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층간소음 관련 공지문은 늘 붙어 있어서 주의 깊게 읽어보지 않는데 이번에는 한 면 거울을 다 가리고 여러 공지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눈길이 갔다.
층간소음관리위원회(?)인가 하는 조직도 만들고 아파트 규약도 개정한다는 내용과 함께 다소 리뉴얼(?)된 층간소음주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평소와 문구가 달라 보여서 읽게 되었다.
발뒤꿈치 찍지 말기, 밤늦게 빨래 돌리지 않기 등등 늘 보던 문구였는데 이번에 새로 추가된 문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세게 코 푸는 소리'였다.
충격이었다. 우습기도 하면서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었다.
난 층간소음에는 다소 무딘 편이다. 성격이 무딘 편도 있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단독'주택이 아니라 '공동'주택임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조심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나도 이웃주민에게 피해를 줄 때도 있을 것이고 똑같은 이유로 나도 피해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다. 도로 위 운전처럼 말이다. 나스스로 동의하고 '공동'주택에 입주한 것이다,
나도 아래층 새댁(?)으로부터 층간소음에 대한 민원성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무척 조심스럽게 쓴 편지였다. 남편 업무 특성상 주말은 늦게 일어나는 편인데 아침 일찍 큰 방 베란다 앞에 슬리퍼 크는 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내용이었다. 편지와 함께 간식도 들어있었다. 어린아이가 없어서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하고 있다가 그 편지를 받고는 화들짝 놀랐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워 얼굴도 달아올랐던 것 같다. 이웃주민의 라이프 스타일이 나와 다른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시 그 생각은 접어두고 베란다에 있는 슬리퍼부터 바꿨다. 기존 슬리퍼가 딱딱해서 소리가 좀 나는 편이다. 난 아파는 내부 공간이 아니라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은 좀 세게 닫았던 것도 같다. 그분도 일상생활의 소음은 감당하겠는데 주말 아침만 좀 주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수긍했고 슬리퍼도 바꿨고 이후 조심하겠다는 답장을 써서 조금의 간식과 함께 보냈다.
층간소음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사람들이 생각하는'내가 양보할 기준'과 '내가 감내해야 할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이 차이를 조율하고 조정하고자 층간소음관리위원회라는 조직도 만든 것일 거다.
만약 내가 라이프스타일이 밤낮이 바뀐 사람이라면 나도 밤에 세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비염환자라면 밤낮없이 코를 풀지 않을까
밤에 가만히 깨어있으면 아랫집인지 윗집인진 모르겠지만 휴대폰 진동소리도 들린다, 그럼 밤에는 무음으로 해야 하라고 할 건가?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과 우리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직장, 동네, 동호회 등 우리가 사는 모든 장소와 영역에서 충돌하고 부딪힌다. 이건 어떤 위원회나 법으로도 해결 못할 것 같다. 하나님도 못할 것 같다.
암튼 '세게 코 푸는 소리'는 충격이었다. 코를 살살 풀어야 한단 말인가? 그럼 기침은?
공동주택에 사는 우리는 이웃 주민의 조심을 바라는 마음만큼 '타인의 소음에 대한 나의 둔감성'을 키우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