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 Aug 19. 2023

그가 나의 가족이라는 것

같은 세상을 살려 노력하는 것

 

나처럼 스몰 톡을 크게 즐기지 않는 사람-먼저 시작하지 않을 뿐 막상 시키면 곧잘 한다-이 어떻게 프랑스어를 배우셨어요?라는 질문에 가장 빠르게, 후속 질문 없이 대답하는 법은 '남편이 프랑스인이라서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사실 남편이 프랑스인이라고 해서 저절로 프랑스어를 숙달하게 될 리가 없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연애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셨나 보다' 라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1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영어로만 대화해왔는데 배우자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곧잘 '아 집에서는 프랑스어만 하시겠네요' 라고들 한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나도 다니엘과 만나는 일 없이 살아왔다면 비슷한 질문을 하고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내가 사는 곳이 프랑스이니 만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자연스럽다.

 내가 국제결혼을 하면서 우리 부모님은 이웃집 찰스 같은, 국제결혼 가정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을 관심 있게 시청하게 되었다. 거기에 포털 메인에 뜨는 게시물이나 드물게 알고리즘에 흘러들어오는 국제커플 브이로그들, 주변 국제결혼 커플 케이스까지 해보면 외국인 배우자들 중 한국에 거주한 지 5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배우지 않거나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일상생활에 큰 부담을 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리라 내 나름대로 추측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내 주변 커플들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언어에 큰 관심이 없는 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배우자의 언어를 배우는 데 시간을 낸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다니엘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원인도 거기에 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45시간, 때로는 50시간을, 내 주변 친구들 말에 따르면 '한국인처럼' 일해가면서 출근 전에 한두 시간씩 시간을 내어 한국어를 공부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다니엘이 나처럼 시험이나 가시적인 인정에 동기부여를 받는 편도 아니고, 한국어를 못한다고 해서 당장 생업에 어떤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매일 다른 사람들과 연습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하다못해 희미하게 존재했던 한국 정착의 가능성이 전에 비해 훨씬 작아진 요즘 같은 시기에 벌써 2년 넘게 한국어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은 존경스럽다. 인간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고 남에 대해 기본적으로 너희들이 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행복하면 오케이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나 같은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는 바람에 그 엄청난 노력에 대한 충분한 인정을 못 받고 있었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말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났는데 그동안 정말 대단하다고 너 정말 엄청나다고 얘기는 해줬지만 그 노력과 꾸준함의 엄청남에 비해 충분히 칭찬한 것 같지가 않다. 꽤 미안해진다.

 나는 함께하면서 밥 먹듯이 너 귀엽다, 예쁘다, 오늘 잘 생겼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편이고 다니엘은 어쩌다 한 번씩 그런 듣기 좋은 말들을 해준다. 어떤 말들은 좀처럼 듣기가 힘들 때도 있다. 캐물어 보면 으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는 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 사람이,  자신은 언어에 관심도 없고 습득 자체도 오래 걸린다고 말하던 사람이 매일 아침 내 언어를 공부하고 퇴근 후에는 오전에 배운 표현을 연습하려 할 때, 나는 생각하게 된다. 이게 이 사람이 나와의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이구나. 이 사람 나름대로 내 세상에서 살려고 무척 노력하는구나. 나도 무심한 부분에서는 상당히 무심한 편인데, 그동안 이 노력을 충분히 알아주지 않은 나 때문에 가끔 속상하기도 했겠구나.

