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 근데 내가 느려.
인터넷 밈 중에 그런 게 있다. 싸움의 고수가 상대방에게 "느려"를 시전하는 밈.
그야말로 내가 너보다 우위에 있으며 손 쉽게 이기겠다는 메세지겠지.
요즈음에 나도 "느림”에 대해 생각한다. 근데 난감한 점이 있어. 느린게 상대가 아니고... 나야....(어흑)
정말이지 어려서부터 공부고 운동이고 간에 뭔가를 한번에 배운 기억이 없다.
다음 수업 시간에 가서야 비로소 이해를 한 뒤 그때부터 잘해내기 위해 연습을 한다.
그러니 남들보다 빠를 수가 있겠는가. 단 한번도 초장에 남을 앞질러 본적이 없다.
그렇게 학습 속도가 느린 와중에 새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영어로 배우려고 하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하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프로의 세계에서 느리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
느림보들에게, 특히 사회 초년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 팁을 공유한다.
1. AI야 고마워. 내 직장생활을 살려줘서
바야흐로 AI의 시대. 그러나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아직도 활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놀랍다. 아래는 싱가포르에서의 내 직장 생활을 구원해준 ai 순위이다.
Otter - 영어 회의도 문제 없어
새로운 회사에 조인하면 트레이닝 세션도 있을 것이고 내가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팅도 많을 것이다.
Otter는 영어가 지원되는 녹음 앱으로서 transcript를 써줄 뿐만 아니라 AI에게 질문을 할 수도 있고, 내용을 한국어로 정리해달라고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녹음되는 도중에도 질문이 가능하다!
Perplexity - 정확한 정보가 필요할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보내주는 AI툴이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 B2B 광고주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객사가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가며 이해하려고 든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럴 때에는 Perplexity에게 "OO이 뭐하는 회사야?"라고만 물으면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Microsoft Copilot - 쏟아지는 메일을 정리해주는 구원자.
새 직장에서 메일이 산더미처럼 쌓인다고 상상해보자. 내게 배경 지식이 없기 때문에 모든 메일을 다 읽기 쉽지 않다.
그럴 때에는 Outlook내에 설치된 Copilot에게 "OO에 대해 오간 메일을 요약해줘"라고 하면 끝. 요약 뿐 아니라 메일 원본까지 보여준다. 한국어로 번역해달라고 할 수도 있다.
2. 누가 무슨 업무를 하는지 꼭 기억해두자
사회 초년생일 때는 그저 눈 앞에 닥친 걸 숙지하기 바빠서 다른 팀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 알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누가 무슨 업무를 하는지 혹은 잘하는지를 아는 것은 먼 여정도 지름길로 가게 해준다. 모르는 게 있을 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기 때문.
다만 나의 경우 INFP 심리가 발동되어 상대의 집중을 방해할까 걱정하는 편이다. 그런 경우 질문을 모아뒀다가, "OO시에 30분만 도와줄 수 있겠느냐"라는 식으로 약속을 잡는다.
3. 약자부터 숙지하자!
업계마다, 회사마다 쓰는 영어 약자가 있다. 처음에는 정말 짜증이 난다. 무슨 용어인지를 모르면 전체 내용이 전혀 이해가 안 되기 때문. 그러니 빨리 알면 알수록 좋다.
나의 경우는 스스로 Glossary (용어 사전)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팀원에게 만들어둔 리스트가 있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이때 나의 팁은, 가능한한 약자를 풀어서 풀네임으로도 용어를 적어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고 오래 기억하기에도 좋다.
위의 팁들이 나와 같은 거북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우리는 보통, "거북이는 느리지만 바다에선 누구보다 빠르잖아~"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럼 육지 거북이는 뭐가 돼.
그러나 좌절할 것 없다. 육지 거북이에게는 다른 강점이 있다. 바로 단단함이다. 그래서 포식자의 공격을 받더라도 막아낼 수 있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배우는 게 느릴지언정 한번 숙지하면 어떤 요청이든 기깔나는 제안서와 함께 받아칠 수 있다.
느림보들이여, 포기하지 말자. 속도는 내면 되고, 단점은 강점으로 보완하면 된다. 모든 느린 직장인들과 사회 초년생들이 똑똑하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