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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Feb 08. 2023

'선배'의 위엄은 후배가 만든다

아직도 [단독]을 검색하고 있을 줄 몰랐지 


“내가 기자님보다 선배인 걸로 아는데, 선배라고 불러야 하지 않아요?”


와사비만큼이나 톡 쏘는 멘트가 카톡창에 던져졌다. 갈등의 시작인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침착하자...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만보자, 그동안 이 ‘와사비’가 나와 단둘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던가? 아니면 나한테 본인이 몇 년 차 기자임을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출퇴근 때 인사라도 건넨적이 있었나. 이 모든 물음에 답은 ‘아니’였다.



그렇다면 나는 와사비에게 친절해야할 이유는 없다. 답장을 보냈다.


“그런가요? 그동안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다들 선배라고 부르시질 않던데요.”



하지만 잠시 후 다시 초조해졌다. 이놈의 유리멘탈. 내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현재 회사에서 맡고 있는 ‘아싸’직을 확실히 굳힐 것인가, 아니면 달콤한 말로 그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것인가.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은 첫 번째 길이었지만, 예의상 두 번째 길을 택했다. 내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운동가는 못됐을 거다.



“선배, 먼저 선배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다가와 주셔서 감사해요. 언제 한번 시간 내주세요. 차라도 한 잔 해요~”



영혼없는 목소리가 그쪽에 들렸는지, 영혼없는 답이 왔다.



“그래요, 언제 차 한잔해요.”



우리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첫 번째 전쟁을 치렀다. 쿨한 척 하려 했지만 속에선 열불이 났다. 자기 소개는 안하고 다짜고짜 선배라고? 선배라서 나한테 해준 게 뭔데? 선배라는 말을 왜 그 타이밍에 하지? 기름에 불이 붙듯 부정적인 생각이 화르르 점화됐고, 점점 뇌의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과거 미모의 모 여배우에게 걸그룹 멤버가 “언니 저 싫어요?”라고 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뒤늦게 추측을 해보자면 모 여배우가 꼰대짓을 했을 것이다.



업무적으로 겹칠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인데,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선배니까 선배라고 하랬을 뿐인데, 그걸 부정적으로 생각할 건 또 뭐야? 내 안에 나도 모르는 트집 DNA가 있나 싶어 아차 싶었다. 두 번째 전쟁이 언제 발발할지는 모를 일이다.



선배라는 호칭에는 존경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먼저 이 분야에 뛰어든 사람. 경험을 많이 갖고 있다는 이유로 모범이 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 굳이 인사를 권유하지 않아도 인사를 하고 싶으면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처럼, 선배라고 부르는 것 역시 그 사람에 대한 진심이 작동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직장에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왜 우리 사회는 ‘사회생활’이란 명목으로 사람을 향한 진정성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를 앗아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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