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살인사건> 2014
2014년 4월 16일(수) 오전 8시 55분. 476명의 승객을 태운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다. 충격적인 소식에 보도국에 출근한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옆 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생방송 뉴스에 시선을 집중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긴급속보가 자막으로 타전됐다. [단원고 학생 325명 전원 구조] 사무실 여기저기서 이제야 한숨 좀 돌리겠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점심 무렵, 부장의 지시로 회사 헬리콥터를 타고 진도로 향했다. 전원 구조됐다고 하니 현장 수습이나 잔해 정리, 오일펜스 설치, 선체 인양 같은 사후 처리 모습을 헬기 카메라로 담게 될 거라 예상했다. 저녁때쯤에는 서울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맨몸으로 단출하게 헬기에 올랐다.
김포공항을 출발해 서해안을 따라 현장으로 날아가는 중 뒤에 타고 있는 취재기자 후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선배, 아무래도 전원 구조… 아닌 것 같은데요? 오보 같대요” 전원 구조라는 초대형 오보를 냈다고? 기초 중의 기초일 텐데 어떻게 그런 방송사고를 낼 수 있지? 의아한 마음으로 진도에 도착했을 즈음 구조자는 180명에 불과하고 아직 300명에 달하는 탑승객들의 생사가 미확인 상태라고 공식 발표됐다.
사고 현장인 바다 위는 온갖 헬기로 가득했다. 해경, 육경, 군, 소방, 산림청, 방송국, 신문사 헬기들은 뒤집힌 채로 배의 끄트머리만 남아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주변을 탐욕스러운 날파리떼처럼 빙글빙글 돌아댔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직 학생들이 남아있을 게 분명한 저 커다란 배가 시커먼 물속으로 천천히 잠기는 모습을 무력하게 촬영하기만 했다. 이 날부터 엉망진창의 세월호 취재가 시작됐다.
서울에 있는 모든 신문사와 방송국 사회부 기자의 70% 정도는 팽목항에 모여든 느낌이었다. 젊은 연차의 기자들에게 이 정도 대규모 사고는 대부분 처음이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전화와 카톡으로 참사 현장의 이들을 다그쳤다. ‘더 감동적인 사연을 찾아내라, 더 슬픈 표정을 찍어 와라, 경쟁사에 없는 특종을 해라, 희생자가 유족에게 보낸 가슴 아픈 마지막 카톡을 확보해라’ 구조된 학생, 안도하는 가족, 시신을 발견해 충격에 휩싸인 유가족, 아직 아이의 생사를 몰라 구조만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이 뒤죽박죽 섞였고 그들을 향한 기자들의 무례한 취재경쟁은 무섭게 과열됐다.
가족들만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브리핑에 가족인 냥 몰래 들어갔다가 적발돼 끌려 나오고, 진도체육관에서 아이 소식을 기다리며 속이 타들어가는 부모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근접 촬영하다가 멱살 잡히는 건 부지기수, 가족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한 식사를 정체를 숨긴 채 먹다가 욕 듣는 기자들도 허다했다.
팽목항뿐만이 아니다. 안산 단원고에 찾아간 기자들은 어제까지 함께 공부하던 선배와 후배들을 하루아침에 잃어 마음이 편할 리 없는 아이들의 등굣길에 진을 치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멀리서 찾아온 기자들을 위한 학교 측의 배려로 2학년 교실 하나를 내줬더니 사망한 학생의 책과 소지품을 마구잡이로 꺼내놓고 촬영하기도 했다. 고대 안산병원에선 생존자 아이 한 명을 둘러싸고 수십 명의 기자들이 윽박지르듯 인터뷰하고, 장례식장 출입을 막는 단원고 교사와 몸싸움을 벌인 기자마저 있었다. 구조된 2학년 학생들이 작성한 성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팽목항으로 이동하여 버스를 타기 전까지도 많은 기자들이 사진을 강제로 찍었습니다. 싫다고, 하지 말라고 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촬영을 감행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카메라 뒤로 보이던 한 기자의 웃는 얼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팽목항에서 진도체육관으로 이동해서도 저희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기자들을 차단하지 않고 저희들을 방치했습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많은 기자들이 인터뷰를 권유했고 그 역시 친구들에게는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친구들의 생사여부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 단원고등학교 생존 학생 일동 (2014년 6월 25일)
우리는 어디까지 비인간적일 수 있는가. 그저 위에서 시키니까? 할당된 지면을 채워야 하니까? 시청률을 올려야 하니까? 그런 이유로 인간은 얼마만큼이나 악해질 수 있을까. JTBC 박진규 앵커는 생방송 인터뷰 중에 이제 막 구조된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친구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여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못 들었는데… 아뇨 못 들었어요” 라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옆자리에서 재잘대던 친한 친구의 사망 소식을 생방송 뉴스의 기자를 통해 듣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아이의 모습은 아무런 여과 없이 전 국민에게 방송된다. 배려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고 섬뜩하기만 한 미디어의 폭력.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언론’의 민낯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는 미모의 여직원이 칼에 찔리고 불에 탄 시체로 숲 속 공원에서 발견된다. 방송국 계약직 PD인 ‘아카호시 유지’는 이번 기회에 능력을 인정받고 잘만하면 정규직으로 채용될지도 모른다는 꿈에 부풀어 살인사건 취재에 돌입한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최대한 자극적으로 취재하고 흥미진진하게 편집해서 내보내는 유지의 기사. 미디어가 진실을 향해가는 과정의 모순과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쳐 보여주는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
수잔 손택이 수십 년 전에 경고했듯 촬영이라는 행위 안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 아무리 조심스레 사용해도 부족한 것이 ‘미디어’라는 이름의 칼인데 이제는 너무나 손쉽게 개개인 저마다의 작은 칼 하나씩을 갖게 됐다. 주인공 유지 또한 끊임없이 SNS에 글을 올린다.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야금야금 올리며 즐거워한다. 아무런 성찰과 반성 없는 한 줄짜리 문장이 난무한다.
