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AI낙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가능성은 물론 있다. 그러나 설령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하더라도 그것이 AI에 떠밀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의 차지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늘날 일본인의 노동력이 AI의 노동력과 질적인 측면에서 비슷하다는 말은, AI로 대체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가 대부분의 인간에게도 난도 높은 일자리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도쿄 대학에 합격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어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게 아니었다. 내가 프로젝트에 참가한 목적은 AI가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으며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AI의 시대가 찾아왔을 때 인간이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지가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 한 학년에 다니는 학생의 수는 약 100만 명이며 그중 절반인 50만 명이 센터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도로보군은 이 가운데 상위 20퍼센트에 드는 성적을 냈다. AI의 성적이 화이트칼라를 지향하는 젊은이의 중앙값도 아니고 평균값을 크게 웃돈 것이다. 앞으로 이 나라의 노동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해야 도로보군에게 뒤처진 80퍼센트의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안겨줄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일본은 1965년~1970년에 걸쳐 지속되며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두 번째로 길었다고 하는 이자나기 경기조차 능가하는 장기간의 호경기를 누리고 있다. 기업의 이익잉여금도 과거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호경기에도 임금의 중앙값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략)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이노베이션에 따른 노동자의 양극화이다. 이노베이션으로 대체 가능한 인력의 노동가치가 급속히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표층적 독해는 할 수 있지만 추론이나 동의문 판정과 같은 깊이 있는 독해를 하지 못할 경우, 문장을 읽는 데는 어려움을 겪지 않더라도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복사해 붙여 넣는 방식으로 리포트를 쓰거나 반복적인 문제 풀이와 암기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있지만, 리포트의 의미나 시험의 이미는 이해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AI와 비슷하다. 그리고 AI와 비슷하다는 말은 능력 면에서 AI로 대체되기 쉽다는 뜻이다.
1보다 작은 숫자끼리 아무리 많이 곱한다 해도 1보다 커질 수는 없다. 아니, 곱셈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한없이 0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1.1이든 1.01이든 1보다 조금이라도 큰 수는 계속 곱해 나가면 무한히 커진다. (중략) 나는 수학자로서 "특이점은 오니 않는다"라고 단언한다.
AI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다. 입력에 반응해서 '계산'한 답을 출력할 뿐이다. AI의 눈부신 발달에 현혹되어 잊고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컴퓨터는 어디까지나 계산기다. 계산기이므로 할 수 있는 일은 기본적으로 사칙연산뿐이다. AI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의미를 이해한 척'을 할 따름이다, 게다가 사용하는 것은 덧셈과 곱셈뿐이다. (중략) 그래서 AI연구자들은 영상 처리를 하는 방법, 질문에 응답하도록 하는 방법,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방법 등 세상의 온갖 것을 수식으로 나타내기 위해 매일같이 두뇌를 전력으로 가동하고 있다.
수학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 확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 통계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밖의 것은 표현하지 못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좋아해"와 "나는 카레를 좋아해"의 본질적인 의미 차이도 수학으로 표현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이것이 도로보군의 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마존의 답이 늘 옳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데이터 부족, 프로그램 오류, 목표 설정 혼란, 삶의 근본적인 무질서 때문에 알고리즘은 반복해서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마존이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평균적으로 우리 인간보다 낫기만 하면 된다.
(유발하 하리_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