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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Apr 14. 2021

일본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뛰어드는 여자와 뛰어나가는 남자> 2015


1년에 한 번 있는 니이가타 대학의 사진전 행사가 무사히 끝났다. 사진부원 모두 후련한 마음으로 학교 근처의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뒤풀이는 졸업한 OB선배들까지 잔뜩 참석해 거의 20명 정도가 참여하는 큰 술자리였다.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한 우리는 시끌벅적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물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나야 뭐 뜨내기 유학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1년 가까이 어울리며 많이 친해졌고 특히 이번 전시회 준비 기간 동안 대형 인화나 액자를 만들며 함께 밤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당당히 한 명의 ‘전우’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졸업한 선배들은 대부분 초면이다 보니 그들은 나를 꽤나 신기해했다. “이렇게 늙은 외국인이 우리 사진부에 들어왔다고?” OB라고 해봐야 다들 24~25살 정도고 최연장자가 고작 서른 살 정도였으니 나이만 놓고 보면 나도 원로급이었다.



안주로 시킨 뜨끈한 오뎅나베가 나왔다. 세숫대야 크기의 거대한 나베에선 달큼하면서도 구수한 가쓰오부시 향이 솔솔 풍겨왔다. 누군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러자 지목당한 당사자, 내 옆에 앉아있던 3학년 여학생 키도가 팔을 걷어붙이고 모두의 앞에 놓인 개인 그릇에 오뎅나베를 퍼서 나눠주기 시작했다. 최연장자 선배, 그다음 선배, 그다음… 한 명 한 명 정성껏 담아 배분했다. 서너 명이서 하는 조촐한 술자리라면 모를까 이 많은 인원을 다 떠준다고?


공교롭게도 오늘 뒤풀이 자리에 여자는 키도 한 명뿐이었다. 원래는 여학생 멤버들이 많이 있지만 전시회가 끝나고 조명과 기자재를 반납하러 간다는 이유로 네댓 명, 알바 시간을 못 바꿔서 일하러 간다는 서너 명 등 여자 아이들이 모두 불참한 것이다. 결국 홀로 참석한 홍일점 키도는 나를 제외한 이쪽 테이블 9명의 안주를 모두 퍼줬다.


“그런데 이걸 왜 키도가 다 담아?”

“네? 아니 그냥… 당연히…”

“키도가 여기서 일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러면 안 되잖아. 오늘 전시회 때문에 고생도 제일 많이 했는데. 각자 떠서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순간 옆 테이블에서 한 선배가 키도를 불렀다. 저쪽이 시킨 건 해물나베였는데 자기들 10명한테도 하나씩 떠달라는 얘기였다. 프로야구팀으로 보자면 일개 외국인 용병에 불과한 나였지만 이번엔 참을 수 없었다. 주춤주춤 옆 테이블로 가려는 키도를 저지했다.


“아니 그래도 제가 후배니까 하는 게…”

“후배? 저쪽에 키도보다 훨씬 후배인 1학년 마시코랑 오토와키도 있고 2학년 노무라, 와타나베, 고토도 있잖아! 후배가 해야 되는 거면 쟤네들을 시켜야지.”

“그래도… 여자니까 아무래도 제가 하는 게…”

“여자?! 여자라고 해서 하는 게 어딨어!”



목소리가 좀 컸는지 OB선배들이 이쪽을 쳐다봤다.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은 눈빛. ‘쟤는 뭔데 우리 일본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에 태클을 걸지? 이런 자리에서는 여자가 수발을 드는 게 당연하거늘!’ 하나같이 퉁명스러운 표정들이었다. 이도 저도 못하는 키도가 안쓰러웠는지 오늘 회식의 최연장자인 타무라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그래그래, 김상 말이 맞지. 알아서 각자 먹을 만큼 덜어서 먹자 우리.”


타무라의 중재로 술자리는 다시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혹시 괜한 오지랖에 그녀를 난처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싶어 슬쩍 눈치를 보았다. 앞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탕을 보며 그녀가 물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자리에서 여자가 일을 다 하지 않나요?”

“한국도 비슷하긴 하죠. 예전에는 훨씬 더 심했고. 그래도 이제는 많이 바뀌었어요. 더군다나 한 두 명도 아니고 이렇게 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자한테만 다 시키는 건 너무하잖아요.”

“그러네요. 일본은 아직도 여러 가지로 좀… 심하죠? 후후.”


