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주의 비용 13만 원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부쳐
맛집으로 제법 입소문을 탄 파주의 어느 칼국숫집에서 지인과 밥을 먹고 나서는 길이었다. 비를 피하려 잰걸음으로 차에 타려는데 운전석 문이 평소보다 하중이 실려 빠르게 열렸고, 옆 차의 조수석 문을 찧고 말았다. 알고 보니 운전석 쪽으로 경사가 진 지형에 주차했던 것. 옆 차에는 흠이 생겼고, 차주와 자세히 살펴 보니 지나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둘이서 비를 맞는 와중에 스마트폰을 꺼내 대략적인 수리 비용을 검색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차주의 계좌로 13만 원을 입금했다. 원래 10만 원을 제안받았으나 미안한 마음이 컸거니와 뒷말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 3만 원을 더 얹어 부쳤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토록 급했던 건 내리는 비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최근 대부분의 저녁 끼니를 서서 해결했고, 염치를 무릅쓰고 3번 이상 미룬 약속들이 2~3건 있었으며, 일정에 밀려 미처 제출하지 못한 대학원 과제가 2건을 넘어가고, 경의선에서 '당역 도착'이라는 전광판 신호를 보고도 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매번 전력 질주를 하는 경험으로 미뤄보아 그렇다. 이유 없이 조급한 것이 지난날에서 비롯된 관성인지, 다가올 무언가에 대한 대비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조급하면 놓치는 것들이 생기고, 때때로 후회를 불러온다는 것. 따지고 보면 13만 원은 부담되면서도 지불하지 못할 정도의 금액은 아닌 것이, 더 큰 후회를 막기 위해 나의 인지 체계를 자극하는 수준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산정된 비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로맹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읽었다. 인지저하증으로 생명의 불빛이 꺼져가는 노파 '로자 아줌마'의 임종기와 그녀와 함께 사는 소년 '모모'의 성장기를 담은 작품이다. 모든 등장인물의 동정을 살 정도로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모모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자기 앞의 생' 즉 로자 아줌마와의 삶을 영위하는 데 일체의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일까?' 이러한 확고한 판단 기준 아래 모모에게는 그 어떤 선택도 간단했다.
모모처럼 생각과 행동 사이 시차가 거의 없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그러면 바쁜 일정도 바쁘지 않게 살아낼 수 있다. 바로 조급함을 해소하게 되는 시점이다. 최근 만든 프로그램과 관련해 동작 시간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조건 하나하나에 대해 시스템이 판단하는 시간을 줄이도록 코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바 있다. 이와 같은 이치다. 처절하디 처절한 모모의 삶에서 고작 이 정도의 메시지를 추리는 내가 졸렬해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스스로 절실한 교훈이다.
어찌됐든 차 문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