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려질 때쯤 되면 날아오는 그의 절망.
부친과 한 공간에서 지내지 않은지도 4년쯤 되었다. 그 후로 부친은 주기적으로 문자를 보낸다. 힘든 날만 골라서 보내는 건지, 그 문자 한 통이 내 삶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문자를 받은 날은 하루가 유독 길다. 평온하던 삶이 늪으로 빨려 들어간다. 요즘은 자주 하지 않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에 이르면 어떻게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
부친이 보내는 문자에 특별한 내용은 없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를 찾아서 칼로 난도질하겠다거나, 우리 집 주소를 다 알고 있으니 언제든 찾아가겠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드러난 바는 없고 그런 시도를 한다 해도 부친은 늙고 병든 노인이 되어가는 중일 테니 동생과 나에게 금세 제압당해 경찰서로 이송되지 않을까.
문자는 그저 ‘망상’과 회한으로 가득하다.
“아들아 자식과 부모는 천륜이라 떨어져 있어도 끝이 아니다. 아버지는 인간으로서 이루고 싶은 것들 다 이루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아버지가 너희를 데리러 가마. 너희 둘은 아버지처럼 돈 때문에 고생시키지 않겠다. 아버지를 믿고 기다려라. 누가 뭐라고 해도 너희는 내 아들들이다.”
문자가 오는 족족 지워버려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의 레퍼토리는 저렇다. 이혼하고 법적으로는 남이지만 너희는 변함없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 자신이 언젠가 부활해서 우리를 데리고 갈 것이라는 엄포. 돈도 학벌도 건강도 없는 부친이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겠다는 이야기는 분명 ‘망상’이다. 그보단 본인 한 몸 건사하고 먹고살 궁리나 해야 할 처지에 가깝다.
저 문자에 어떤 답장을 해도 똑같이 ‘아버지를 믿어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소통은 없고 그의 신앙 고백만 절망적으로 이어진다. 부친은 돈이 없어서 이혼당하고 아들들도 만나지 못한다고 믿겠지만, 그가 가족 구성원에서 멀어진 것은 엄마에게 폭력적 언행을 하고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천륜이니 인륜이니 하는 사람 치고 자식들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창녀’라는 소리를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인생이 순탄치 않았고, 엄마도 부친에게 가혹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둘 중 어느 하나 떳떳한 사람은 없다. 부친이 더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했고 모두가 그것을 목격했다. 부친은 돈도 직업도 없었고, 벌어둔 돈은 엄마에게 모두 넘겨주었다. 그 죄 아닌 죄로 쫓겨난 것이다. 엄마가 더 불쌍하고 좋아서가 아니다. 엄마가 더 영리하게 살아남았고 부친은 어리둥절하게 패배했다.
부친이 상담이라도 받고, 어떤 일이든 노동을 하면서 자립하길 기도한다. 다시 큰돈을 벌어 일어서겠다는 ‘망상’이 아니라 작은 삶의 지지대를 만들어 흔들리면서 걸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근거 없는 소망을 절망스럽게 하소연하는 문자가 아니라 감정을 나누고 삶의 야박함을 나누는 대화를 하고 싶다.
슬픈 일이지만, 부친이 보내는 문자는 나에게 부친이 살아있어서 상속포기나 한정 상속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증거에 불과하다. 그의 생존은 우리 집에 칼 든 중년 남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이고, 집 주소를 알고 있는 할머니는 그 칼부림의 공범이다. 자립하는 인간으로 살면서 부친을 그저 광기에 어린 살인마로 밖에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반전되었으면 한다. 부친이 잠재적 살인마라니 끔찍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