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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Nov 18. 2019

테너의 품격

<꿈의숲아트센터>개관10주년 테너 김현수 가곡 콘서트 2019.10.13

                                                                                       

아름다운 테너를 보러 가는 길은 늘 설레고 흥분된다. 전날 힘든 일이 있어도 기대하는 마음 때문인지 발걸음이 산뜻하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0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꿈의숲아트센터>에 도착하니 해가 져 어두웠다. 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음악회가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한 무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테너 김현수가 주인공인 시간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테너는 계절에 맞게, 연한 갈색 톤의 슈트에 보타이까지 하고 등장했다. 사실 이 슈트는 낯이 익다. 내 눈썰미가 맞다면, 지난 4월 군포 철쭉 때 입은 슈트다. 그때도 의상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더 멋지다. 물론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그때 입었던 것과 다른 슈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테너는 등장하자마자 일단 비주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어제(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 '좋은날')도 봤는데, 보고 또 봐도 흐뭇하다.


가곡을 각별히 아끼고 자주 부르려 노력하는 테너는 이번에도 우리 가곡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서정적인 「산들바람」에 이어 흥겹게 부르는「뱃노래」까지. 현수 군은 노래를 끝내고 약간 수줍게 '멍석을 깔아놓으면 못한다고..' 이 말을 하면서 멍석 대신 방석으로 말하는 깜찍한(?) 말실수를 해 좌중을 웃겼다. 사실 이런 건 실수도 아니다. 긴장하면 그럴 수도 있지. 현수 군이 무슨 짓을 하든, 그곳에 있었던 관객들은 아마 나처럼 다 우쭈쭈~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름에 갔던 단독 콘서트에서는 석사 논문을 쓰느라 정신없다고 하더니, 현수 군이 드디어 석사가 되었다고 한다. 슈만의 가곡으로 논문을 썼다고 들은 듯한데, 내가 맞게 들은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포르테 디 콰트로로 활동하며 콘서트와 방송하고 그 와중에 논문까지 쓰다니, 다시 한번 우쭈쭈~해주고 싶다.


석사가 된 테너는 슈만의 가곡을 연달아 세 곡 불렀는데, 노래의 피아노 전주가 매우 짧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낯선 멜로디에 가사도 못 알아들었지만, 선율이 매우 서정적이고 곱다는 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한 곡은 노래 사이 같은 멜로디로 피아노 반주가 반복되는 구간이 있는데,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정이 귀에 꽂혔다. 저 피아노 반주 부분은 내 폰 벨소리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한 회색 슈트로 갈아입은 현수 군은 2부에선 우리말 가사가 시원스럽게 들리는 노래들을 주로 했다. 「풀꽃 연정」이라는 노래를 부를 땐 귀까지 빨개져서 열창하는데, 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마이크가 없어도 현수 군의 음성은 폭포수처럼 시원하고 웅장하게 귀에 꽂혔다. 솔직히 난 테너의 음성을 마이크 없이 듣는 게 좋다. 큰 공연장에선 힘들겠지만, 꿈의 숲 아트센터 콘서트홀 정도의 공연장에선 이렇게 듣는 게 더 아름답다.


현수 군 다음 앨범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곡 「꽃밭에서」가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객석에서 '카톡~'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 군이 웃으며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 하니 객석도 웃음바다가 됐다. 현수 군은 이게 콘서트의 묘미라 하지만 매너 없는 관객 때문에 울컥 짜증 날 뻔했다. 너그러운 아티스트 덕분에 웃으며 넘어갔다.


요즘 현수 군은 이 노래에 꽂힌 듯하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이 곡을 설명할 때마다 객석에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현수 군 어머니 프로필 사진은 아직도 꽃밭일까? 나라면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아들 사진으로 도배해 놓을 텐데. (ㅎㅎ) 현수 군은 이 노래를 열창하고 나서 별다른 말도 없이 갑자기 무대 뒤로 쑥 들어가 버렸다. 잠시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데, 순서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ㅋㅋ)  


밑도 끝도 없이 들어갔다 나온 테너는 쇼팽 연습곡 「Tristezza」를 불렀다. 이 곡 역시 현수군 앨범에서 꼭 다시 들었으면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현수 군은 지난 7월 가곡 콘서트 할 때 실황 음반을 위한 녹음까지 했는데, 앨범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난 그 콘서트 음반이 나올 거라 기대하며 7월부터 내내 기다리고 있는데.. (ㅠㅠ)


프로그램북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 앞에서 현수 군은 이번 곡이 진짜 마지막이라며 밀당을 시도했다. 아니라는 거 다 아는데, 프로그램북에 몇 곡 남았는지, 다음 곡이 뭔지 다 나와있는데.. 관객에게 매번 협박(?)을 하는데도 어찌 이리 어설픈지. 그도 '아, 다들 프로그램북이 있으시구나.' 하며 되지도 않는 밀당은 집어치웠다. (ㅎㅎ)


 머리 말리고 화장할 때마다 현수군 1 Sogno』를 듣는데, 아침에 들었던 노래를 저녁에  들었다. 이번 콘서트의 진짜 마지막 곡이다. 어차피 집에 가면  듣겠지만, 오래간만에 넷이 아닌  사람의 음성으로 듣는「얼음꽃」은 새삼 아름다웠다.


꿈의 숲 아트센터 콘서트 홀은 포르테  콰트로가 <고전적 하루>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한 곳이라고 한다. 현수 군은 그래서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녹화를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포디콰도 그렇고 현수 군도.  프로를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김현수라는 테너를 찾아다니게   몰랐다.  명의 완전체를 보는 사이사이에 현수 군을 따로   있는 무대가 많기를 바라지만, 넷이 있으면  명의 무대가 보고 싶고,  명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명이 그리워진다. 「얼음꽃」을 들으니 현수 군의 포근한 음성 사이로 다른 세명의 음성이 환청처럼 겹쳐졌다.


이번 공연은 테너 김현수의 부드러움과 웅장함,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무대였다. 어떤 공연인들 그렇지 않은 적이 있을까만은, 이번 무대는 그의 깜찍한 어설픔(?)이 살짝 삐져나오긴 했어도 뭔가 품격이 느껴졌다. 현수 군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아티스트라는 걸 새삼 느꼈다. 오늘 들은 노래들 모두, (1집에 실린 노래는 빼고) 한 곡도 빠짐없이 현수 군의 다음 음반에 실렸으면 한다. 그가 가사를 연구해 논문까지 쓴 독일 가곡들도 다시 꼭 듣고 싶다, 그의 음성으로. 피아노, 기타, 첼로로 무대를 빛나게 해 주신 연주자들도 너무 멋있었다. 지난 7월에 뵀던 분들 같은데 다시 보게 되어 현수 군 못지않게 반가웠다.  


정수리 요정 테너 김현수


1부> 연한 갈색(or 베이지색) 슈트에 보타이

♪ 산들바람 (현제명)  ♪ 뱃노래 (조두남)  ♪ <Myrthen> Op.25 중 Widmung, Der Nussbaum, Die Lotosblume (R. Schumann)  ♪ Vaga Luna, che inargenti (V. Bellini)  ♪ 걱정마요 (이지수)  


2부> 진한 회색 슈트

♪ 너의 그늘 아래서 (김진환)  ♪ 꿈꾸는 봄 밤, 풀꽃 연정 (박대웅)  ♪ 꽃밭에서 (이봉조)  ♪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김진호)  ♪ Tristezza (F. Chopin)  


앙코르>

♪ 가족사진 (김진호)  ♪ 얼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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