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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n 21. 2024

소록도, 걸을 수 없는 건널 수 없는 그 바다

1월 1일이었다.

첫 번째 맞는 휴일이어서 더욱 들떠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출을 보려고 바다로 나왔는데 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아무 기미 없이 주변은 금세 환해졌다.


'오늘 뭐 하지?'

'특식 먹으러 가요, 짜장면'


그렇게 짜장면을 열렬히 먹고 싶은 다섯 명은 독수리 오 형제도 아니고 짜장면오형제가 되어 짜장면 탐험대를 결성했다.


짜장면에 대한 열망이 가장 컸던 H가 탐험대장을 맡았다.


'저는 군대도 다녀왔고 길도 잘 찾아요. 우리 중국집을 찾아봅시다'


짜장면 사형제는 자신만만한 탐험대장의 뒤를 쫓아 중국집을 찾아 나섰다. 체력과 시간이 넘쳐났던 우리는 걸어서 거금대교를 건너기로 결정했다. 거금대교는 차가 다니는 길도 있지만, 그 아래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게 인도도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거금대교 : 1층은 사람이 다니고 2층에는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다.


하지만 거금대교를 찾는 길조차도 쉽지 않았다. 처음 가본 길이라 다리의 입구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수풀을 헤치고 가다 보니 막다른 낭떠러지에, 바다에 다다랐다.

보이지 않는 다리만 하염없이 찾다 보니 탐험대장의 약간 까무잡잡했던 얼굴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어떻게든 우리는 짜장면을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슬슬 배도 고프고 모두들 헉헉 대며 표정이 썩어갈 때쯤, 탐험대장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투명하게 보일 때쯤 거금대교의 입구를 찾았고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바다 위를 걸어갔다.


바다 위를 걷는 사람들
거금대교 인도 모습  : 양옆은 바다다. 겨울에는 바람이 너무나 세차게 분다

 이 다리만 건너면 짜장면과 짬뽕국물과 탕수육이 있을 거라는 엄청난 기대아래 모두들 후들거리는 다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바다를 건너갔다.


대교를 건너서도 한참을 걷다가 시내를 발견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걸어온 길이 8km였다.)

짜장면 탐험대는 기대에 가득 차서 이런 시내에는 중국집이 한 두 군데는 있을 거라며 서로 다독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방앗간, 철물점, 편의점이 차례로 나왔다


두근두근.


그리고 빨간 간판...! 중국집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다.

흥분한 우리는 중국집 앞에 섰다. 거기에 적혀있던 말


'1월 1일은 쉽니다'


탐험대장과 네 명의 짜장명 탐험대는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왜 오늘 문을 안 여는 거야. 왜 문을 안 열긴 여긴 시골이었다. 오늘은 다들 집에서 떡국이나 먹는 날로, 짜장면 따위는 시키지 않는 날이었던 것이다.


춥고, 배고프고, 서글펐던 짜장면 탐험대는 중국집을 더 찾을 것이냐 말겠이냐를 30초 정도 회의하다가 아주 빠르게 포기하고 컵라면 탐험대로 탈바꿈하여 편의점에서 원래의 목적이었던 것처럼 컵라면을 공격적으로 흡입하고 과자를 몇 개 집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혈색이 돌아온 탐험대장이 말했다.


'우리 그냥 택시 타고 돌아가요'


그랬다. 여긴 콜. 택. 시. 를 부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의 세 시간의 여정을 10분 만에 끝낼 수 있던 것이었다.




소록도에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다리가 두 개가 있었다.

소록대교와 거금대교.

소록도의 북쪽으로 소록대교가, 소록도의 남쪽으로 거금대교가 있다.

소록대교를 건너서 화려한 육지인 녹동으로 갔으면 짜장면을 바로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굳이 거금도로 간 이유는 '섬에서 짜장면 먹기 미션'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소록대교는 걸. 어. 서. 건. 널. 수. 없. 는.  다리였기 때문이다.


