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에 업무를 시작해 오후 5시에 끝낸다. 짧고 굵게 일한다. 야근도 아주 가끔씩 한다. 정기적으로 한 달에 세 번, 밤 10시까지.
내가 다니는 회사는 교육도 하고 교재 출판도 하는 중소기업이다. 사업 초창기 때 함께 있었다. 무슨 일이든 다 새로워서 참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난 고작 대학생에, 모든 일이 처음이었고, 항상 문제가 터지고, 수습하기 바빴다. 늘 힘이 부쳤고 자주 울었다.
세월이 흘러 회사는 올해로 벌써 15년 차로 접어들었다. 안정기라 업무 강도가 센 편은 아니다. 뭘 하든 다 해 본 일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면 페이가 대기업만큼 많지 않지만, 좋은 점이 있다. 일을 가리지 않고 다 배울 수 있다는 것. 한 분야를 깊이 아는 건 아니지만, 얕게라도 전반적으로 다 파악하게 된다.
우리 회사는 가족회사이다. 부모님이 일구신 가업이다. 두 보스는 부모님, 심지어 내 옆에 앉아계신 직원분도 나의 먼 친척이다. 모든 구성원이 가깝든 멀든 다 가족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족회사가 좋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난 가족회사야말로 장인 정신이 깃든 보석 같은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가족회사가 좋은 게 하나 있다면, 일이 알아서 잘 굴러간다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 맡은 바를 책임감 있게 성심성의껏 해낸다. 서로의 일을 간섭할 필요 없을 정도로 알아서 잘 굴러간다.
난 집단생활에 서툰 사람인데 인간관계 고충이 없어서 너무 좋다. 물론 가족관계 고충이 있긴 하지만. 안 맞는 사람과 부딪힐 일도 없고 눈치 볼 사람도 없다. 나만 눈치를 안 보는 걸 수도 있다.
서로 편의도 잘 봐준다. 서로 양보할 건 나서서 양보해 주고, 모두가 편히 출근하고 잘 지낼 수 있게 배려한다. 그래서 엄격한 룰 없이도 잘 굴러가는 편이다.
안 좋은 점도 있다. 회사와 가정의 분리가 안된다. 부부 싸움, 모녀 싸움, 부녀 싸움 등.. 이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가 회사 분위기에 수시로 영향을 준다. 거꾸로 회사 갈등이 가정사로 발전하는 일도 허다하다. 떼려야 뗄 수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회사 내에서 다툼이 참 잦았다. 죄송하게도 그 중심엔 늘 내가 있었다^^;; 그러다 재작년 내가 결혼하고 독립한 이후 히스테리가 줄었고, 회사 온 식구가 비건으로 전향하며 성품들이 온화해져서 다들 하하 호호 하고 지낸다. 싸울 일이 별로 없다. 물론 여전히 가끔씩 사단이 벌어지고는 하는데, 예전만큼은 잦은 편은 아니라 다행.
요즘처럼 출근이 즐거웠던 적이 없다. 회사의 분위기는 매출이 아니라 사람에 달려있는 것 같다.
일개 회사 직원이지만 난 늘 내가 사장이다 생각하고 일한다. 사장님에게 고충이 있다면? 누가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아닐까. 다 혼자 찾아 배워야 하고, 알아서 일을 만들어내야 된다. 이게 여전히 가장 어렵고 힘들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사업인 것 같지만, 그만큼 삶의 활력을 주는 게 내 일이다.
난 어릴 적부터 일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서 살든 항상 일을 구했고, 쓰는 만큼 돈 벌 궁리를 했다. 그렇게 몇 달 열심히 일하면 어김없이 회의감이 찾아왔다. 이 일을 왜 하지? 이 일 평생 하며 살아야 되나? 매일 9시간을 앉아서 머릿속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며 일의 목적을 묻고다녔다. 번잡한 마음 잠재우고 묵묵히 일하려면 걍 일찍이 가정을 꾸려야 하나 싶었다.
지금은 그 문제의 매듭이 풀렸다. 난 이 일이면 평생 할 수 있겠다란 확신이 있다. 이걸 알게 된 것만으로 난 행운아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평생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다. 교육 사업이란 게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라 좋고, 이 일에 확신이 있고, 무엇보다 '내' 일이라 좋다. 내 일이라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고, 내가 한 만큼 회사가 성장하는 게 보이고, 그만큼 보람을 느끼니까.
앞으로 난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하지만 반드시 내 일이어야 하고, 옳은 일이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어야 한다. 그럼 평생 돈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일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