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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데레사 Jul 24. 2019

내가 먹은 유기농 음식과 두려움

삶의 자세를 돌아볼 시간

나는 이제 내 주변 사람들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혹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삶의 관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더는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병도 나이 듦도 죽음도 돈이 부족해지는 것도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죽음이 더 이상 공포가 아닐 때 두려워할 것은 별로 없다. 죽음이야말로 늘 최악의 시나리오로 여겨지지 않는가. 죽음이 겁나지 않는다면 그 밖에 두려워할 것이 뭐가 더 남겠나?

한 인도 여성의 말이다. 참 부럽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일상에서의 많은 속박이 사라질테니 말이다. 

그럼 이 여성은 어떤 연유로 이러한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바로 임사체험이다. 임사체험은 내용 자체가 굉장히 주관적이고 드문 사례라 있는 그대로 믿기가 힘들다. 믿는다 해도 나에게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일이니 흘려듣기 쉬운 정도가 아니라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임사체험 이후 저자의 삶의 자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의미있는 시사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싱가폴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라난 인도 여성이다. 홍콩과 문화적 이질감이 심한 힌두교 여자아이가 홍콩에 있는 영국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어떤 처지였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백인 영국 아이들에게 배척 당하고 남녀의 역할이 확실한 가정 내에서 딸로 자라며 유교적인 문화권에서 삼중으로 느꼈을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온 삶의 길을 봐! 왜 난 늘 내게 그리도 가혹했을까? 왜 늘 스스로를 그토록 혼내기만 했을까? 왜 항상 자신을 그렇게 냉대 했을까?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중략) 그냥 내가 되는 대신 늘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면서 스스로를 모독했었지! 왜 나의 아름다운 가슴을 따르지 않고 나의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중략) 나는 늘 노력을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든지 사랑받을 만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몹시 놀랐다. 


압박과 문화적 차별 속에서 자란 저자는 신혼시절 가장 가까운 친구와 남편의 매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험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암으로 힘든 모습을 본 저자는 죽음이 너무 두려웠기에 필사적으로 유기농 음식을 먹고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도 암 판정을 받았다. 투병의 힘듦을 알기에 저자는 인도의 아유르베다, 한의학, 양의학을 아우르는 치료법을 모조리 시도했지만 결국 산소통 없이는 호흡도 못하고 앙상하게 말라 신체의 장기가 기능을 다 하고 죽음을 앞둔 채 응급실로 실려왔다. 의식은 없고 몸은 빠르게 기능이 멈추고 있다는 결과들만 속출할 무렵 저자는 혼수 상태에 들어간 지 30시간만에 극적으로 의식을 찾았다. 그리고 거짓말 처럼 온 몸의 림프마다 있었던 레몬만한 종양들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저자는 더 일찍 퇴원할 수 있었으나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을 이해하고자 여러가지 검사와 시술을 거치고 나서 마지못해 퇴원을 승인해 준 의사 덕분에 5주 만에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꿈같은 임사체험 동안 저자의 경험은 저자 스스로도 인간의 언어에 많은 한계가 있음을 토로할 정도이니 서평에서 굳이 다루지는 않겠다. 대신 죽음에서 돌아와 찾은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는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두려움이다.

제일 친한 친구 소니에 이어 남편의 매부까지 암 진단을 받은 뒤로는 암에 대한 두려움이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별안간 암이 닥쳤다면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모조리 실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암 예방법에 대해 읽으면 읽을수록 암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더 늘어만 갔다. 내 눈에는 모든 것이 암을 유발하는 것같이 보였다. (중략) 전자레인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 방부제가 들어간 음식, 휴대폰까지... 모든 것이 암을 유발하는 것 같았다. 암자체도 무서웠지만 암 치료법, 즉 항암 치료도 무서웠다. (중략) 내가 할 수 이는 일은 그게 뭐든 가리지 않고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모두 소용없을 거라는 믿음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죽는게 정말이지 무서웠다.


이 서평의 첫 글과는 너무나 상반된 저자의 마음상태다. 솔직히 나를 포함한 일반 사람들의 병과 죽음에 대한 관념이 이와 얼마나 다를까? 거의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극적인 변화를 맞았으며 이 완전한 전환을 이룬 계기는 임사상태에서의 깨달음이다. 그 첫째 단초는 마음과 영혼에 대한 분간이다. 

