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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조 Feb 03. 2019

공연적 허용과 과학자의 윤리

[커뮤니케이션 칼럼 #2]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공연 윤리

  '시적 허용'이라는 표현이 있다. 문법에는 어긋나지만 화자가 의도하는 느낌을 만들어내기 위해 철자나 띄어쓰기 등을 일부러 틀리게 적는 것을 말한다. 규칙에 의해 정해진 문법이 작가가 만들어내고 싶은 느낌을 모두 담아내기는 힘들기 때문에, 이런 문법 오류들이 시적으로 허용되기도 한다.


 극이나 영상물에서 벌어지는 '고증 오류'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흐름, 감정선 등의 연출적인 문제나 시간, 예산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실제 사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연출이 이용된다.


 예를 들어,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나왔던 야외 개복 수술 장면은 인터넷에서 많은 뭇매를 맞았다. 의사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실제로 야외에서 개복 수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증이 잘 되지 않은 장면이라고 하지만, 현장의 긴박함과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연출하기 위한 장치로서 이 장면은 훌륭하게 사용되었다 생각한다. 또한, 같은 드라마에서 나왔던 헬기가 남주인공을 데리러 오는 장면 또한 많은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다. 대체 어느 부대에서 대위를 모시러 헬기까지 동원하냐는 것이다. 물론 문제가 있는 장면이지만, 서로의 직업 때문에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효과적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물론 오류 없는 장면으로만 이루어진 드라마를 만든다면 좋겠지만 이에는 한계가 있고, 고증에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오히려 창작자의 창의성이나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연출자가 이미 오류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더라도 고의적으로 고증에 맞지 않는 연출이 사용되기도 한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어떨까?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과학 지식을 연출해 관객들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지식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 또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 연출을 위해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종류 중에서도 '과학 공연' 혹은 '과학 쇼'의 장르는, 기존 강연 형태의 과학 커뮤니케이션과는 다르게 지식을 어떻게 재미있게 연출하고 어떻게 극적 상황 설정을 재미있게 하느냐가 조금 더 강조된다. 그런데, 이런 연출과 상황 설정이 강조되는 장르적 특성상, 소개하는 과학 지식이 편향되게 전달될 가능성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예를 들어, 한 심리학적 현상을 설명하는 상황을 보겠다. 미끼 효과(Decoy Effect)라는 현상이 존재한다. 다음의 상황을 보자. 세 명의 여자 사진이 일렬로 놓여있다. 가운데 여성은 일부러 오른쪽 여성을 덜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포토샵 조작을 가한 사진이다. 그런데 가운데 여성이 들어가 있을 경우, 그 여성이 없을 경우보다 오른쪽 여성을 고르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 가운데 여성을 추가하면 없는 경우보다 오른쪽 여성을 고를 확률이 증가한다고 한다. 가운데 여성의 사진은 오른쪽 여성을 고르도록 하는 미끼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미끼 효과라 부른다. 이 예시를 사용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을 뽑는 투표를 진행했다. 관객의 80% 정도가 오른쪽 여성을 선택했다. 이어서, 이에 대해 설명했다. "여러분 대부분이 오른쪽 여성을 고른 이유는 바로 가운데 사진이 미끼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오른쪽 여성을 고른 이유가 또 존재한다. 가운데 여성이 없어도 오른쪽 여성이 왼쪽 여성보다 매력적이라고 뽑힐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 추가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될까? 이 이유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미끼 효과를 너무 과장해서 받아들일 염려가 있으니 말이다.


 과학자에게 강조되는 의무가 있다. 연구하고 있는 과학적 사실을 사람들이 편향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편향이 과하거나 고의적일 경우, 데이터 조작의 의심을 받게 되기도 한다. 만약 학술 강연 혹은 논문을 쓰는 것이면, 이를 방지할 수 있게 추가적인 설명을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공연에서는 시간적 한계나 극적 흐름 상 구구절절한 설명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예도 존재한다. 과학 외적의 상황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실험(예를 들어 액체 질소 및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한 실험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기 위해 '러시아에서 2년 동안 과학 수련을 한 청년'을 본인의 캐릭터로 잡고 공연을 만들었다. 그리고 재미있게 공연을 마쳤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다가와 질문을 한다.

 "러시아에서 정말 이런 종류의 실험을 많이 하나요?"

사람들이 내가 표현한 캐릭터를 정말 나로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공연에서 내 실제 경력에 대해 거짓말을 해버린 것인가?


 물론 과학자로서 정확한 지식전달에만 힘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완전히 편향되지 않도록 여러가지 입장을 모두 전달하는 것은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공연이라는 특성 상, 그리고 지식 전달의 목적보다 과학에 대한 대중을 관심을 높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특성 상 과학 공연에서는 그 윤리적 잣대를 비교적 약하게 들이댈 수 있다.


 과연 과학 공연에서 공연적 허용이 인정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나는 이를 위해서는 그 연출이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대해 생각해야한다고 여긴다. 이에 대해 내 의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다수의 대중이 공연의 몰입을 방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오류가 내재된 연출이 그 연출 목적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라고 말이다.


