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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l 25. 2021

이지영, "심리 계좌"

사소한 일상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재무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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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군대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일까. 축구? 야구? NBA?. 이 주제들은 주관심사가 아니다. 굳이 나누자면 비주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식, 비트코인에 빠져있다. 나의 주관이 들어간 표현에 따르면 '돈놀이'.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채감상 80% 이상의 사람들이 '투자'를 하고 있다. 비트코인을 하는 사람도 있고, 선물 거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관심 없어 보이는 사람도 본인이 선발한 유망한 기업에 투자 중이다. 뉴스, 기사에서 2030, MZ세대의 주식열풍을 문장으로는 보았으나 이웃의 이야기로 듣고서야 그 파고의 거대함을 느끼는 중이다.


 여기 있는 사람 중  투자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이거나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는 없다. 노동을 해서 임금을 받는 경험이 군대가 처음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첫 월급의 경험이 자연스레 첫 투자로 이어진다. 군대라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 정보 속에서 이루어지는 투자는 위험해 보인다. 투자에 대해 잘은 모른다. 하지만 모르면서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뛰어들면 망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투자에 대해 모르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투자하지 않는다. 문제는 네이버, 구글, 연합뉴스의 정보를 토대로 투자하는 사람이다. 포털사이트 경제기사를 확실한 정보라고 믿고, 그 정보를 토대로 투자한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훈수까지 두는 모습은 재앙에 가깝다. 그들은 자신이 투자에 성공하여 이익을 얻게 된 것은 확실한 정보를 잘 골랐기 때문이고, 자신은 투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라고 확신한다. 그 옆에서 돈을 잃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투자했기 때문에 잃었다며 비아냥댄다. '잘 모르는데 투자하면 망한다'는 이야기를 대단한 권위자의 위치에서 떠든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잘 알고 있다'는 말을 할까.


타노스가 아이언맨에게 '넌 지식에 빠져있다'며 말하는 장면이 있다. 타노스가 말한 지식의 저주는 '나만 알고 있고, 너는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성공하고 너는 실패한다.'는 근거 없는, 왜곡된 자기 확신이 '저주'라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경제기사를 보며 확신을 가지는 이들도 비슷한 저주에 빠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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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업에 투자를 할 생각이 없다. 투자를 해서 이익을 볼만한 자본금도 없고,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도 않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 사랑하는 사람 두 명정도 건사할 정도면 충분하다. 30평대 아파트는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자동차는 지구를 파괴하고 내 생명을 위협하기에 죽어도 가지고 싶지 않다.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길고양이 밥을 주며 살고 싶다. 쉬는 날에는 애인과 잘 내린 커피 한 잔과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면서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싶다. 편리해서 금방 질리는 삶이 아니라 삶의 불편함을 안고서 꾸준히 노동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삶을 지향하는 인간인데, 나의 재정계획은 어떻게 해야 할까? 너도나도 영끌을 해서 부동산을 구매하고, 삼성전자 주식에 전 재산을 들이붓고, 공모주에 목숨을 건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핸드폰 켜서 주식 확인하며 스트레스받고 싶지도 않고, 극적인 주가 상승으로 떼 돈을 벌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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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중에 재무설계에 관한 책들을 보면 '100일 만에 10억 만들기 따위'를 구호로 내건 책들이 대부분이다. 건물주가 되고, 월급쟁이가 20억을 손에 쥐어야만 성공적인 재무설계라고 말한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책들을 읽으면 조급해진다. 내 재정 계획, 삶이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고고하게 살아가다가 굶어 죽지는 않을지 무섭다. 책을 펼치면 나도 당장 주식을 해야 할 것 같고, 늦기 전에 공모주를 신청해야 할 것 같다. 뒤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밀려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노골적으로 자극한다.


  이 책은 좀 달랐다. 제목부터 다르다. '심리계좌'라니. 재정계획 책에서 보기 힘든 제목이다. 일단 돈의 금액이 들어가지 않고, 나이나, 계층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30세까지 20억 모으기 따위와 다르다. 그래도 재정계획과 같은 책에 강한 불신이 있는 지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중간 정도까지 읽다가 뭉글뭉글 생겨나는 불안감에 덮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근무시간 틈틈이 읽어서 완독 했다. 제대 후에도 읽을 책 목록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2012년에 출판된 책이라 지금 경제환경과는 잘 맞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고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나처럼 살아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책이 돈을 다루는 방식은 시중의 다른 것들과 다르다. 시중의 책들이 돈을 불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돈을 쓰는 일에 관심이 있다. 돈은 모으는 것이 아니며 어떤 삶과 가치를 위해 어느 시점에 사용할 지에 대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저 돈을 모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삶의 행복을 끊임없이 유예하는 일이라고 한다.


  책에 따르면 재정계획을 세우고 돈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돈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투자를 권장하지 않는다. 일반 서민들, 개미라 불리는 사람들이 투자를 해서 성공하기가 어렵고, 성공하더라도 지속 가능할 수 없고, 지속 가능하더라도 그 효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을 특정한 곳에 묶어두고도 생활할 돈이 충분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렇지 않다. 매달 생활비에 쪼달린다. 그러다 보니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적을 수밖에 없고, 투자하는 돈이 적으면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봐도 그 금액이 적다. 그 작은 돈마저도 서민들에게는 중요한 돈이다 보니 오름과 내림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결국 그 투자한 돈 때문에 불행해진다. 그 스트레스를 끝내기 위해서 전재산과 빚까지 내가며 투자를 한다. 그 투자의 말로는 대부분 투자 실패 그리고 무너진 삶이다.


  그러니 돈을 모으기 앞서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을 설정해야 한다.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누구와 함께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그것이 결정되지 않으면 재정계획 역시 수립될 수 없다. 책을 읽을 때 행복한 나는 다른 돈을 조금 줄여서 책을 구매하고, 읽는 것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다른 부분은 그에 맞춰서 조종하고 조율하면 된다. 작은 돈이라도 모으는 일만큼이나, 힘들게 모은 돈을 정말 행복하고 사랑하는 일에 잘 쓰는 일 역시 중요하다. 힘들게 모은 돈을 결국 허무해질 일에 소비해버리면, 돈을 모으며 고생했던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다. 그러니 재정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가야 한다. 그 바탕 없이 이루어지는 계획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결국 충동과 욕망, 전시되어 있는 타인의 화려한 삶에 끌려갈 뿐이다.


  '돈'은 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도구라는 말을 자주 읽었고, 들었다. 종종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만큼 그 문장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준 글은 없었다. 가치와 삶을 앞세우고, 돈을 그 뒤에 따라오게 하라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안정감을 주었다. 재정계획 책이 마음의 위로까지 주다니, 이런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세상이 온통 '돈벌이'에 난리지만 이 흐름에 동의하지 않고,  삶의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고 믿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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