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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나라는 국가경쟁력이 좋은 걸까?

국가경쟁력이라는 말뿐인 허울

by Purity and humility

국가경쟁력... 신문과 방송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접하는 말이다. 대충 정의하자면 상품을 다른 나라보다 더 효율적으로, 더 좋게,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국가경쟁력이 1위라고 금메달 주는 협회도 없는데 이것에 신경을 써야 되는 것은 물론 돈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면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팔만한 물건이 많아지고 이윤마진도 커진다. 이러한 일이 많은 시장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면 노동수요와 자금수요가 증가하고 따라서 임금과 이자율이 높아지게 된다. 이는 개별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뜨리겠지만 국민소득을 증가시킨다. 그래서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표현보다는 "국민소득 증대를 위해서" 혹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라는 표현을 써주길 바란다. 국가경쟁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경제 하는 일이 마치 전쟁이나 축구경기와 같다는 인상을 너무나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상은 결국 국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된다는 논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하지만 성인광고 메일 속에 숨어 있는 경제뉴스를 찾으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경제용어도 충분히 선정적일 필요가 있다.


그럼 선정성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그 계산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만일 어떤 축구 전문가가 피파(FIFA) 랭킹과는 독립적으로 세계 여러 국가의 축구경쟁력 순위를 매기려 한다고 하자. 그는 대표 선수단의 체력, 개인기, 조직력 등을 수치화하고 이를 국가별로 비교할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개인기, 조직력과 같은 것은 수량화하기 힘들기 때문에 설문조사와 같은 매우 주관적인 자료를 사용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분야별 가중치에 따라 종합점수가 확확 바뀔 텐데 도대체 그 기준을 어디서 찾을지 오리무중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의 상식과 계산된 종합순위가 너무 차이가 나지 않게 슬쩍슬쩍 가중치를 조정하는 일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국가경쟁력의 계산으로 유명한 스위스 IMD나 세계경제포럼의 계산 방식도 이와 같은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경제의 체력(노동, 자본), 개인기(기술), 조직력(시장, 제도) 등에 대한 객관적, 주관적 지수 수백 가지를 만든 다음 나름대로의 가중치를 사용해 매년 국가경쟁력 종합순위를 발표한다.


재미있는 것은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핀란드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를 제외하면 국가경쟁력 순위와 1인당 국민소득의 순위는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 IMD의 국가경쟁력 순위와 세계은행의 1인당 국민소득(물가차이 조정)의 순위를 비교하면 상관계수가 85%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두 순위에 전혀 차이가 없다. 우리의 국민소득은 47개국 중 27위고 국가경쟁력 또한 28위다. 자주 언론을 장식하는 헤드라인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은 싱가포르, 홍콩, 대만보다 못해"는 별로 뉴스거리가 아니다. 싱가포르, 홍콩의 1인당 국민소득은 프랑스, 독일의 수준과 같아진 지 이미 오래되었고 대만의 수준도 우리보다는 높다.


FIFA 랭킹이 계속 떨어져서 고민하는 축구 감독에게 체력이 다른 나라 선수보다 약하다는 정보가 유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 성장이 침체된 나라에게 특정 분야에서 점수가 너무 처진다는 정보는 유용한 경제개혁의 방향을 시사해 줄 수 있다.


우리나라가 국가경쟁력이 24년 기준 세계 6위라는 기사가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의 바로 뒤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더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경제개혁을 해야 된다는 논리나 특정기관 발표의 국가경쟁력 종합순위를 대서특필하는 태도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윤대통령의 구속은 풀려나게 되지만 탄핵 심판은 아직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선거가 본격화되면 우리 후보들도 이 단어를 매우 애용하게 될 것이다.

당장 어제 트럼프의 연설에서도 국가경쟁력과 유사한 아메리카 퍼스트는 몇 차례나 언급되었다.


국가경쟁력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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