마음은 '행위함'에 더 관련되고, 영혼은 '존재함'에 더 관련되어있다. (중략) 지성은 끼니를 잇고 집세를 내기 위해 얼마나 돈을 벌어야 하는지 계산하는 데 반해, 영혼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할 뿐이다.


더 살펴보자.


오랫동안 오직 머리의 소리에만 의존해서 살다보면, 우리는 자아와의 연결을 잃어버리고, 그 결과 길을 잃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저 '존재'하기보다 계속해서 뭔가를 '하는'상태에 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중략) 존재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순간에 머물면서 감정과 느낌을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 '행위함'은 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음은 특정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를 여기저기로 데려가며 무슨 일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떤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구글 직원도 페이스북 직원도 장려한다는 마음챙김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잡다한 걱정과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자발적으로 의식적으로 마음챙김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언젠가 엄기호 작가가 진정한 공부레벨업 하듯 무념한 공부와의 큰 차이점으로 '분주함'을 언급한것 또한 맥을 같이 한다. 자기이해가 없이 외부 환경에 의해 또는 상사의 명령때문에 분주한 노예의 삶이 바로 목적과 서사가 없는 공부라고 했다. 여기에서 "공부" 대신 "인생"을 대입해도 틀린 말이 아닐것이다. 

이런 사실을 저자는 죽음의 문턱에 가서야 깨달은 것이다. 


내 행동이 '행위함'에서 나오는지 '존재함'에서 나오는지 보려면 매일매일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감정이 뒤따르는지 보기만 하면 된다. 결정의 동기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열정인가? 내가 날마다 하는 모든 행동들이 삶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행동이 두려움의 결과라면 나는 '행위하는'상태에 있다.


저자 또한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두려움에 분주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건강 자료를 찾고 좋다는 치료법은 다 시도하고 몸에 해가 없다는 음식만 가려먹었다. 나를 추동하는 힘이 두려움이라면 아무 좋은 음식도 치료법도 결국 두려움이 향한 결과로 내달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네 일상은 어떤가? 

나는 얼마전 부터 성가대 활동을 시작했다. 내 결정이 '하느님을 향하지 못한 내 삶의 반성 내지는 보상'이 아닌 '순수하게 하느님을 노래하기 위함'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를 확장하여 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이유, 전투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이유, 매일같이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이유, 책을 읽는 이유, 밥을 짓고 먹는 이 모든 것들을 왜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도 좋겠다. 


여기에서 오해하기 쉬운 부분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나는 내 마음가짐이나 생각을 바꾸어서 병이 나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중략)긍정적인 생각 같은 것이 병을 낫게 했냐고 묻는 이들이 많지만, 대답은 '아니오'이다. 임사 체험 동안 내 상태는 마음을 넘어서 있는 상태였고, 내가 치유된 것은 내 파괴적인 생각들을 다른 생각으로 고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그저 말끔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thinking의 상태에 있었던 게 아니라 존재being의 상태에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 즉 두려움이 없어졌으니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되겠다는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행위함'과 '존재함'에 대한 관념이 바로 이러하다. 허무맹랑할 수 있는 임사체험에 관한 이야기지만 내가 눈여겨 보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마음챙김을 할 때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나의 상태에 존재함을 느끼는 것, 그리고 한껏 휘저어 놓은 흙탕물처럼 일어나는 감정이나 상념들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는것이다. 불교의 명상(아시아의 명상인구보다 서양의 명상인구가 더 많다고 한다)도 다르지 않고 천주교에서 기도 할 때도 기도할 때 떠오르는 잡념을 판단없이 수용하라고 가르친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따라 어떤 정책이나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나를 자각하는데에 있어서는 이토록 비슷하며 특정 종교가 없는 임사체험인의 관념도 다르지 않다는 걸 보면 그만큼 나로서 존재함이 중요한 삶의 태도라고 볼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문제를 보는 저자의 의식을 들여보자.

세상에서 보이는 문제들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판단하거나 증오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증오하는 데서 나온다. 

연일 떠들썩한 살인사건과 일본과의 무역,외교 마찰들이 떠오른다.

나는 나를 판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존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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