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바로 소심이가 느끼는 해외 생활
<해리포터>에는 소심한 소년 네빌이 등장한다. 의외로 마법의 분류모자는 "용기"의 기숙사인 그린핀도르에 네빌을 배정했다.
마법사의 돌을 찾기 위해 오밤중에 몰래 나서려는 해리 삼총사.
그린핀도르가 그때까지 받은 감점에 삼총사가 크게 기여했기에, 네빌은 더 이상의 감점을 막기 위해 친구들을 막아선다.
친구를 막아선다는 것, 보통의 사람에게는 그냥 하는 일이지만 네빌 같은 소심쟁이에게는 다르다.
그는 본인의 타고난 천성과 불편한 마음을 이겨내고 친구들 앞에 섰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본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이것 역시 한 가지 형태의 용기일 것이다.
네빌은 그린핀도르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다 떠오른 재밌는 상상.
만약 네빌이 한껏 남성적인 덤스트랭으로 전학을 간다면 그는 어떤 일을 겪을까, 견뎌낼 수는 있을까?
아마도 초반에는 수업을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울 것이다.
다른 국가의 학교니까 영어를 쓰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선생님이 나에게 말만 걸어도 큰 일인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서로를 아는데 나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인다면 그건 그것대로 부담스럽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고립될까 불안하다.
밥 먹는 게 제일 불편하겠지. 호그와트에서는 따뜻한 대연회장에서 만찬을 했었는데, 여긴 애들이 말도 별로 없고, 무뚝뚝하고, 내가 알던 식사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대범한 헤르미온느나 해리였다면 크게 어렵지 않았을 만한 상황도 네빌에게는 일생일대의 위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빌이 덤스트랭 적응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네빌은 타고나기를 유약했지만 (물론 할머니의 지나친 훈육도 영향이...), 결국은 한계를 넘어서는 아이.
시행착오를 겪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점점 자신의 그릇을 키우다가 결국에는 가장 용감한 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대단한 성과를 냈을 수도 있다.
실은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의 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네빌보다 소심했으면 소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못하는 영어, 낯선 문화, 처음 보는 사람들. 꿈을 찾아왔다는 기쁨보다는, "나는 왜 나약해서는 남들 다 하는 것도 힘들어할까"라는 자책이 훨씬 컸다.
광고주와의 첫 미팅에 들어갔을 때가 기억이 난다. 모두가 영어로 말을 하고 있었고, 나는 모든 이의 말을 정말 새하얗게 알아듣지 못했다.
모든 문장마다 "Sorry"나 "Pardon"을 할 수는 없었고, 광고주가 내게 질문을 할까 봐 가슴이 쿵쾅거리고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넉살 좋은 사람이었다면 못하는 영어로도 말을 척척 붙였을 텐데. 영어를 못하면 성격이라도 대범하든지. 매일 밤은 언제나 자책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단 한 번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소심이 일지언정 꿈이 있는 소심이니까.
그냥 내가 가진 역량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있는 힘껏 했다.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매니저가 짜증낼지언정 일을 그만두지 않았고, 내향인인데도 파티가 있다면 무진 애를 써서 참석했다.
남들에게는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있는 힘을 다해 용기를 내야만 하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웬걸, 의외로 나는 싱가포르에서 2년 반을 보냈다. 놀랍게도 더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자꾸 벽에 부딪혀가며 내 역량을 늘리다 보면 언젠가는 더욱 큰 성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즈음에는 그런 생각을 한다.
하긴, 네빌이라고 알았겠어? 본인이 내기니를 무찌르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