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처음 만난 그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앙칼진 눈매, 굳게 다문 입, 쓸데없는 수식어 없이 깔끔한 언어. 대화의 비율은 나의 질문 80%와 그의 단답 20%으로 이어졌다.
“서울에선 뭐 하다 왔어?”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주로 내려왔어.”
“아….”
당연히 사람이 일어나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오지 않았겠는가. 어떻게 사람이 일어나지 않고 곤히 잠든 상태에서 비행기를 탈 수가 있지?
뚝 뚝 끊어진 오래된 기찻길 마냥 단어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저 질문의 의도는 2박 3일을 같이 보낼 사람과의 친목을 위한 일종의 스몰 토크였다. 그리고 그를 알아가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하루 이틀 전의 근황을 묻고자 했다. 예를 들면 회사 업무를 하고 왔다면 그것에 대해서 꼬리 질문을 할 수 있고, 넷플릭스 앤 칠을 하다 왔으면 그거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고…
애석하게도 내가 쥐어짠 질문과 답변과 침묵이 줄을 이었다. 이런 사람과 2박 3일을 함께 해야 한다니. 그의 합류 같은 동행에 동의하며 운명의 단짝 영혼의 데스트니 따위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토록 어려울 줄은 몰랐다. 외향과 내향의 성향이 정확히 반반인 내가 이 어색한 분위기를 그냥 두고만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피곤할 것 같은 앞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 치킨집에서 제일 귀찮듯 내향 반 외향 반 인간의 삶도 쉽지 않다.
그는 사실 처음 본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아닌 나의 고등학교 선배이다. 우리는 같은 동아리이긴 했지만 서로 말 한마디 안 해본 사이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느 대학에 가고 어떤 행보를 밟았는지 궁금하지도 알 길도 없는 그런 절대 엮일 일이 없는 사이였다. 서로의 이름을 들어본 적만 있을 뿐 얼기설기 엮일 일이 없었기에. 그런 그와 어쩌다 동행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