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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기일 Jun 28. 2020

과제 - 2

About Liberty of John Dewey

Question -

John Dewey가 “Philosophy and Democracy”에서 민주주의를 언급하면서 설명한 “자유(Liberty)”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자의 견해를 자유롭게 밝혀보세요.


If torch were the ice – cream cone.

             자유의 여신상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비와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찬 시절,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 저 아줌마는 왜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어?”


             천진난만한 내 질문에 엄마는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내 눈에 사랑이 듬뿍 담긴 시선을 맞추며, 어머니는 저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불이라고 말씀하셨다. 불! 그래도 불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유의 여신상이 무섭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달콤하고,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차가움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저것은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득부득 우겼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끝내 못이기는 척 아이스크림이라고 인정하셨다. 그 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산 바닐라 향이 듬뿍 담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은 조금 친근해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불이 아니라, 세상을 달콤하게 만들어 줄 아이스크림이었다. 세상이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진 아이스크림으로 가득 찬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자유로운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상상들을 했던 기억이 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여태까지 없었던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찬 시절,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지유야, 저 손에 들린 횃불 보여?”


             뜬금없는 질문에 여자친구는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할 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일부러 조금 뜸을 들였더니, 빨리 말하라며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아이스크림! 내가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리는 꿈을 꾸게 된 것도 저 자유의 여신상 덕분이라고 말을 하니 당혹스런 시선이 느껴졌다. 역시 너무 추상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었다. 


             “아무리 봐도 횃불인데? 난 오히려 정열적으로 보여. 하고 싶은 걸 하는 오빠 같잖아?”


             천진난만하던 어릴 때야 보고싶은 대로 볼 수 있으니 아이스크림이라고 우길 수 있었지만, 사실 지금은 어떻게 보아도 횃불로 보였다. 뜨거운 횃불, 미지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열정을 표현한 자유의 횃불이었다. 덤으로 나는 뜨거운 사랑도 하고 있었다. 역시, 이 동상을 보면 볼수록 멋진 건축물이다. 자유라는 애매모호함을 멋들어지게 표현해 놓았다. 뜨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자유분방함을 보고 더욱 자극을 받았다. 실패해도 어떠리, 도전하다 보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청춘을 불태울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을 본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나는, 모든 것에 실패했다. 내 새로운 아이스크림 레시피도, 사랑도, 그리고 인생도. 그리고 도망치듯 마지막 돈을 끌어 모아 미국으로 왔다. 이 세상에서 정말로 나는 도망갈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이렇게 가혹한 것인가요?”


             내 비통함을 담은 질문에 여신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밤에도 여신님께서는 참으로 밝으셨다. 아이스크림을 세상에 전해주겠다는 포부를 가지게 된 것이 당신 때문인데, 나는 전혀 빛나고 있지 않았다. 왜 당신만 빛나고 있는 건가요? 자유를 표방하겠다면서, 혼자서만 환한 빛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 말이 되나요? 당신을 보고 자유를 추구하던 나는 어둠 속에 내버려 두고, 혼자서만 아름답게 빛나대는 당신이 정말로 증오스럽네요.


             “…”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기껏 동상 따위가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냥 나 혼자 쓸모 없는 의미부여나 해 댔을 뿐이었다. 지금 저 자유의 상징이 들고 있는 횃불에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따위는 없었다. 나는 악에 받혀 심한 욕설들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를 제공해 주었으면서, 결국 나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참으로, 잘난 동상이다. 이제 보니 저 여신이라는 작자도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 당신도 길이 보이지 않아서 그 잘난 횃불로 어둠이라도 밝혀보려 하는 건가? 하지만 당신도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 결국 당신도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것이겠지. 


             “당신은 자유를 표방할 자격이 없어.”


             어차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준비해왔던 로프를 꺼냈다. 목을 매어 죽어버리겠다는 각오로 왔으니, 이 증오스러운 동상에게 내가 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침 알맞은 나무가 있었다. 연습은 충분히 해 두었다. 튼튼한 나뭇가지에 로프를 묶는다. 발을 디딜 돌을 준비한다. 목을 매듭 사이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디딤돌을 발로 차 버린다. 의식이 사라져간다. 고통스럽다. 죽기 싫다. Ice – cream. I scream.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횃불에서 나오는 한 줄기 빛이었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여신상 근처에서 죽으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횃불의 빛 덕분에, 나는 구조되었다고 한다. 


             곧 부모님이 도착한다고 한다. 


             좋은 소식과 함께 올 것이라고, 의사가 말해주었다.   




