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추상적인 개념적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체계적으로, 또 정밀하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바로 수학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구나 달의 각 표면에 굉장히 연속적으로 분포한 점과 점들끼리 사방에서 끌어당기는 이 모든 중력을 다 더해야겠죠? 양쪽에서 다 똑같이 끌어당기고 있으니까요. 여기에서 '연속적으로 더해준다'는 개념이 바로 적분입니다. 정량적으로 모든 등식을 이용해서 중력장 등식과 힘을 재는 등식, 운동법칙 등을 다 감안하여 적분을 해주면, 결국 달의 중간에서 지구 중간 사이의 거리만 재면 된다는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이 공식을 활용하지만, 처음에는 전혀 당연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거리를 재라는 거냐' 같은 질문에 먼저 답하지 않으면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 법칙을 구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레 적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죠.
좌표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표현법입니다 데카르트가 바로 이 표현법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고 수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기하학을 대수적인 방법, 즉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여기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페르마도 좌표계 이론을 만들었지만 후대에 미친 영향은 데카르트의 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사실 뉴턴의 운동법칙도 그 자체만으로는 모순을 일으킨다는 관찰을 통해 상대성 이론을 낳기도 했죠.
수학사에는 틀린 증명과 틀린 정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수많은 실패가 현상을 이해하게 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주곤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약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역시 제한점을 마련하고,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후 연구자들에게 지표가 되어주었습니다.
학문은 항상 진리를 근사해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가끔 오류가 나오거나 나중에 교정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습니다 (중략) 수학을 선험적인 지식으로 인식하게 되면 수학에 약간의 흠만 있어도 다 무너져버릴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확실한 앎'에 대한 집착이 불러들인 일종의 환상이죠. 실제로 세상에 확실한 게 어디 있겠어요?
수학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이 답을 찾아가는데 필요한 명료한 과정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문제에서도 정답부터 빨리 찾으려고 하기보다 좋은 질문을 먼저 던지려고 할 때, 저는 그것이 수학적인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대범하게도 수학적 사고를 통해서만 우리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우리가 찾으려는 답이 이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