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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필 May 13. 2024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

색과 색을 더해서

나는 나와 같은 점이 많은 사람이 나의 짝일 줄 알았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쉬는 방법, 힘을 내는 방법, 힘들어하는 것, 무서워하는 것 등 마치 쌍둥이처럼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쓰던 날들. 공통점이 없을 때는 내가 어떻게든 좋아하는 것을 맞춰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초등학생 때 좋아하던 친구는 가수 god를 좋아했다. 그다지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큰 감흥이 없었다. 아이들은 H.O.T니 젝스키스니 하며 새로 산 옷을 뽐내듯 하나씩은 아이돌을 꼭 좋아하던 시기였다. 공통점이 있어서 좋아했던 건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던 아이와 좀 더 비슷한 점들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 god의 노래들을 듣게 되었다. 참 많이도 들었다. 그 아이와도 별 다를 것 없는 짝사랑의 시간으로 지나갔지만 god는 오랫동안 좋아했었다.


  이후에도 관심 있던 여자 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얼마나 맞는지, 또 얼마나 다르고 내가 얼마나 맞출 수 있는지 가늠을 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헷갈리고, 모르게 되기도 했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상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은 나를 찾기 위한 오랜 여정을 준비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한 번은 페이스북에 잔뜩 좋아하는 것들을 게시해 둔 분과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고시라도 준비하 듯 그분이 좋아하는 것들을 달달 외다시피 해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분이 좋아하는 것들을 모른 체하며 줄줄이 늘어놓았다. 또 상대가 관심이 있다거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할 때 나는 계속해서 "어? 그거 나도 좋아하는데"를 남발했다. 하지만 상대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아니 아주 노골적으로 관심이 없다는 내색을 해주어서 깔끔하게 마음을 접는 데 도움을 주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꼭 형형색색의 셀로판지 같다. 각자의 색을 뽐내는 서로 다른 마음들이 만나 섞이면서 새로운 색을 만드는 것을 연애라고 한다. 나는 그저 계속해서 투명해지려고만 했다. 상대의 색만 그대로 담아내려는. 하지만 그럴수록 상대는 시시해했다. 심지어 같은 색 둘이 만나도 더 짙어지기라도 하는데 그저 그대로 담아내는 '투명'일 뿐이라니. 마치 '나'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그 뒤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 나의 색 찾기에 집중했다. 어떤 색이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려워도 이제 나는 분명히 어떠한 색과 어울려도 또 다른 색을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색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색과도 모두 잘 어울리는, 모두가 좋아하는 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시작이었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를 지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상대의 개성은 존중하지 않고 나의 개성에만 맞출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색이 섞인다는 것은 서로의 개성은 존중하되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훼손하지 않되 양보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색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비로소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그림을 망쳐왔었는지 모르지만 그 실패들로 지금은 내가 만족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와는 다른 어떤 고유하고 특별한 색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색을 잘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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