웃고는 있지만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체념에 가까웠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아시아 유일의 G7국가. 부자나라. 선진국. 양보와 배려라는 아름다운 시민의식을 자부한다는 일본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지, 그 씁쓸한 민낯과 처음으로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1841년 일본의 에도. 검소검약령과 기독교 탄압, 출판과 문화예술 통제 등 수많은 분야에 ‘금지’라는 딱지가 붙던 엄혹한 시대. 남녀관계도 마찬가지여서 결혼을 한 부부더라도 남자는 마음에 안 들면 부인과 얼마든지 이혼할 수 있지만 여자는 남편이 허락해주지 않는 이상 이혼은 꿈도 못 꾼 채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흩뿌리며 강물에 뛰어드는 방법 말고는 남편과의 이별이 불가능하던 가혹한 시절. 유일하게 여성들의 숨통을 틔게 해 준 사찰이 한 곳 있었으니 바로 ‘동경사(東慶寺)’ 이다. 가마쿠라에 위치한 이곳에 들어가 2년간 생활하고 나면 절의 주재로 이혼이 성립됐다. 때문에 남편의 외도나 폭력에 시름하던 아내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이 절로 향했고, 그런 그녀들을 찾으러 온 남편이나 해결사들에게 도중에 붙잡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동경사 문 앞까지 거의 다 왔는데도 추격자들이 쫓아오는 경우 아내들은 몸을 날려서라도 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조차 여의치 않을 경우엔 짚신 한 짝이나 수건, 머리끈이라도 동경사 안으로 집어던졌다. 여자의 몸이나 물건이 단 하나라도 동경사 안에 들어간 경우에만 ‘뛰어들기 성립’으로 여겨져 그 즉시 동경사의 경비원들이 여자를 에스코트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턱밑까지 아내를 쫓던 남편들이지만 결코  안으로는 발을 들이지 못하고 걸음을 돌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쇼군이 직접 지정한 사찰인 데다가 고다이고 천황의 딸이 5 주지를 역임할 정도로 서슬 퍼런 금남의 장소였기에 아내를 내놓으라며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목숨을 부지할  없었다. 천황과 쇼군의 콜라보 사찰,  정도 위세는 되어야 가진  없고 힘없는 여성들이라도 마음 편히 숨어 지낼  있었다.


남편과 헤어지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동경사로 뛰어드는 부인들과 그들을 안쓰러이 여기어 지켜주려는 사람들, 아내를 되찾으려는 남편들, 고지식하지만 따뜻한 승려들. 동경사라는 천년 고찰 속에서 벌어지는 부부의 연을 끊어내려는 사람들의 고군분투 소동극 <뛰어드는 여자와 뛰어나가는 남자>.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시대상은 여관 안주인 오카츠 아주머니의 말을 통해 고스란히 설명된다.



오카츠: 이 아이의 아버지는 바닷가 어부였어. 어느 날 술 취한 무사가 마을 여자를 희롱하고 죽이려 할 때 달려들어 말리다가 돌아가셨지.

조고: 무사에게 살해당하셨군요.

오카츠: 그 반대야. 무사의 칼을 빼앗아 그를 죽였어. 정말 훌륭하지? 그러나 관리가 보기엔 일개 어부가 무사를 베었으니 그야말로 천하의 대죄. 사형을 선고받았지. 관리를 욕한 이 아이는 혀가 잘렸고 어머니는 괴로워하다 돌아가셨어.

조고: 이 세상에는 상처 입은 여자들이 너무나 많네요.


잡화상의 첩 오긴, 철공소 사장의 아내 조고, 여자 무사 유우. 3명의 부인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동경사에 들어와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한다. 그녀들 중에는 평안에 이른 사람도 있고 남편을 향한 원한에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기에 그녀들은 더욱 연대한다. 남자들만의 세상에서 버림받은 부녀자들끼리 함께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일상을 나눈다. 사감 선생님 같은 승려들의 눈을 피해 남자 얘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꺄르륵거린다. 규율은 좀 엄하지만 단짝 친구들과 함께 울고 웃는 여고 기숙사 생활처럼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그녀들. 이 순간들만큼은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고작 180년 전에 불과한 근대였음에도 남존여비와 여성차별이 극에 달하던 시절. 가엾은 아내들을 위한 마지막 도피처였던 동경사. 1871년 메이지유신으로 절법이 폐지될 때까지 2천 명이 넘는 부인들을 보살피고 이혼을 중재하며 그들의 삶을 구제했다. 하지만 누가 야마토 민족의 뿌리 깊은 전통 아니랄까 봐 아직도 일본 사회에선 암암리에, 아니 사실은 거의 대놓고 여성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대놓고 문제제기를 하기는 어려운 꽉 막힌 사회 분위기. 앞으로도 그다지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도 못 하게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 <뛰어드는 여자와 뛰어나가는 남자>. 1841년의 그녀들이 분루를 삼키며 견뎌낸 시간들에 위로를, 2021년의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곁의 그녀들에겐 건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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