 물론 이 대답이 딱 잘라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어색함이나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범위란 어느 정도이며, 연출 목적에 정당화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가 매우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 범위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기란 아직 힘들지만, 이에 가까워지기 위한 세 가지 고려 사항을 제시해 볼 수 있다.


1. 오류가 내재된 연출 사항이 있을 때, 그에 대응되는 오류 없는 정확한 과학 지식에 대해 연출자가 이해한 상태여야 한다.

2. 기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보았을 때, 오류가 자명해 보일 정도이면 안 된다.

3. 오류 없는 정확한 과학 지식을 알게 된 사람들이 공연을 돌이켜 보았을 때, 연출 목적을 위한 정확성의 희생 혹은 그 연출 방법론이 납득되어야 한다.


1. 오류가 내재된 연출 사항이 있을 때, 그에 대응되는 오류 없는 정확한 과학 지식에 대해 연출자가 이해한 상태여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오류라면 공연적 허용이라 말할 수 없다. 그저 본인이 무지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미끼 효과에서 사용하는 사진에서 대다수가 오른쪽 여성을 고르는 것이 단순히 미끼 효과 때문이라고만 알고 있다면 이 현상을 한 각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과학자로서, 한 예제를 설명하는 모든 가설들을 이전에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과학 공연은 대중에게는 과학적 지식 전달을 표방하는 공연이다. 그런데, 무지에 의한 오류가 발생한다면 이는 더욱이나 신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전달된 오류에 대해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만 본인의 방법론에 대해 상대에게 설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단순한 무지는 공연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실수는 관객조차 인지하기 어려울 것 같은 상황에서 간혹 일어나지만, 무지는 공연 전반적으로 은연중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연에서 사용될 과학적 지식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만 한다.


2. 기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보았을 때, 오류가 자명해 보일 정도이면 안 된다.

 과학적 오류가 있는 연출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다음 단계로 혹시나 그 연출을 본 대중들이 너무나도 쉽게 그 오류를 느끼게 되지 않을 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오류가 느껴질 정도의 연출이라면, 대중들은 그 공연에 대한 신뢰도를 완전히 잃어버릴 것이다.


 미끼 효과 예제의 경우에서, 조금이라도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냥 오른쪽 여자가 그냥 봐도 매력적인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회의적인 사람들보다 기본적으로 앞선 생각을 할 수 있어야, 공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3. 오류 없는 정확한 과학 지식을 알게 된 사람들이 공연을 돌이켜 보았을 때, 연출 목적을 위한 정확성의 희생 혹은 그 연출 방법론이 납득되어야 한다.

 공연을 보는 과정에서 관객은 공연 흐름에 빠져 논리의 디테일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의 머릿속에 호기심을 심어주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공연이니만큼, 공연 본 후의 관객들의 사고 과정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공연을 보고 난 관객들이 더 공부를 한 후 과학적 오류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관객들에게 과학적 오류가 있는 연출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반드시, 이 부분 또한 연출 과정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만약 오류가 있었던 부분을 오류 없게 바꾸었을 때 공연 흐름이나 그 장면의 감정선(특히 재미)에 영향을 주는가? 만약,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 연출은 올바른 공연적 허용의 예라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미끼 효과를 설명하는 상황의 경우 관객이 공연을 돌이켜 보았을 때 연출 목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미끼 효과만이 오른쪽 여성을 고르는 원인의 전부가 아니라, 오른쪽 여성을 고른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라는 느낌으로 전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러분이 오른쪽 여성분을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 오른쪽 여성분이 정말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 이유도 있습니다만, 여기에는 하나의 이유가 더 있습니다. 바로, 가운데 여성분의 존재입니다."

이렇게 말이다. 이렇게 전달하는 것이 공연 흐름에 크게 영향을 줄까? 이 정도라면 크게 영향을 주진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조금 더 정확한 전달을 따르는 것도 좋을 것이란 내 의견이다.


 러시아 실험 예시의 경우는, 이 연출을 바꿀 경우 공연 전체에 큰 영향이 간다. 공연의 틀이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출 목적이 정당화 될 조건 하나를 갖춘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이 이 부분에 대해 연기 혹은 연출된 상황이구나를 느낄 경우 이 방법론이 완전히 정당화될 것이다. 마치 정말 자기소개를 하듯이, 러시아 유학 경험으로서 소개해버린다면, 이는 정말 거짓말이 된다. 여기서는 실제 말하는 톤과 차이나는 연기톤을 사용하여, 연출된 상황이라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얼핏 듣기만 해도 이 상황은 연출된 상황인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이다.


 대중을 상대하는 예술과 관련해서는 수학처럼 수치화된 답을 내놓을 수 없으며 심지어 말로서 표현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경우가 많다. 공연에 적용되는 윤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작품의 창의적 표현과 공연자가 지켜야 할 윤리 사이에도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대립이 존재하며, 지식 전달의 정확성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강한 과학자 입장에서는 그 대립이 더 첨예한 사항이 된다. 하지만 이 미묘한 대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예술이란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커뮤니케이션 칼럼은 과학 소통을 하면서 고민하게 되는 여러 가지 매우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공유하고자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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