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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REAL Life Nov 24. 2020

썩은 사과 솎아내기

Feat.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를때가 있잖아요




#1.

사과 농장에 있는 농부들은 여름이 되면

부지런히 상처 난 사과를 골라 낸다.


“바로 떼어내야 한다”며 생채기 하나도

꼼꼼히 챙기시는 농부들.


왜 그렇게 부산하게 사과를 고르시나 여쭤보니

썩은 사과 하나가 있으면 주변에 있는 싱싱한 사과들까지

 “모조리 썩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소위, "썩은 사과 효과"라 불리는 이 현상은

농부가 가장 세심하게 챙기는 부분이자

한 해 사과농사를 좌지우지 하는 핵심 KEY.


사실, 솎아 내는 손길을 보며 떠오르는 건

“썩은 사과 솎아 내기”는 과수원이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심리학에서는 비슷한 개념으로

"거울효과" 를 거론하는데 사람들의 심리에는

부정적인 것이 자신에게 포착했을 때


이를 계속 전이 시키고 전파시켜, 결국

거울을 보듯 모두가 부정적인 것에

똑같이 감염되는 군중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2.

사실, 시각은 인간의 감각체계 중

가장 민감한 부분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민감성에 포착되면

부지불식간에 뇌에 자리잡

은연 중에 자신이 본 것을 기반으로 살아가게 된다.


결국,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은 생각하느냐는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담보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홍수환 이라는

왕년의 권투 세계챔피언 강연을 들었다.

티비도 없던 그 시절 꼬맹이였던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읍내에 나가서 권투 방송을 본다.


4번 K.O당하고도 나중에는 역전승을 한

명승부를 보았던 꼬마 홍수환은

세기의 관심을 끌었던 1977년

자신의 세계복싱협회 챔피언 타이틀전에서


2회 4번 K.O당하고 3회 TKO승을 거둔다. 


30년 전 브라운관으로 보았던

그 흑인 챔피언의 믿지 못할 역전승처럼 말이다.



#3.

군대를 다녀온 후, 돈이 모이면

시간을 내서 짧게나마 여행을 다니곤 했다.


처음에는 혼자 영화를 보는 것도 어색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맨 뒷자리에

도둑 고양이처럼 앉곤 했던 나였지만,


이내 주변에 관심을 끊게 되면

영화를 더 영화답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혼자

여행이라는 것을 나다니게 된 것 같다.


베낭 하나를 둘러메고

춘천행 열차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부산으로 제주로 여행을 다니다

일본으로 유럽으로 나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물에 놀라고 자연에 놀랐지만,

결국 가장 인상 깊게 내 마음 속을 두드렸던 것은

한국과 달랐던 삶의 방식.


특히, 우리나라는 한창 “편의점”이라는 것이

전국에 출범하면서 24시간 생활권을

일본과 함께 뽐내고 있었지만


오후 4시면 가게 문을 닫고 가족과 축구를 보며

저녁을 먹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유럽 사람들을 보며


당시 20대였던 나 역시도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삶에서 놓치고 사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그 생각을 하나 둘씩 키워가면서

속도와 편리를 추구하는 삶도 좋지만

의미와 여유를 갖는 삶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삶의 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리고 몇 년 뒤, 결국 생각지도 못했던

소셜벤쳐를 시작으로 문화기획과

사회공헌 컨설팅을 업으로 살게 되었다.


여행이 알려 주었던 보다 의미있는 삶이

나에게도 뿌리 내리기를 꿈꾸며 말이다.  



#4.

보는 대로 변하고 그 모습처럼 살게 되는

우리네 인생.


그렇기에 자신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다니며 열광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자신다움을 설계하고 지어 나가는

가장 원초적인 자기 발현이리라.


동시에 요란법석한 유럽여행이 아닐지라도

내 주변에 있는 소박한 일상과 인연 역시

그저 놓여진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자신을 만들고 변화시킬 만남과 기회가 숨어있는 시간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소소한 삶은 어쩌면

미래의 비범함을 품고 있는 하루이지 않을까?


마치, 꼬마 홍수환의 미래를 변화시킬

흑인선수를 만났던 읍내의 나들이처럼 것처럼 말이다.



#5.

코로나로 관계가 끊겨진 일상을 마주한다.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며,

이젠 회식도 ZOOM을 켜놓고 한다지만


어쩌면 이 시간을 통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가족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진 것 사실이다.


물론, 아빠가 저녁마다 집에 있어서

서로 어색한 사춘기 부자 상봉이나

자식들과 남편의 끼니까지 모두 챙겨야하는

부들의 세끼전쟁으로


삶이 더 팍팍해 진 것 역시 사실이지만


매일 4시 퇴근해서 가족들과 저녁을 나누며

삶의 의미를 지어가는 유럽의 그 흔한 풍경처럼

우리사회도 이런 낯선 삶의 연습을 이젠

시작 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코로나가 펼쳐내는 이런 환경에

대책없는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애정해보며

보다 의미있는 일상으로 살아내는 것은 어떨까?


주변에 불만 불평이라는 썩은 사과들이

널려 있을 지라도 하나하나 솎아내며

소중한 하루를 지어가는 농부처럼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애정하는 소박한 일상으로 말이다.


바야흐로 With Corona의 시대이다.




*데일리경제 칼럼 [윤한득의 안테나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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