             John Dewey는 자유(Liberty)를 불확실함이 지배하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자신의 신념을 담아 무언가 탐구하고 도전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가능성의 세계 안에서 새로움을 찾아, 자신이 흥미와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하지만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기 때문에,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노력을 한다는 행위에는 실패라는 위험이 항상 기저에 깔려 있다. 가능성의 세계에서는 성공이라는 단어와 함께, 실패라는 단어가 항상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정의의 자유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적용해보자면, 거의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사회에는 끊임없이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연구를 이어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의 행보에 의해서 무언가 창조되고, 세상은 변화하며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 또한 계속해서 변화한다. ‘달라지는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계속해서 변화무쌍한 양상을 만들어내는 도전정신, 자유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John Dewey는 자유라는 개념을 사회의 전체적인 양상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자유라는 개념을 인류에 포괄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는 세계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했지만, 그 안에 있는 개인의 삶은 미약하게 보여준 듯 했다. 그래서 개인의 삶에 이 자유라는 개념이 투영된다면, 현재 이 사회에서 이 자유라는 개념이 어떻게 해석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직접 이 주제로 짧은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위 글 ‘If torch were the ice-cream cone’에서는, 이 자유라는 개념을 개인의 관점에서, 더욱 세부적으로는 현재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관점에서 풀어보려 했다. 천진난만한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통해 Dewey가 정의했던 자유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어린 주인공에게는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횃불이 아이스크림으로 해석된다. 물론 지극히 주인공의 관점에서 의미부여를 한 것이었겠지만, 자유의 여신은 순진무구한 소년에게 어떠한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가능성을 꿈꾸게 만들었고,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동기를 부여했다. 

            주인공은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이 아닌,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서 세상에 보이고 싶어한다. 이 불확실함의 법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도전하고 발전하고 싶어한다. 가능성을 보며, 주인공은 여자친구와 미국에 갔을 때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사실 실패한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불행한 경우의 수에 목을 메고 있어 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 당시 주인공이 보았던 것은 횃불이었다. 아이스크림이라는 모습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가능성을 이루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정의 상징인 횃불로 인식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려 의미를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주인공이 조금 더 집중하고 있는 가치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 것 뿐이었다. 

            이 장면까지는 John Dewey의 자유관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선한 것을 탐구하고, 창조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은 자신이 생각하는 참신함은 그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패의 가능성을 맛본 것이다. 결국은 빚더미에 앉게 되고,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 주인공은 마지막 돈을 끌어 모아 자신의 꿈이 시작되었던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간다. 찾아간 시간은 공교롭게도 밤이었고, 자유의 여신상은 어둠 속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자유의 상징인 여신상마저 어둠 속에서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그는 자유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길을 횃불이라는 나약한 빛에 의존해서 겨우 찾아가는, 도박과 다를 바 없는 행위라고 인식하게 된다. 과거의 아이스크림이라는 상징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도박에서 실패한 주인공은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여담으로, 그 희미한 빛 덕분에 주인공은 목숨을 구한다. 이 부분은 내 생각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부분인데, 자유가 반드시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서 추가한 부분이다.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가 비극적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간의 희망 때문이었다.

            사실 주인공이 실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끈기 있는 모습으로 실패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그려야 Dewey의 자유의 모습과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패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자신이 실패를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실패는 곧 패배로 이어지고, 다시 일어날 기회를 온전히 보장해주지 않는다. 도전을 위해서는 무언가 필요할 것이고, 그것이 돈이라면 실패했을 때의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할 것이다. 그리고 이 상상 속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패했을 때 그 누구도 구제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은 두려워하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 현재의 우리 세대는 결국 수많은 가능성들 중 최악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문장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가능성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Dewey의 자유에 따르면, 많은 수의 현대인들은 자유롭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너도나도 실패하지 않으며 무난하게 먹고살 수 있는 삶을 우선적 가치로 여기고  이에 목을 메는 모습은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비판할 수는 없다. 무턱대고 자유를 추구하라고 할 수는 없다. 아마도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의 영향이 정말로 클 것이다. 한 사람은 사회에 귀속되어 있는 존재이고, 사회와 상호작용을 하며 사회를 바꾸어 갈 수 있지만, 그 반대 또한 가능하다. 사회가 사람을 고착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 또한 최근 실수를 한 사람을 관용의 태도로 바라보는 사람을 본 지 오래되었다. 사람들이 실패한 사람을 물어뜯는 모습은 많이 보아왔다. 마치 자신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린 듯한 언행도 보았다.

            우리가 긍정의 빛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런 풍조가 많이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 모두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는 것인데. 하지만 사회가 이런 풍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 발짝 물러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한 걸음만 뒤로 빼면, 더욱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전진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까. 슬프지만, 이 자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는 없는 자유인 것 같다. 선택 받은 자만 누릴 수 있는 자유. 그것이 Dewey의 자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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