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가스비 288,000원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부쳐
고지서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12월 가스 사용 요금이 28만 8천 원이라니. 주로 아침 7시쯤 나가 밤 10시나 돼야 들어오는 남자 2명이 사는 집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동거인인 동생과 약속한 요금 결제 정책상 인터넷 사용료를 제외한 모든 요금 결제는 내 몫이었고, 복잡하기만 한 심정이었다. 포털에 '가스비 폭탄' 같은 단어를 검색해봤으나 기존에 2만 원 내던 사람이 3만 원을 낸 일을 알리는 기사가 떴다. 그럼 내가 맞은 것은 핵폭탄인가. 동생은 관련 기관에 몇 번이고 전화를 걸고, 1층 계량기를 수시로 확인하며 이것이 맞게 책정된 금액인지, 혹시 가스가 새는 것은 아닌지 재차 확인했다. 결론은 28만 8천 원을 기한 내 온전히 내야 한다는 것.
요컨대 계량기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는 시점은 온도 변화를 크게 조절할 때라고. 되도록 2~3도 차이를 벗어나지 않도록 온도 조절을 할 것을 권장한다고. 실제로 출근할 때는 18도로 맞춰놓고 자기 전에는 무려 25~26도로 맞추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했다. 아무리 서둘러 집을 나서도 이러한 루틴을 잊지 않고 있음에 '어쩌면 나도 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조금은 흐뭇해하던 나에게 요금 고지서는 "응 아니야~"라고 잘라 말했다.
며칠 뒤 우편함에 또다시 꽂혀있는 고지서를 보고 잠시 긴장됐다. 접착된 지면이 좀처럼 떼어지지 않아 고지서를 펼치기 어려웠다. 추운 날씨로 언 손 때문인지, 떨리는 마음 때문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어렵게 펴본 그 서류의 정체는 '수도 요금 고지서'였고, 3,200원이 찍혀 있었다. 요금 결제 정책을 어기고 동생에게 고지서를 넘기며 "이것은 네가 좀 내라"고 했다. 속사정을 잘 아는 동생이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충격이 가라앉고 마음이 진정되니 문득 드는 생각 하나, 혹시 내가 넋 놓고 있는 사이에 또 다른 '요금 폭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단 공공재에 대한 사용 요금을 말하는 게 아니다. 벌써 몇 주째 계획만 기록하고 미뤄둔 일들이 떠올랐다. 그 일들을 해야 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대비와 연결된다. 더 기민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을 아껴 쓰며 잘 마치지 못한다면 나는 주머니 사정, 성취감 측면에서 결핍에 허덕일 확률이 높다. 하나하나 효율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정리하는 뇌》를 읽고 있다. 가스 요금 고지서가 최근 읽은 그 어떤 책보다 강력한 자극을 준 셈. 고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