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올린다.
이틀 전, 광주 시내 모 교회에서 광화문 집회 참여자가 예배를 봤다는 첩보를 들었다.
지시를 받고, 그 교회 외경을 촬영하러 나섰다.
상황이 어찌 되었건 그 교회 영상은 확보를 해두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교회로 가면서 후배가 이전에 이 교회를 촬영하러 갔다가, 한 컷도 찍지 못하고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중한 시기인 만큼 교회가 예민한 것도 이해가 갔고, 이해하려 했다.
천주교 신자이고 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니 상식은 통할 것이라 기대했다.
교회에 도착해서 멀리서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여섯 컷 정도 찍고, 반대편으로 찍으러 옮겼을 때.
'누가 찍으라고 했어?'
누군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다가왔다. 마스크는 쓰지 않은 채.
'누가 찍으라고 했냐고?'
'저희 초면인데, 이렇게 반말하시면서 삿대질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누구 마음대로 찍으라고 했냐고?'
'저희가 교회를 들어가서 찍은 것도 아니고 밖에서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얼굴을 찍은 건데 누가 마음대로 이렇게 찍으래?'
'선생님. 저희가 찍어도 상호나 특정할 수 있는 것들 다 가려서 나갑니다. 확진자 나와도 여태 개인 사유지들은 다 가려서 내보냈고요.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어허 그래도!'
'선생님, 초면에 저한테 이렇게 막 훈계하시 듯 하셔도 돼요?'
'어허! 훈계해도 되지 그럼! 말도 안 하고 찍는 게 어디 있어?'
'선생님 저희가 찍는다고 말하러 여길 어떻게 들어갑니까.'
'그래도 말을 했어야지!'
'저희가 찍은 영상을 어디에 어떻게 쓸 줄 알고 화부터 내십니까? 선생님 화내시는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은데요, 일단 진정하시고요.'
'안 그래도 구청 담당자들 와서 상의하고 있고만, 예민한 시기에. 찍지 마 찍지 마요.'
'선생님. 저희는 재난주관방송사에요. 지금 사회적 재난이고요. 선생님께서 찍지 말라고 화 내시는 그 이유 때문에 왔어요. 나중에 확진자 나오면 뉴스를 내보내야 할 것 아니에요. 자료 영상 찍으러 온 거예요. 그 때까지 이 영상 안 써요.'
'내가 기자들 거짓말하는 거 많이 봤어. 가만히 있어봐. 내가 관계자 나오라고 할 테니까. 나는 평신도야. 평신도. 찍지 마요. 찍지 마.'
이 긴 대화는, 나의 반경 1m 안에서, 상대방 마스크 착용 없이 일어난 일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무서웠고, 사유지인 교회 영내를 들어가지도 않고 분명 밖에서 찍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그날 밤. 그 교회에서 30명가량의 확진자가 생겼다는 속보를 접했다.
나 그리고 같이 나간 촬영보조, 자가격리행.
화가 많이 났다.
지난 8개월간.
위험한 곳을 스스로 찾아 들어감에도, 스스로 잊고 무던해지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내가 늘 조심해야 한다는 노력은 놓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나의 동료들을 위해.
매번 조심했던 그 모든 것들이 물거품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 9시가 되자마자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확진자 폭증으로 2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려 겨우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결과는 이틀 정도 뒤에 나와요.'
다행히 결과는 생각보다 빠른 20시간 만에 나왔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나 자기 가족들이 '자가격리 대상이 된다면 어떤 감정일까?'를 생각해보고 행동했으면 한다.
혼자 사는 나는 무섭고 많이 무섭고 무서웠고 무서웠다.
혹시 오밤중에 고열에 시달릴까 봐.
이번 일을 토대로 나만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조심하고 싶어도, 나와 함께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개선이 없다면,
아무리 방역을 잘해도, 아무리 마스크를 껴도 이 상황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제발.
이 힘든 상황에 많은 이들이 위험성을 공감했으면 좋겠다.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많이 발생한 곳으로 출장을 가라고 해도 거부하지 않을 테니,
부디 지쳐 쓰러져 가는 의료진과, 미래가 불투명해진 고 3학생들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지도 모르는 소외된 이웃들과, 이 상황에서도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할 가장들과,
밖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할 우리 모두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