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옹 Feb 25. 2019

오뎅국

청산할 수 없는 부채


추운 겨울에요. 하얀 입김이 담배 연기와 구별 안 될 정도로 몽실몽실해지고 두터운 양말을 신어도 발끝이 얼얼하게 시린 겨울 말입니다. 그런 날 포장마차의 살짝 열린 바람막이 틈새로 굴뚝처럼 풀풀 피어오르는 열기를 본 적 있으시죠? 네. 오뎅 국물에서 올라오는 바로 그 열기요. 분명히 말하건대 한 번도 그 앞에서 발을 멈추지 않은 사람은 코가 없거나 눈이 없는 사람일 겝니다. 매번 가던 길을 멈출 수야 없지만 단 한 번도 안 멈출 수는 없는 거잖아요. 특히 시컴한 밤에는 누런 포장마차 불빛이 멀리서부터 아주 선명하게 보인단 말입니다. 길을 밝혀주는 등대 같기도 하고 사람 꾀는 도깨비불 같기도 하지요. 여기에  반짝이는 싸락눈이든 큼지막한 함박눈이든 하늘에서 뭐라도 내려주면 아주 완벽하지 않겠습니까? 오뎅 먹기 완벽한 날이다 이 말입니다.


돌돌 말아 꼬치에 끼운 오뎅의 탱글탱글한 식감과 꼬수운 맛도 좋지만, 겨울날 포장마차 안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따끈한 오뎅 국물이지요. 오뎅 국물 마시려고 오뎅 먹는 분들이 꽤 될 겁니다. 오뎅 하나 먹고 국물만 세 컵째 들이켜기 무안해서 괜히 한 개 더 먹는 분들도 계실 테고요. 잘못 마셨다간 혓바닥을 따끔하게 데고 말지만, 겨울에는 또 그럴 걱정 없잖습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동장군의 한기 덕에 오뎅 국물이 딱 먹기 좋은 정도로 식는다구요. 더 식으면 차가워지니 재빨리 두 모금만에 꿀꺽 마셔줘야 제 맛이죠. 요즘에는 오뎅 국물에 게 등딱지도 들어가고 매운 양념도 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오히려 그게 별로입디다. 누린내인지 구수한 건지 모를 미묘한 냄새에 적당히 짭쪼롬하면서 후추의 아린 맛이 살짝 나는, 이른바 오리지날이 저한텐 딱 좋습니다.


오뎅탕은 또 어떻습니까? 안주 고를 때 제일 무난하고 친근한 게 바로 이 녀석이죠. 술자리가 2,3차까지 이어져 다들 배부른 상탭니다. 소주가 좀 됐으니 국물 안주를 시키고 싶죠. 얼큰-하고 씨원-하게 알탕이나 조개탕 어때요? 이런! 저 친구가 비린 걸 못 먹는다네요. 부대찌개니 김치찌개 같은 건 너무 묵직해서 부담스럽고요. 이럴 땐 오뎅탕 하나면 오케이 아니겠습니까. 깔끔하고 맵싹한 오뎅탕 국물이면 겸사겸사 해장도 되겠다. 가격도 술집 안주 사이에선 가장 합리적이겠다. 내 살면서 오뎅탕 못 먹는 녀석은 딱 두 명 밖에 못 봤으니, 희귀한 경우만 아니라면 호불호가 나뉠 일도 없고 말입니다. 아! 오뎅탕이 너무 맛있으면 부어라 마셔라 술이 술술 들어간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요, 하하.


아이, 오뎅국 얘기를 하려던 참에 너무 옆길로 새 버렸네요. 오뎅이랑 오뎅탕이랑 오뎅국이 또 다를 건 뭐냐구요? 그야 오뎅국은 집에서 먹는 음식이니까요. 한 글자 차이지만 엄연히 정서가 다르단 말입니다.


집에서 오뎅국 많이들 드셨을 거예요. 오뎅국이 된장찌개나 미역국같은 '따뜻한 엄마 집밥'의 표본은 아니지만, 우리 식탁에 주인공으로 꽤나 등장하지 않습니까. 만들기 간편한 데다 오뎅국 하나면 다른 밥반찬이 필요 없으니 식탁 위 단골 메뉴가 될 수 밖에요.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니 입맛 맞추려 골머리 썩힐 일도 없고 말입니다. 냉장고 속에 특별한 재료도 없고 이것저것 요리하기 힘에 부칠 때, 뚝딱 한 그릇 끓여낼 수 있는 오뎅국은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을 겝니다.