소록도 주민들의 많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고흥군과 녹동 사람들의 반대로 소록대교에는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인도가 놓이지 않았다. 소록도 주민들이 녹동에 나타나면 고흥군에 발을 디디면 전염병이 옮을 거라고, 관광객이 오지 않을 거라고, 보기도 싫다고 고흥군의 주민들이 온 힘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만('한센병을 앓았던'이 더 정확하다 이미 옛날에 완치 됐기 때문에) 살 수 있도록 법으로 지정된 곳으로(그들이 일군 곳이기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 주민의 평균 나이는 75~80세 정도이고 주민수는 500명이 안 된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미개했던 시절에 한센인들은 자궁이 적출되고 인체 실험을 당하고 개간했던 땅을 빼앗기고 학살을 당하는 등 어마어마한 고초를 겪었다. 이제는 완치됐음에도 불구하고 병의 흔적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전염병자 취급을 받고 살고 있으며 사람들의 편견에서, 혐오와 냉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가 못하다.


한센병은 병이 치유되지 못하고 계속되면 눈이 멀거나 피부의 끝이 감각을 잃어버리고, 기능하지 못하고 서서히 떨어져 나간다. 중증인 한센병 환자들은 말초신경의 끝인 손가락, 발가락, 더 나아가서는 팔꿈치와 무릎 아래가 소실된다.


그분들은 대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인도가 있으면 어디든 갈 수가 있다.


허나 녹동은 그분들을 '입밴'한 것이다.




사실 짜장면 탐험대가 녹동을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1. 소록도에서 녹동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간다 : 하루 두 번 9시, 17시

2. 택시나 차를 탄다.


자원봉사자였던 우리는 녹동에 가는 두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배를 타는 시간은 애매했고 택시 타기에는 다섯 명이 차 두대를 불러야 했기에 거금도를 걸어가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겨우 짜장면 먹으려고 이 고생을 했는데, 주민들은 어땠을까?


사람들의 시선에도 발이 묶이고, 실제로 그래서 어디로든 갈 수 없는 답답함.


우리가 못 먹은 것은 짜장면일 뿐인데,

주민들은 소록도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맘껏 먹고 누릴 수가 없다.

식당이고 미용실이고 극장이고 뭐든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거주지와 병원과 종교시설이 있을 뿐이다.




내가 주로 봉사활동을 한 곳은 시각장애인 할머니들이 사시는 곳이었다.

그중에 가장 친했던 할머니는 영자할머니였는데 첫 일주일은 마음을 별로 안 열다가 시간이 지나자 이것저것 일을 시키셨다. 집에 있는 구석구석의 먼지를 닦아달라고도 하셨고, 그냥 옆에 머물러서 이야기를 하자고도 하고, 목욕을 해야 하는데 등에 손이 닿지 않으니 등을 밀어달라고도 하셨다.


할머니는 가족이 없었다. 자궁이 없으니 아이도 없었다. 남편도 당연히 없었다.

매일 아침 걸어서 근처 교회로 갔다 오시는 게 하루 일과였다. 영자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요즘에 기도하는 사람은 곡도씨예요. 늘 건강하게,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지내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내가 뭐라고, 며칠 왔다 가는 사람 뭐가 고맙다고 그렇게 기도를 하시나.


항상 방글방글 웃으며 할머니는 우리 곡도씨 우리 곡도씨 하고 나를 불렀다.



할머니는 그때 80이 가까웠는데 거기에 계속 계시려나, 아님 더 좋은 곳에 가셨으려나.



손가락이 없던 명필 할아버지가 계셨다.

집에는 할아버지가 손가락 없이 손바닥과 그 위에 남은 뼈마디로 쓴 글씨들이 벽지처럼 붙어있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같이 사셨고 자식도 둘이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자주 쓰던 기도문이 있었는데 그게 마음에 콱 박혀서 나한테도 하나 써달라고 졸랐다.

할아버지는 정성스럽게 기도문을 써서 족자로 만들어 우리 집에 우편으로 부쳐주셨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늘 기도하고 용서하면서 살면 됩니다.


고단한 삶의 끝에 용서가 답이라는 듯이 툭 던진 말씀이었다.




1월 1일이 되면 그때의 못 먹었던 짜장면과

걷지 못했고 그래서 건너지 못했던 바다와

할아버지가 써준 기도문이 함께 생각난다.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의 기도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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