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엘북스 Apr 07. 2020

'정보'를 거스르는 '혁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사사키 아타루-, <족구왕>-영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읽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힘을 내포하고 있는지 아주 강력하게 기술하고 있다.

게다가 철학자의 문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매우 부드럽고, 몰캉몰캉하다.


"읽고 만 이상,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는 이상, 그 한 행이 아무래도 옳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이상, 그 문구가 하얀 표면에 반짝반짝 검게 빛나 보이고 만 이상, 그 말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p.36)


(시대적 상황이 함께 준비되고 있었지만) 저자는 마틴 루터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종교개혁도 성서의 읽기로 시작된 것임을 말한다. 그냥 정보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정말로 책을 읽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혁명은 텍스트로 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 아닙니다. 경제적 이익도 아니고 권력의 탈취도 아닙니다. 텍스트의 변혁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입니다."(p.113)


혁명 가운데 모든 혁명이 기초하고 있는 중세 해석자 혁명이 있다. 이는 로마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로마의 판례와 학설을 집대성하여 편찬했던 <로마법 대전>이 유실되었다가 12세기에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로마법 대전을 한글자씩 읽고, 또 읽어서 이에 기초하여 당시 교회법을 수정한 것이다.

당시 교회법은 그저 한 종교기관의 법이 아니라 사회 전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었고, 교회법을 수정한다는 것은 곧 사회 전체를 재해석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중세 해석자 혁명은 정보 기술 혁명이었다. 혁명의 담당자는 법학자로서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읽는다. 게다가 당시에는 인쇄술도 없었으니 손으로 베껴 써서 사본을 만든다. 여기서 아주 철저한 독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 재판 현장에서 도움이 되도록 발췌 요약본을 만들고, 색인을 만들고 즉, 데이터베이스로서 법문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거의 100년 가까이 이어진다. 이렇게 실증주의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말하기를 인간을 통치하는 도구가 '정보'뿐이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정보로서의 문서만이 규범으로서 작용한다.


이렇게 '텍스트'는 효율화가 된다. 효율과 생산성의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이렇게 된 정보는 무엇일까?


"하이데거도 '정보'란 '명령'이라는 의미라고 말합니다....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명령을 모으는 일입니다. 구체적인 누군가의 부하에게, 또는 미디어의 익명성 아래에 감추어진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의 부하로서 희희낙락하며 영락해가는 것입니다.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자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틀리지 않다고 믿을 수 있을 테니까요."(p.23)




이렇게 기술된 내용을 영화 <족구왕>을 통해 해석해보자. 우리 사회에 펼쳐져 있는 정보와 그 정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영화 <족구왕>에서 만섭은 군대에서 막 전역한, 다른 이들이 보기에 외모나 여러 스펙이 없는, 그러나 족구를 사랑하는 복학생이다.

그러다 영어수업 시간에 안나에게 한눈에 반한다. 만섭은 안나와 영어 연극 파트너가 되어 같이 연기할 백투더퓨처2를 같이 감상한다.





영 연애에는 소질 없이 딱 여자에게 인기없을 짓만 하며 독고다이 길을 걸어가는 만섭에게 안나는 충고를 건넨다.


"오빠, 족구 하지마요."


족구는 더러울 뿐 더러 축구에 비해 사람들이 멋있지도 않고, 폼도 안날 뿐더러 복학생들이 난닝구(?)만 입고 땀흘리다가 그대로 수업에 들어오는 게 딱 질색이라는 거다. 여자들은 족구하는 남자 싫어하니까 연애하고 싶으면 족구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만섭은 아주 차분하게 "남들이 싫다고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안하는 것도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라고 대답한다.


사실 안나가 만섭에게 준 것은 연애를 할 수 있는 정보를 준 것이다.

여자는 족구하는 남자를 싫어한다고.

이 명령을 따르면 '자신이 옳게 사는구나' 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 명령대로 살지 못하고 있지 않은지 전전긍긍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만섭은 누군가의 부하로서 살기를 거부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함으로써 주어진 정보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결국 만섭으로 인해 캠퍼스에 족구 열풍이 불게 되는 것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명령대로가 아니라 만섭이 족구를 하는 이유, 재미 때문에 가능했다.


만섭에게 족구는 곧 문학이며 예술이다.

그리고 그 문학은 곧 캠퍼스에 족구열풍과 족구대회라는 혁명을 가져왔다.


다시 책을 인용해보자.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입니다.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나고,

문학을 잃어버린 순간 혁명은 죽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문학을 폄하하고 문학부를 대학에서 추방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바로 문학이 혁명의 잠재력을 아직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p.114)


영화에서 만섭이 다니는 대학은 취업률에 열을 올리며, 취업을 준비해야하는 학생들에게 족구 열풍이 불자 총장 밑에서 일하는 이사장의 동생은 취업률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한다.

저자는 자본제의 시대에서 문학이 본질적으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오락 장식물 사치품으로 간주되었다고 말한다.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의 혁명이야 말로 우리가 사는 시대를 바꿀 수 있다.


이제 다시 책이 읽어지고, 읽어진 이상 그대로 이끌려 살아가는 세상을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읽기의 진정한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