자취생에게도 오뎅국만 한 게 없죠. 슈퍼에 가면 모듬 어묵 한 봉지에 3천 원, 4천 원 밖에 안하니까요.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도 한번 끓이면 두 세끼는 거뜬히 나오니 그야말로 가성비의 최고봉이죠. 요리 못하는 자취생도 어묵에 동봉되어 있는 육수용 스프나 소스와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여기다 제철 무라도 설컹설컹 썰어 넣고 오랫동안 푹 끓여내면 인스턴트가 아니라 제대로 된 요리 맛이 난단 말입니다. 그리고 고추냉이 푼 간장까지 곁들인다면……. 아,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밥반찬으로도 술안주로도 금상첨화입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저에게 오뎅국은 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몇 년 전이었을까요. 집안문제로 아버지와 둘이 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한 달에 40~50만 원 되는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 중이었던지라 밖에서 음식 사 먹을 여유가 안 됐습니다. 항상 엄마가 해 준 밥을 먹거나 외식을 일삼던 저에겐 고난의 연속이었죠. 제일 많이 해 먹었던 게 카레와 오뎅국이에요. 쉽기도 하고, 최소한의 재료비로 가장 많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게 그 두 가지였거든요.


하루는 무를 숭숭 넣고 오뎅국을 끓였습니다. 한 솥 가득 들어찬 오뎅국의 뽀얀 자태를 보니 추수 후 곳간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이 따로 없더군요. 이걸로 며칠은 걱정 없겠다며 속으로 흐뭇해했습니다. 그 날 저녁엔 오뎅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오랜만에 행복했죠.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부엌에 들어가니 오뎅국은 온데간데없고 깨끗이 씻긴 냄비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와 한 마디 하시더라구요. “오뎅국 참 맛있더라. 아유, 우리 딸이 요리를 다 해서 아빠가 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어.” 저녁 식사였는지 술안주였는지 모르지만, 간밤에 아버지가 오뎅국을 싹 비우고선 설거지까지 해놓으신 거였어요.


순간 화가 났어요. 내가 얼마 되지도 않는 수입으로 먹고살겠다고 오뎅국을 끓여 놨는데 눈치도 없이 그걸 다 먹어버린 아버지가 너무 미웠습니다. 하지만 제일 미운 건 제 자신이었죠. 나이깨나 먹고 제 앞가림도 못하는 것이 무슨 유세라고, 그깟 오뎅국 좀 아버지가 드셨기로서니 그걸 아까워하다니요. 아버지는 여태껏 우리 밥상에 갈비찜, 잡채, 스테이크, 회 등등 진수성찬을 올리려 열심히 일하신 분인데 말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도를 넘은 치졸함에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더욱 초라한 건 치졸한 걸 알면서도 여전히 오뎅국이 아까웠다는 거예요.


그 후에도 오랫동안 저는 오뎅국이니 카레, 두부조림같이 재료비가 싼 음식들로 연명했고 아버지는 종종 제가 만든 음식을 드시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를 향한 유치한 미움과 함께 존재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수치스러움을 마주해야 했죠. 나중에는 상반되는 두 감정을 무시할 만큼 무뎌졌던가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쨌든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그 후 저는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해 집에서 요리하는 일이 없어졌고, 다른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온 반면 아버지는 해외에 직장을 구하셔 멀리 떨어져 살게 됐습니다. 삶이 그럭저럭 평탄해지면서 유쾌하지 못했던 그때의 기억은 서서히 잊혔습니다.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며칠 전의 일입니다. 마트에 떡볶이 재료를 사러 갔거든요. 사각 어묵을 집어드는데 옆에 ‘모듬 어묵 – 소스가 들어있어요!’ 따위의 문구가 새겨진 봉지가 잔뜩이더라고요. 문득 생각나더랍니다. 그때 일이요. 수치스러운 감정은 이미 기억의 둔덕 아래 묻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오뎅국 봉지를 봤다고 해서 새삼 초라함과 부끄러움 같은 감정들이 트라우마라도 되는 양 살아 돌아오진 않았어요. 따지고 보면 그만치 극적인 사건도 아니었고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감정들이 사라진 후에도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만은 그대로 남아 있더랍니다. 이제 오뎅국쯤이야 하루 한 솥씩 해 드려도 아깝지 않을 여유를 가졌지만, 몇 번이고 해 드린다 한들 이 감정이 사라질 것 같진 않아요. 오뎅국은 아버지께 잘 해드리지 못했던 저의 부채인 셈입니다.


물론 오뎅국을 먹을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부채를 떠올리며 침울해할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어묵은 우리 삶과 지나치게 가깝잖아요. 식탁 위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마주치는 게 오뎅국, 오뎅 반찬인 걸요. 누군가 오뎅이 흔한 것처럼 부모님에 대한 부채도 시시각각 느껴야 한다고 말하면 당신이나 잘하라고 대꾸해 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릴 거예요. 청산하지도 못할 부채를 갚는 것보다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해하는 게 더 건설적이니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