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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Jul 20. 2021

무조건 뜨는 콘텐츠에 숨은 공식들

[서평] "재미의 발견" 김승일



세상에 '공식화'하지 못할 일은 없다. 


재미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그 패턴이 발견되기까지는 수만 시간, 수억 시간이 걸릴지 모를 지라도, 사람의 사고라는 것이 결국엔 거대한 틀 속에서 융합 작용을 하는 셈이다.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다. 학교 논문을 쓰는 것도, 사업 계획서를 쓰는 것도, 할리우드 블록 버스터를 기획하는 는 것도 일정한 '성공의' 공식이 있다. 흔히 '먹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란 과학 실험과도 같아 그 '먹혔던' 콘텐츠의 성공을 몇 번이고 재현할 수 있어야 그 공식이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플랫폼과 장르를 불문하고 과포화된 콘텐츠 시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좋든 싫든 어느새 특정한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지고, 그에 따라 익숙한 것들을 더 좋은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여기게 된다. 


물론, 콘텐츠 과포화 시장에서 살아간다고 누구나 그 콘텐츠의 '공식'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창작자는 어느 정도 기초 스토리보드와 창작 의도를 가지고 제작을 하지만, 콘텐츠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몸에 베어왔던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수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무슨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학교에서 추천해주었던 '청소년 필수 도서' 목록부터, 성인이 되어서는 가는 곳마다 시야를 침투하는 온갖 제품과 서비스 카피라이팅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읽어오고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져왔다. 


한때, 나 또한 글쓰기에 '법칙' 따위가 어딨냐고 콧바람을 꼈었다. 개인의 감정과 경험이란 지극히 사적이고 1인칭 시점적인 것인데, 그걸 누구에게나 적용시키도록 '공식화' 시킨다는 말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훗날, 성장하며 세상에 절대로 '나만의' 감정이란 없고, '나만의' 경험이란 없음을 깨달으며 인간의 삶이 일정한 패턴을 따르듯 그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 또한 패턴이 생길 수 밖에 없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조차도, 가만 보면 적지 않은 '글쓰기' 책들과 교육을 접해왔었다. 스티븐 킹이 술 먹고 써서 자기는 집필했던 기억도 없다는 글쓰기 바이블, 모두를 홀리는 피치덱과 사업 계획서를 만들기 위해 찾았던 샘플들, 모든 스토리텔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특히 할리우드 영화 작가들의 아버지 로버트 맥키의 저서들 등 글을 쓰기 전에 공식화를 해놓고 글을 쓰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습득해온 글쓰기 법칙들을 토대로 항상 글을 써왔었다. 


아마도 그런 무의식의 연장선에서 이번에도 나도 모르게 <재미의 발견>을 읽게 되지 않았나 싶다. 딱히 '뜨는 콘텐츠' 자체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였지만, 내가 아직 몸에 익히지 못한 패턴을 누군가는 또 어떤 눈으로 이미 발견해서 정리해놓았을까- 가 궁금했다. 지금은 콘텐츠 디톡스로 예전만큼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지는 않지만, 기자 출신인 작가의 쌈박한 글솜씨 덕분인지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글쓰기 공식들을 건질 수 있었다. 


<재미의 발견>은 작가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능동적으로 이를 분석하고 또 곱씹었는지 알게해준 책이었다. 나는 한국 예능과 드라마는 거의 접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유명한 콘텐츠들을 사례로 "이건 이렇고 저래서 먹혔던 거야!" 하고 말해주는게 뭔가 속이 후련한 느낌이었다. "이런 것들이 유행했고 대박쳤던 건 알지, 그런데 왜 그런지 알아?" 라는 질문의 답변을 작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갈수록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유행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게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그 구절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많은 콘텐츠에서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의미를 찾는 노력을 통해 추가적인 재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맥락이 없는 아주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유행입니다. 특히 15초 영상을 내세우는 틱톡의 인기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경쟁할 정도로 십대들 사이에서 굉장합니다. 이런 짧은 영상들은 물론 재미는 있지만, 시청자들이 거기서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찾기란 어렵습니다. // 이는 결코 반길 일이 아닙니다. 이런 영상만 즐기다보면, 시청자들이 점점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우일 수 있겠지만 맥락 없는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만 보는 세상이 온다면, 그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사색하거나 정보를 연결하는 능력이 과거보다 현저히 떨어지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151~152쪽) 


사실 성공 공식을 안다고 그 공식을 외우고 다니며 기계적으로 끼워 맞추며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디즈니나 넷플릭스 같은 거대 콘텐츠 기업의 경우,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시점까지 계산해서 수학적으로 플롯을 쓴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상업적 리스크가 걸려있으니 영화 한 편을 쓰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전개와 수많은 은유까지 함축시키며 여러 스토리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쓸지 일반인이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글쓰기의 가장 기본 자세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자칫 대박을 터뜨리기 위해 수학 공식마냥 글쓰기를 기계화 시켜버리면 글을 쓰는 것 자체의 목적과 재미를 모두 상실할 수 있다. 재미를 좇다가 재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글쓰기를 지속하다 어느날 문득 한 단계 스스로를 업그레이드를 시키고 싶다고 느낄 때 이런 종류의 책을 한 번쯤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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