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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데레사 Jun 15. 2020

어른이 된다는 것

feat.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외할머니의 죽음


20여 일 전 나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외손녀로서 외할머니의 상을 겪으며 삶은 죽음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몸서리치게 느꼈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차가운 이마에 손을 얹으며 그동안 외삼촌만을 편애하고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던 분을 향한 나의 원망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떤 감정도 결국 대상이 있을 때만이 품을 수 있기에 미움은 극적으로 용서와 안쓰러움으로 변했고 삶의 덧없음이 이런 것이려니 짐작했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마지막을 기리는 장례의식에는 돌아가신 분을 위한 의식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분은 산 자를 위한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화환과 조문객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대화들.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나 같은 자손과 살아있는 친지들은 그녀를 기릴 책임도 권리도 있기에 장지를 정하고 어떤 규모로 기일을 지낼지 정하고 유산을 처분하는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가 종친회 살림을 꾸리며 선산 관리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 많은 일가 종친들의 무덤과 유산을 누가 계속 관리할지는 결국 산 자의 몫인데 언제까지 돌아가신 분을 위한 헌신을 할 수 있을까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나는 부쩍 '어른'이 된 느낌이 들었다.

어른이 되는 것은 결국 '죽음'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점차 나이 드신 일가친지들의 죽음을 몇 번이고 겪으며 나도 내가 사랑하는 직계가족도 언젠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만할 일이 아닐까?


유산


외할머니는 평생을 시골에서 1910년대~2020년대를 사셔서 그런지 이렇다 할 유산이라야 상식을 벗어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서 일이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부터 '관리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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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의 신이 나를 방문할 것이란 점을 잘 안다. 내 몸도 할머니의 몸처럼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와는 달리, 나는 수십 년에 걸친 온라인 활동의 잔재인 디지털 먼지 역시 남겨놓을 것이다. 기술을 혐오하면서 은둔자처럼 살아가지 않는 이상, 당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무한정한 기간 동안 허공을 떠다니게 될 당신의 그 디지털 먼지는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p.410]


사라지지 않는 데이터


세상을 떠난 여자 친구를 힘들게 보내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났는데 갑자기 죽은 여자 친구의 SNS 계정에서 '다시 사랑에 빠지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니?'라는 메시지가 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죽은 아이의 SNS 계정을 보며 위안을 삼고 있는데 갑자기 그 계정을 볼 수 없고 친구들만 추모할 수 있게 된다면?

당사자와 일면식도 없는 SNS 회사의 직원이 죽은 이의 계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 합법이라면?

나의 디지털 유산이 사후에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면 그 경제적 이득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디지털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역사에 남는 몇몇 사람을 빼면 죽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잊힐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죽은 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외의 방법으로 추모가 진행될 수도, 생전에 남긴 검색어나 블로그 때문에 인생이 사실과는 다르게 윤색되어 기억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누구는 고통을 받을 수도 누구는 위안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디지털 공동묘지 회사를 만들어 돈을 벌 수도 있다.


결국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데이터는 남아 산자의 무수한 행위들로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일이 나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비교적 간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죽음에 관한 책과는 분명히 다르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가 사후 남기게 될 디지털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지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우리에게 생각할 기회를 선사한다.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고 예비하는 작업은 분명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외면하여 남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혼란을 주는 일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랑하는 이를 위한 선물이 될 수 있거니와 나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존귀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조언


내 관점은 나 자신의 개인적 환경과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당신의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끝내면서 당신에게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열 가지 일반 원칙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원칙들을 디지털 시대의 삶과 죽음을 대하는 하나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고, 자신의 디지털 흔적들을 건설적으로 대하도록 돕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사색을 자극하는 촉매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p.411]

1. 죽음에 대한 불안에 직면한다.

가장 기본적이고도 어려운 원칙이지만 꼭 필요하다. 이 작업을 잘한다면 내가 디지털 활동을 하면서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2. 항상 점검하고 결코 추정하지 않는다.

모든 중요한 온라인 계정의 이용약관을 찾아 사후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3.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나의 디지털 활동이 다른 사람에게 충격을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4. 죽음과 디지털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사후 장기 기증이나 유산, 장례 방식 등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와 하는 것은 절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어려운 일을 했고 디지털 유산에 관한 항목도 포함한다면 가족과 이 주제와 관련된 모든 이가 입장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5.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유언장을 작성해 둔다.

6. 권리를 위임받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마스터 패스워드 체계를 구축해둔다.

7. 당당한 큐레이터가 된다.

큐레이팅을 인위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기보다 사랑하는 이들과 후손을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8. 더 많은 접속이 항상 더 나은 기분을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죽은 사람의 디지털 정보를 탐색하는 것은 소중한 선물일 수도 혼란으로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일 수도 있다.

9. 오래된 방식을 존중한다.

가끔씩이라도 디지털 자료 중 리부를 선택해서 물리적 자료로 변환해둘 필요가 있다,

10. 불멸 같은 건 잊는다.

첫 째 지침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로 유한한 삶을 산다는 감각을 잊지 않을 필요가 있다.

즉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는 말이다.



책을 덮으며


진시황은 영생을 위해 병마용갱을 지었고, 영국 드라마 years and years의 등장인물인 베서니는 트랜스 휴먼이 되어 알고리즘으로 영원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토록 우리의 생존 본능은 형태만 달라질 뿐 디지털 시대를 산다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가 증명하듯 사후 의식들은 산자를 위한 산자의 의식으로 남는다.

개인적으로 외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나와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미루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디지털 차원에서의 사후 행태를 견주어보았다.

저자의 원칙은 아직도 겁이 나고 힘든 과정이라 쉬이 진행하기 어렵지만, 꼭 필요한 작업임은 틀림이 없다.

나를 위해서, 또한 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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