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마지막으로 만난지 2주만에 배송비를 만나기로 했다. 둘이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집 근처 영화관에서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아침에 이상하게 잠에서 일찍 깨어서 동네 코인세탁소에 가서 이불빨래를 돌린 기억이 난다. 작년은 올해보다 봄이 조금 이르게 찾아와,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다. 배송비는 먼저 도착해 박스오피스가 있는 층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있었다. 그날은 안경을 안 쓰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는 쓸쓸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영화 초반에 두 여성이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에 대해 느끼는 회의감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쇼핑몰에 있는 그저 그런 식당들 중 하나에 들어가 아무 맛도 아닌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다음은 뭘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우리 동네에 있는 지금은 없어진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배송비는 나에게 혹시 연습실을 빌린다면 함께 쓸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는 다음날도 만났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배송비는 그동안 무모하지만 결연하게 준비해온 서울로의 이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포기하고 나랑 놀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연애 말고 다른 걸 하자고 했다. 나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동의한 것 같다.
오늘은 차를 가져왔으니 집에 데려다 드릴까요, 토요일에 만나 영화를 볼까요, 내일도 만날래요. 중요하지만 예측 가능한 제안들 사이에 저 두 제안이 있었다. 연습실을 함께 빌릴까요, 연애 말고 다른 걸 해요. 1년이 지났고 우리는 6개월 뒤 결혼을 한다. 배송비가 그때 말한 '연애 말고 다른 것'이 결혼일 리는 없다. 세상에 결혼만큼 뻔한 게 또 있을까.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당시 혼자 살고 있던 배송비의 집에 처음으로 가봤다. 같이 영화도 보고, 배송비가 차려주는 밥도 먹고, 책과 CD들을 구경하고 그러다가 배송비가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펴낸 잡지들을 보게 되었다. 배송비의 좀 우울하고 혼란스럽고 갈피를 못잡던 시절의 글들을 읽었다. 그 글들을 읽고 난 나의 반응을 살피던 배송비의 모습이 기억난다. 많이 걱정스러워하고 조금 부끄러워하는, 한없이 취약하며 어쩐지 아이같기도 한 표정이었는데, 나는 그 전에도 그 뒤에도 한번도 배송비의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왠지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버렸고,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든 과거의 배송비가 고마워졌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평범한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식도 평범하고 전형적으로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를 결혼으로 이끈 것은 그래도 다른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아닐까 싶다. 저항하기 힘든 평범함 속에 그래도 함께라면 나만의 것, 우리만의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개별적이고 고유하려는 노력을 지지하고, 매일의 타협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서로 응원하는 것. 그렇게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우리의 빛나거나 초라한 시간들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하는 것. 이 글들은 그런 노력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