 나는 전형적인 회피형 애착 유형 가족들 사이에서 자란 회피형 인간이다. 그런 만큼 내 딴에 어떤 주제가 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이거나 큰 싸움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 그 문제를 10년이고 20년이고 30년이고 무시하는 것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나의 안락한 동굴도 다니엘을 만나면서 상당 부분 철거당했지만 말이다. 내가 다니엘이 한국어를 배우고 아이를 한국어로 양육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만큼 실력을 향상할 것을 기대조차 하지 않은 데에는 그런 배경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 본다.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싸우는 것을 지켜보면서  모든 기대는 고통을 야기한다는 나의 개똥철학이 다시 한번 눈을 떴다. 게다가 주에 50시간 일하는 사람에게 한국어를 공부하라고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사는 동안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자는 처음의 다짐에 상당히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어 문제가 가장 진지하게 와닿는 시간은  아무래도 육아에 관해 생각할 때였다. 이곳에서 자라는 한국계 프랑스 청소년들이 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따돌림을 당하다가 제 안의 한국 피를 싫어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걸 듣고 나니 아이가 생긴다면 어디에서 키우던 부모의 모국어만은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배우면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느꼈다. 내가 프랑스어를 진지하게 공부했던 것도 생계와 이 문제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했고 말이다. 그런데 늘 그랬듯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영역 밖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든 다니엘의 한국어 실력보다 급해 보이는 문제들이 더 가까이에 존재하기도 했고.

 올해 초, 다니엘이 유모차에서 투정을 부리며 우는 내 조카에게 '똑바로 앉아요'라고 한국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다니엘이 우리 인생의 어디를 바라보며 한국어를 공부했는지, 그 의지가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뤄냈는지 새삼 실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좀 더 먼 과거, 조카와 처음 만났을 당시의 다니엘은 문장 단위의 한국어를 아직 구사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한국어라는 주제를 의식적으로 덮어놓고 다니엘의 의지에 '맡기는' 동안 다니엘은 피곤하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일 착실하게 한 걸음씩 나아갔다. 우리의 상황, 현재 사는 장소, 이곳의 언어 등 많은 것을 고려했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다니엘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게 '당연'하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건 이곳에서 취업을 해야 하고,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데다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는 편이 나아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다니엘은 가족 중 누가 아직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늘 '당연하죠, 내 부인이 한국 사람이니까.'라고 한다. 내가 지금 같은 환경에 지금 같은 상황으로 그렇게 꾸준히 공부하는 건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다니엘은 고집스럽게 당연한 일이라고만 했다.

 오래 사귀어도 다니엘에 대해 모르는 부분들은 한 번씩 튀어나와 머리를 어지럽힌다. 내가 살아온 날들에 기반해 봤을 때 절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직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묵직하게 감동을 주는 날들이 있어 다니엘과 가족이 되어가는 것은 꽤나 멋진 일이다.


안녕하세요 체리입니다! 다음 주부터 새 직장에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지요. 다름이 아니라 이직 후 연재 때문에 다시 한번 공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이직 전에 다녔던 직장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즈음까지 근무하는 곳이었습니다. 통근시간은 편도 30분 정도여서 집에 오면 시간이 대단히 많지는 않아도 격주로 연재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직 후에는 근무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인데 통근시간이 편도 1시간 20분으로 늘어나면서, 또 파리 지하철에서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는 게 그렇게 좋은 생각은 아닌 만큼-출퇴근하는 역이 파리 지하철 중에서도 치안으로 좋게 소문난 곳이 아니어서 더욱- 그림 그릴 시간이 크게 줄어들어 올해 연재는 언제 재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 되었어요. 기상이 5시 50분 정도일 것이고 자러 가는 시간은 아무리 늦어도 10시 반 정도 될 텐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미 7시 가까이 되니까요.

 출근을 해봐야 알겠지만 새 직장 근처에 슈퍼마켓이나 간단하게 점심을 사 먹을 카페 같은 게 거의 없다시피 해서 주말에 주중 점심(보통은 주중 저녁에 먹을 것만 요리하는 시간이었는데 말이죠)까지 준비해야 할 가능성이 꽤 크다는 걸 감안하면 기존과 같은 페이스로 연재하는 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관계로 네이버 포스트와 카카오 브런치 스토리에 올리던 연재는 기한 없이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그린 그림을 이어붙여서 자유 연재 정도로는 진행할 수 있겠지만 주기를 가지고 진행하는 건 상상하기 힘드네요. 새 직장에서 수습 기간을 잘 지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 직장에서는 꼭 오래 다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다시 인사드릴지 아직은 불확실하지만 다시 만나 뵐 때까지 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면 좋겠어요! 살아가는 이야기는 계속 인스타그램 @Cerise.toon으로 전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재공지 (7월 22일, 8월 5일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