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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어두운 길, 어떤 손전등을 들어야 할까

-경제의 신뢰와 복지의 안전망, 두 개의 불빛이 한국을 살린다-

by Purity and humility

신해철 씨는 <속사정 쌀롱>에서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최소한의 삶을 위해 “운전하다 기름이 떨어졌을 때, 최소한 주유소까지 갈 기름을 넣어주는 것”을 이야기했다.


기름은 차를 멈추지 않게 한다. 그러나 한밤중의 길을 달릴 때는 기름만으로는 부족하다. 발밑을 비추는 손전등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이 맞닥뜨린 경제와 사회의 현실이 바로 그렇다.

다운로드.jpeg <속사정 쌀롱의 고 신해철씨>

이재명 정부 출범 넉 달.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어섰고, 미국은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압박하며 한·미 통화스와프 협상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의회의 셧다운은 세계 금융시장에 불안을 던졌고,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4%로 OECD 평균(62%)보다 훨씬 높다. 청년은 월세와 학자금에 지쳐 있고, 고령층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빈곤율(약 40%)에 시달린다. 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와 복지 모두가 흔들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개의 손전등이다.


첫 번째 손전등은 경제다. 금융시장은 신뢰를 원한다.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300억 달러)는 실제 달러가 들어오기 전부터 환율을 안정시켰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신호 효과’라 부른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200억 달러지만, 단기 외채 비중이 35%를 넘어 위기 대응 여력은 제한적이다. 산업도 방향을 비춘다. 반도체는 수출의 18.5%를 차지하며, 세계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삼성과 SK가 70%를 차지한다. 전기차 배터리 역시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유럽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 기업이 핵심 공급자로 자리 잡고 있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는 지금 산업 현장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그러나 산업의 빛만으로는 부족하다. 가계부채는 1,900조 원을 넘어섰고, 금리 1%p 상승 시 이자 부담은 연간 20조 원 늘어난다. 채무조정과 신용회복 지원 같은 제도는 단순한 개인 구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비 위축을 막는 장치다. 정책 신뢰도 중요하다. 최근 3년간 세제·부동산·대출 규제는 20차례 넘게 바뀌었다.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는 “제도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장치”라고 했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이야말로 한국 경제를 붙잡는 가장 강한 손전등이다.


f1effae9-6fb1-4c42-bf79-da08e8b72402.png <걸어가는 길 - 장성광>


두 번째 손전등은 복지다. 청년에게는 월세 지원과 청년도약계좌가, 고령층에게는 기초연금과 장기요양보험이, 부모에게는 아동수당과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다. 서울시 청년 월세 지원은 월 최대 20만 원으로, 청년이 방을 잃지 않게 붙잡아준다. 청년도약계좌는 정부 기여금을 더해 목돈 마련을 돕는다.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이 저축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이는 작은 희망의 불빛이다.


기초연금은 월 최대 34만 원으로,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고령 빈곤율 속에서 최소한의 생존선을 지켜준다. 장기요양보험은 고령화율이 20%를 넘는 사회에서 가족이 돌봄 부담으로 붕괴되는 것을 막는다. 아동수당과 국공립 어린이집은 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고, 여성 고용률을 높여 사회 전체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OECD 보고서가 지적하듯 보육 인프라는 여성 고용률과 직결된다.


경제학자 베버리지는 복지를 “빈곤·질병·실업 같은 괴물을 줄이는 장치”라 했다. 사회학자 롤즈는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개선되는 제도가 정의롭다”고 말했다. 아마티아 센 박사는 복지를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넓혀주는 것”이라 정의했다. 이 말들은 복지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작은 손전등임을 알려준다.


경제와 복지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제가 흔들리면 복지 수요는 커지고, 복지가 무너지면 경제도 더 빨리 추락한다. 금융의 신뢰와 산업의 방향, 사회적 안전망과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경제의 빛. 청년·고령층·가족을 붙잡아주는 복지의 빛. 이 두 손전등이 꺼지지 않을 때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태양은 멀리 있다. 하지만 손전등을 잃는 순간, 이 길은 완전히 어둠에 삼켜진다. 두 개의 손전등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현실은, 결국 누가 더 밝은 태양을 약속하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꺼지지 않는 손전등을 지켜내는가의 싸움이다.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불빛이 역사를 바꿔왔다. 지금 한국 사회가 붙잡아야 할 것도 그 작은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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