유지는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한다. 이들이 하는 수많은 얘기. 어디까지고 사실이고 어디부터는 아닌지 그 누가 알 수 있나. 사실의 총합이 반드시 진실로 이어진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하나가 의심스러우면 모든 게 의심스럽게만 보인다. 미녀 직원의 직장동료이자 입사동기인 ‘시로노 미키’의 행적이 특히 그렇다.
그녀는 회사 안에서 사내커플로 지내던 훈남 선배를 미녀 동기에게 빼앗겼다. 살해할 동기도 충분하고 사건이 일어난 저녁 미키와 피해자가 한 차에 타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마저 확보된다. 그리고 아주 늦은 밤 도쿄행 특급열차를 타는 모습이 목격됐고 다음날부터는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있다. 연락두절. 사건과 함께 행방불명된 수상한 여자 시로노 미키. 아무리 봐도 범인 냄새가 솔솔 난다.
직장동료들을 한 명씩 인터뷰하며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변한다. 더군다나 장안의 화제인 사건이다. 트위터에 우쭐대는 걸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이 사건의 진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건 전 세계에서 나 한 명뿐!” 그녀가 운전을 아주 험하게 한 적이 있다는 사실, 회사 안에서 일어났던 미해결 절도사건, 사내연애가 사실은 집착에 가까운 그녀의 스토킹이었다는 증언… 모든 정황이 시로노 미키의 이상 성격과 미녀 동기에 대한 원한으로 몰고 가기에 딱 좋게 흘러간다. 자극적인 재연영상까지 덧붙여서 내보낸 TV 기사는 대성공이다.
맛집 소개 리포트나 만들던 유지에게 이런 호평과 달콤함은 처음이다. 다른 방송국엔 없는 특종! 단독보도! 늘 구박하던 부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룸살롱까지 시원하게 쏜다. 이런 게 바로 성공이란 거구나. 언론의 힘이다! 정의는 승리한다! 하지만 용의자가 정말 범인이 맞는지 의심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유지는 보다 강력한 후속보도를 이어간다.
이번엔 어린 시절 살던 동네 주민들과 학교 동창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학창 시절 조리실습 시간에 생선 머리를 과감하게 자르던 그녀라면 사람도 그렇게 찌를지 모르죠", "초등학교 때 마을 신사에 불이 난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녀가 한 짓일지도 몰라요" 칼과 방화. 공교롭게도 피해자의 피살 방법과 아주 흡사하다. 이제 유지의 카메라는 거침이 없다. 시로노 미키의 가족들에게도 과감하게 렌즈를 향한다. 국민에겐 알 권리가 있다. 나는 그 모든 시청자를 대표한다.
파죽지세로 나아가던 유지의 취재는 벽에 부딪힌다. 뜬금없게도 진범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들쑤시던 유지의 카메라는 지금까지 무엇을 담아왔던 걸까. 분명히 그녀가 범인이라고 모두가 얘기했는데. 부모님한테까지 찾아가 살인범 딸을 둔 심경을 묻고 인터뷰까지 했는데? 유지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 모두들 그녀가 범인이라고 한 게 아니라, 그녀가 범인이라고 하는 쪽을 향해서만 자기의 카메라 포커싱이 향했다는 사실을.
타니무라 유코: 지금 내가 한 얘기, 전부 진짜라고 생각해?
아카호시 유지: 거짓말… 인가요?
타니무라 유코: 잘 들어둬. 사람의 기억이란 건 날조돼. 인간은 자기한테 유리하게끔 이야기를 한다고. 중요한 걸 놓치지 마.
사건은 마무리된다. 사망자는 안타깝게 세상을 떴지만 범인은 잡혔고 이걸로 끝이다. 수차례의 자극적인 리포트를 통해 한 인간을 살인범으로 몰고 갔던 방송은 두 줄짜리 문장을 통해 사과의 뜻을 표한다. [제작진의 취재 부족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을 사용해 관계없는 분을 용의자처럼 다룬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지저분한 치정에 얽힌 잔혹 살인범이라며 쥐 잡듯이 몰아세우던 것과 비교하면 아주 소박하고 조촐하게 사과를 마무리하고는 곧바로 도심 속 제비갈매기떼의 짝짓기 소식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모든 건 정리됐다. 이걸로 끝. 혹 시로노 미키가 억울한 마음에 소송을 걸더라도 거대 방송국의 법무팀을 상대로 절대 이길 순 없다. 분쟁 과정에서 마음속 상처만 커질 게 분명하다.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미디어는 어디까지 무서워질 수 있는가.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발견하면 게걸스럽게 달려들어 이것저것 질문하고 요리조리 촬영한다. 더 이상 발라낼 살점이 없으면 새 먹잇감을 찾아 미련 없이 떠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프리카의 사바나가 아닌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법과 도덕에 의해 살아간다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반듯하게 적혀있었는데. 상업성과 경제논리에 매몰돼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악귀의 길을 걷는 언론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너무 현실적이라 더 무서운 영화. 언론사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빠른 도입을 기원하며 소개하는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