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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현 Apr 27. 2020

하지 말라는 대로 했고,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나의 시작과 도전은 망상에서 비롯됐고 사소한 하루 속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가는 길이 누군가가 간 적이 없다 해서 그 길이 길이 아닌 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허황된 꿈을 꾼다.


허황이란 단어의 정의는 "현실성이 없고 헛되어 미덥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누가 나의 꿈을 현실성이 없고 헛되고 미덥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딩동댕동! 찌릿하고 처참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매번 시작되는 나의 비극적인 영어시험을 마치는 종이 었다. 쉴 새 없이 지나간 시간의 틈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시험지의 지문을 수십 번 반복하여 읽는다.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나는 뇌를 풀 가동시켜 답안지에 답을 써 내려갔다. 

맨 뒤에서 시험지를 걷는 놈의 발걸음이 터벅터벅 나의 숨통을 조여 온다 마치 디맨터처럼.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나는 0.1초도 낭비할 수 없기에, 빠르고 날카로운 필력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답을 적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반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녀석의 시험지를 정답 삼아 가채점을 시작했다. 공부는 눈꼽만큼도 안 하는 친구 녀석도 왠지는 모르지만 내 옆에 와서 가채점을 시작했다.


가채점을 마친 후 나는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매일 10시간 이상을 영어에만 쏟고, 영어 단어도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외웠다. 하루에 100 단어를 꼬박꼬박 외웠는데 나는 40점, 놀기만 하는 얘는 30점.

30점 맞은 애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매일 영어 공부하는데 왜 그거밖에 점수가 안 나오냐? ㅋㅋ"

사실 내가 더 많이 궁금하다 왜 이거밖에 안 나오는지.





나의 꿈은 요리사였다. 고든 램지와 피에르 가니에르, 제이미 올리버 등 멋지고 세계적인 요리사들을 보며 외국에 나가서 요리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세계적인 셰프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겠는가.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일본에 처음 딱 한번 가본 것 말고, 나는 외국에 단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OCN에서 나오는 트루먼 쇼를 볼 땐, 사실 정말 외국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방송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세상에 의문을 갖기도 했다.




나는 우리 반 교실의 친구들과 달랐다. 모두 수능 공부만 할 때, 영어공부만 했고, 이런 나를 보면 못마땅하게 여기는 놈들도 있었다. 찌그러진 표정으로 괜히 와서 넌 왜 영어공부만 하냐?  실력으로 무슨 외국이냐 그냥 지방으로 가라, 영어 공부하는데 왜 영어 못하냐ㅋㅋ? 등등 자기 일도 아니면서 자신들과 다르면 아니꼽게 보는 놈들도 정말 많이 있었다. 매일매일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속으로 울컥했고 가끔 화가 치밀어 영어 책을 집어던지기도 했지만, 다시 주워서 구겨져버린 책을 펴고 공부를 했다.


가끔 엉뚱한 불만도 있었다. 나는 요리를 하고 싶은데 왜 영어를 해야 하는지. 왜 세계적인 셰프들은 다 영어만 쓰는 건지 화가 났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어를 쓰게 만드는 것보다 내가 영어를 하는 게 더 합리적이고 성공할 확률이 컸기에 현명하게도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렇게 언젠가 영어로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5년간 매일 영어 책을 폈다.


그 결과 지금 나는 셰프가 아니다. 그냥 요리는 취미로 즐기며 살고 있는 직장인이 되었다.

 

취미 삼아 만드는 요리


회사에 대한 큰 자부심은 없지만 현재 세계에서 비교적 큰 에너지 회사에 다니고 있고, 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영국, 브라질, 멕시코, 아프리카, 러시아, 중국 등등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고등학교 교실에서 야자 하며 상상했던 수많은 나의 모습 중 하나이다. 매일매일 영어로 업무를 보고 회의를 하는 나의 모습을 과거 불 켜진 교실에서 야자하고 있는 나에게 보여주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로컬 직장 동료와 함께 미팅 중인 모습 (화질이 좋지 않다)


나의 도전과 시작은 사소했다. 일 단어장을 펴는 은 나에게 가장 큰 시작이었고 멋진 도전이었다.


더 넓은 세상 속에서 다양한 외국인들과 얘기하고 미래의 멋진 나의 모습들을 끝없이 상상했다. 상상 속에는 멋진 셰프가 된 나의 모습, 큰 회사 오피스에서 외국인들과 일하는 나, 사업하는 성공한 다양한 나의 모습이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은 현실에서 오는 좌절감을 극복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던 5년간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인생에서 무언가에 대한 시작과 도전은 거창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단어장을 펼쳤던 모든 날이 나의 시작이었고, 더 높은 곳으로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이런 작은 시작들이 쌓이고 쌓여서 도전을 성공하게 만들었고, 그 당시 내가 꿈꿔왔던 위치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사소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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