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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Nov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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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이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말 친정아버지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음이 불편해서 일부러 보지 않고 있다가 한참 만에 열어보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고 자식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조급해하고 불안해하면 의심이 더 생기고 너무 내 뜻대로 하려고 하면 일이 더 꼬인단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랑한다."는 말...


마지막 한 줄을 읽으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마음을 고쳐먹고, 생각을 환기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려 다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내 노력에 지나치게 욕심낸 것도 없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요구했고 남들이 바라는 만큼의 대가를 바랐다. 직장에서도 가족에게도 아이들한테도.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누리는 것들이 나한테는 상대적으로 몇 배의 노력을 요구하거나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억울한 감정으로 이어졌다.


가정의 문제도 그랬다.

내 입장이 존중받지 못하는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언제나 시어머니가 중심에 있는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했어도 가정을 지키려고 많이 애쓰면서 지내왔었다. 여러 번을 억누르고 참다가 서러움에 복받쳐 불만을 쏟아낸 것인데, 남편은 나로 인해 가족 모두가 힘들다 못마땅해하였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의 일에 나는 배제되었고 남편의 원가족 체계를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

아이와의 관계도 억울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제 할 일을 성실히 하지 않고 바르지 않은 행동을 해서 야단을 치고 화를 낸 것인데,  분명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 먼저였는데 그런 아이를 보고 부모가 화를 내고 야단을 칠 수 있는 건 보편적이고 타당한 일인데, 아이가 엇나가는 게 아이도 남편도 나 때문이라고 했다.

 

억울함에 남편에게 아이에게 수없이 속으로 소리친다. 당신들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았고 나의 행동은 그러한 상황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라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한 번씩 후-욱 올라오는 이 억울한 감정은 나의 피해의식인 것도 같다.

이 억울한 감정은 나의 생각을 과거에 얽매이게 하고 나의 상황을 퇴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잘잘못을 가려 내가 이긴다고 한들 상대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들이며 상황을 되돌려 보상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오롯이 나의 영역인 일에 집중하고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원하며 서운해했던 이해도 인정도 남의 영역인 것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낸다고 나 스스로 소모되고 지칠 뿐 달라지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와 남편에 대한 기다림의 과정에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서 노력하고 나의 영역에서 마음을 쏟을 수 있도록 지혜로운 감정의 컨트롤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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