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자동차 성애자.
엔진 소리만 들으면 괜히 심장이 뛴다.
태생이 네 바퀴 탈 것에 꽂혀있어,
밤에 보이는 헤드라이트 불빛,
자동차 바퀴 모양만 봐도 브랜드와 차 이름을 알았다고 한다.
의사표현이라곤 기껏해야 옹알이던 시절.
부모님께서 고기를 드시러 가시면, 나를 포대기로 잘 싸서 숯불을 넣는 불판 위에 올려두셨다고 한다.
(물론 뚜껑은 덮은 채로)
그러면 나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징징거리지도 않고 한 가지에 집중했다고 한다.
나를 둘러싼 그 불판이 핸들이라고 내내 붕붕거리며 놀았다고.
그렇게 나의 핸들링은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에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붕붕카를 해가 질 때까지 타야 직성이 풀렸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동차 레고를 선물로 받으면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한 종류의 자동차 미니카에 꽂히면 색깔별로 다 갖고 싶어 했다.
모든 것이 자동차였다.
나이를 빨리 먹고 싶었다.
나도 운전을 하고 싶었다.
수능을 보고 1월 1일이 지나 드디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술, 담배보다 먼저 하게 된 것은 운전면허 취득이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장내, 도로 주행 모두 만점을 받았다.
타고난 노안(?)이었던 덕분에, 시험관은 이런 말을 했다.
"젊은 양반이 어쩌다가 면허를 취소당해서... 옆에 탄 사람 검시관 좀 해줘요."
내 첫 차는 아빠가 물려주신 크레도스라는 차였다.
처음이라는 게 늘 애틋하지 않은가.
차 관리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애지중지 했던 기억이 난다.
타이어의 종류고, 엔진오일이고, 최대 토크고, 몇 마력이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그저 차가 마냥 좋아서 기름만 넣으면 굴러간다는 것에 만족했다.
여담이지만 차가 오래됐기 때문에 에어컨 가스가 자꾸 샜다.
찬 바람이 나오지 않아 한 여름 내내 문을 열어놓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애석하게도 이 차는 내가 주인이 된 지 2년 뒤 폐차장으로 떠났다.
사고를 낸 건 아니지만 오래됐고, 차를 유지하기에는 오히려 부품 값이 아깝다는 진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센터에서도 부품이 없어 아빠가 폐차장에서 멀쩡한 부품을 구해오셨던 기억이 난다.
하이브리드 엔진이 접목되기 시작한 지 초창기 모델이라, 지금처럼 전기로만 차를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동력을 보조하는 용도로 하이브리드 모터가 달려있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부터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이 가스차를 뽑을 수 있게 되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스차를 타봤다.
(렌터카 제외, 자차 소유 기준)
이 차는 꽤나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2012년부터 취업하기 전까지.
나와 함께 꽤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던 차였다.
어쩌면 이 차를 타고 다니며 운전을 많이 깨우쳤다고 할까?
운전은 어디 가서 자랑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운전을 못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 이 차 덕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차를 타면서 타이어가 펑크 난 것 외에는 딱히 나의 잘못으로 고친 곳은 없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이 차에겐 고질적인 결함이 있었다.
운전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뒤에서 확 밀어주는 토크감을 즐기게 되었는데,
비실비실한 가스차로 토크감을 느끼기엔 과한 가속 페달 전개 말고는 없었다.
과속을 할 수는 없으니, 급출발을 하는 운전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으르렁 거리는 소리까진 아니지만 RPM 게이지가 올라갈 때 나오는 엔진음이 그냥 좋아서.
앞서 말한 결함 문제는 과전류로 인한 결함이었다.
과한 가속 페달 전개로 인해, 과전류가 흘러 헤드라이트가 자주 한쪽이 나갔었다.
결함이라 기아 자동차 센터를 가면 늘 바꿔주긴 했다만 여간 불편한 일이었다.
이 차를 취업하기 전까지 흠집 하나 없이 잘 타고 다녔는데,
동생에게 물려준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량 전복 사고가 나서 폐차장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래도 고마운 건,
차량이 전복되고 차를 지지하는 중간 프레임이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열심히 관리해줘서 고마웠다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