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의 목적은 이직뿐만이 아닙니다
이사와 이직을 동시에 하는 기예를 펼치느라 세상 정신없는 연말 연초를 보내고 왔습니다. 이직과 이사는 한 번에 하나씩 하시기를 추천합니다...
디자이너란 세상에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들고 거기에 합당한 가치를 지불받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건 싫건 항상 디자이너를 평가하는 시장(고객)의 평가를 받고 있죠. 이력서를 쓰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만 때론 알고 싶지 않은 차가운 팩트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1. 상황
1-1. 회사의 업계와 해당 업계의 전망
1-2. 주변에 어떤 동료들이 있는가, 또 그들과 어떻게 일하는가
1-3. 현재 직무와 역할
2. 실력 (= 포트폴리오)
2-1. 대표 프로젝트 1~2개
2-2. 포트폴리오가 나를 대표할 수 있는가? 그 안에 나의 전문성이 충분히 드러나는가?
2-3. 디자이너로서 나의 강점을 알고 있고 포트폴리오에 잘 녹여내었는가?
3. 시장 가격
3-1. 현재 받고 있는 연봉의 위치
3-2. 이직 시 받을 수 있는 연봉
생각보다 뻔한 내용들입니다.
뻔하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업계 2위의 대기업 SI 기업에 재직 중이었습니다. 회사의 성장이 괜찮았기 때문에 계열사 안에서의 연봉과 업계의 전망도 괜찮았습니다. 다만 2위 업체에서 1위 SI업체로 이동을 한다 해도 지금과 회사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되어 SI 업계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어떤 동료들이 있는지는 일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저의 경우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컨설턴트 등이 한 팀을 이루고 주어진 기간 동안 업무를 완수하고 철수하는 순서로 보통 진행되었습니다. 프로젝트에 따른 인력 구성의 가장 큰 장점은 '싫은 사람 계속 안 봐도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장 큰 단점은 '어떤 사람이 이번 프로젝트에 들어올지 모른다'는 점이기도 합니다. 여러 개발자들과 일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떤 요구사항에도 잘 맞추어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저의 강점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UX/UI/UXUI"를 때에 따라 진행하는 하이브리드형 디자이너였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UX=기획, UI=디자인으로 보통 역할이 나뉘곤 했는데요, 간단한 수정 건이 들어올 때에는 UI 디자인만 하지만 기획까지 커버해야 할 때에는 UXUI를 전부 맡았습니다.
저는 GUI 디자이너보다는 기획자에 가까운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재직 당시 디자이너의 롤 안에서도 최대한 기획에 참여를 많이 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습니다.
2~30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 중 저의 대표 프로젝트 두 개를 선정하기 위해 몇 가지 기준을 두었습니다.
첫째, 프로젝트 참여도 100% 프로젝트. 즉 내가 단일 디자이너로 참여한 프로젝트일 것
둘째, 커리어적으로 내가 지향하는 성격의 프로젝트일 것. 저의 경우는 B2C 모바일 서비스였습니다.
위의 기준으로 최종 선정한 저의 대표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 상태를 분석 및 관리해주는 모바일 플랫폼
2. DID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월렛 서비스
위에서 정의한 대표 프로젝트 두 개가 저의 대표작이긴 하지만, 포트폴리오 안에 있는 모든 디자인이 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니 참 민망하더라고요. 일정 부분 디자인을 수정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갔지만 절대적 시간이 워낙 부족했기에 GUI 측면에서 100%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전문성 부분에서는 저도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 부분을 보완하고 저의 강점을 보여주기 위한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제작했습니다.
2-2와 상통하는 부분입니다. 같은 모바일 서비스를 디자인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강점이 잘 드러나는지가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 "논리적 사고 과정으로 기획 및 디자인을 한다"는 강점을 어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의 전반적인 구성도 글이 많이 들어간 블로그 타입으로 만들었고 글과 함께 제 사고 과정을 담았습니다.
이런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글이 너무 많다고 한 곳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저에 대해 진짜 궁금해하는 회사들로부터는 저의 사고 과정과 작업 방식이 잘 담겨있어 저와 실제로 일한다면 어떻게 일하게 될지 알 수 있어 좋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제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뽑으면 되고 저는 저와 잘 맞는 회사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의 강점이 잘 드러난 개성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죠.
포트폴리오를 제작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다 보니 제가 받고 있는 연봉이 어느 위치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회사는 개발-비개발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 감사하게도 동일 연차 대비 UX디자이너 중에서는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BUT 네카라쿠배가 제외된;;)
최종 면접까지 갔던 회사들로부터 제가 받을 수 있는 최종 연봉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와 fit이 잘 맞고 저의 강점을 원하는 회사들에서는 기존 연봉 대비 만족스러운 수준의 연봉을 제시했습니다. 반대로 저의 포트폴리오를 마음에 안 들어했던 곳에서는 저의 사고방식은 높게 평가하나 그것 대비 GUI 완성도가 아쉽다는 평가로 만족스럽지 않은 연봉을 제시했습니다.
(연봉 액수를 제외하고) 최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제 경험을 담아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이 외에도 이직 프로세스 중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 많습니다만 이건 정말 직접 해봐야 아는 영역들이기에... 직접 해보시는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특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되는 괴로운 시기에 있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이력서를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두 편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