 되더라도 감정이 무사히 탈출할 구멍을 마음 한편에 마련해 둔다.
결국, 내 곁에는 늘 만나던 사람만 남게 되지. 인간관계의 바다에서 갈라파고스섬이 된 기분이 이따금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직은 크게 나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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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경험이 쌓이면서, 나의 부족한 점을 하나둘 깨달아 간다. 이건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며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 아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에 비례해, 내가 주도적으로 쌓아가는 경험에서 비롯되어 깨달아 가는 결점들이다. 누구 하나 알려주는 이 없고, 알려줘봤자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체감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스스로 겪어봐야 했다.
당연히 과정은 지난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겪어보지 못해 후회하기보다는, 겪고 나서 후회하고 싶다. 그러니까, 철들지 못한 중학생처럼 센 척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들이 내게 건넨 불운이나 불쾌는 내게 성장의 계기가 될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 아프지 않다. 덕분에 적당한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아파도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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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직장을 구하고 싶다. 이 말인즉슨, 주기적인 수입을 갖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 노릇을 하는 적당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의미이다.
내 꿈은 별거 없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직장에 들어가, 과분한 사람을 만나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다(중간에 함정이 하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재미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 나의 첫 번째 목표다.
적당한 수준의 벌이, 적당한 수준의 행복, 적당한 만족감의 인간관계, 적당한 집, 적당한 차 정도를 원한다. 요즘의 대한민국에서는 적당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나는 이런 적당한 삶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적당한 어른이 되어야겠지. 이 글에서도 똑같은 결론. 더 성장하자. 오늘의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