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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키 Sep 01. 2022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 하는거야

때론 지는 게 이기는 법이니까

외출 중에 받은 장문의 카톡. 친구가 다른 친구와 말다툼 끝에 손절을 당하게 생겼다며 조언을 구했다. 말 다툼의 원인은 서로의 입장차이였다.

취업 준비 중인 친구 H는 회사들이 주최하는 컨퍼런스 등에 참여하며 인사팀, 실무진과 접촉할 기회를 얻기 위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 역시 똑같은 과정을 겪었기에 그 시기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H의 친구인 U는 일찍이 좋은 기회가 생겨 비교적 수월하게 취업에 성공한 상태였다.

그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다 말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U는 본인은 이미 취업했지만 여러 경험을 쌓고 싶으니 다른 회사들의 이벤트에 참여 하고 싶다고 했다.

H는 이벤트의 목적은 지원자와 실무진의 네트워킹을 위한 것이니, 이미 취업한 상태에서 참여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그 뒤에 다른 말들이 오갔지만 대화의 핵심은 회사가 마련한 이벤트를 보는 관점의 차이였다. 딱히 한쪽의 말이 옳거나 틀렸다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H는 자신의 절실함을 가벼이 생각하는 U에게 섭섭했고, 반대로 U는 자신의 의견을 옳고 틀렸다고 말하는 H에게 서운했다.



실은 아주 유사한 경험이 내게도 있었다.

여러차례의 고배를 맛 본 후 애타게 원하던 회사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일이 안풀릴 땐 그렇게도 안풀리더니, 잘 풀리려고 할 때는 또 생각지도 않게 운이 터졌는지 여러곳의 합격 소식을 비슷한 날짜에 동시에 받게 되었다. 가장 원하던 곳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고민을 하던 중, 더 큰 회사로부터 최종 인터뷰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실 마음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지만 좋은 경험이라 여겨 최종 인터뷰에 진지하게 임하기로 했었는데, 그 때 가까운 친구가 이미 마음을 다른곳으로 정해놓고 최종 인터뷰에 참여하는 건 다른 지원자를 배려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 처럼 인터뷰 기회가 절실한 사람들을 위해 인터뷰를 포기하는게 좋겠다고. 

그 당시엔 생각지도 못한 말이라 당황해서 멋쩍게 웃으며 농담으로 듣고 흘렸지만, 정당하게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인데 까닭없이 비난 받는 기분이 들어 섭섭함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얘기할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사람을 피말리게 하는 취업준비는, 도대체 내가 왜 떨어졌는지 알 수 도 없어서 캄캄한 터널을 쉬지않고 걷는 기분이었다.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마음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튼 그 때 얘기는 흘려 듣고 나의 뜻대로 최종 인터뷰에 응했다. 결과는 시원하게 낙방했지만. 

그리고 그 당시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며칠 후에 그 친구도 합격 통지를 받고 가장 원하던 곳으로 취업을 했기 때문이다. 매일 울고 싶다, 너무 힘들다를 염불 외듯이 읊던 우리는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기쁜 사람이 되어 그동안의 괴로움을 좋은 경험이라고 포장까지 하게 되었다.(두번은 못할 짓이지만.)



그래서 H의 마음이 더 잘 이해가 되었다. 취업을 못해서 답답한 마음, 먼저 합격한 친구가 자신을 힘듦을 알아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친구 U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상황이 달랐을 뿐이니까.

H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속상해서 H가 먼저 손을 놓았나보구나'라고 지레짐작 했는데, 반전으로 U가 먼저 손절의 뜻을 표한 것 같았다. 저쪽도 저쪽 나름대로 혼자 쌓아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럴 경우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건지, 그냥 인연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보내주면 되는 건지 고민중이라는 H에게 내가 후회한 경험들을 들려주었다.



악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면 손절하는 게 맞지만, 이렇게 서로의 차이로 멀어지게 될 때 아무 노력을 하지 않으니 시간이 지난 후에 미련이 남는 건 내 쪽이었다. 

친하게 지내다 성격차이로 티격태격 대던 친구와 소원해졌을 때, 마치 버림 받은 사람처럼 상대의 단점만 되뇌이며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곤 했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드문드문 그때의 친구와 지낸 시간이 생각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최선을 다했었나?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내 마음은 100% 상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편적인 단점이나 오해를 크게 생각하느라 그동안 잘 지냈던 시간들을 다 무의미하다고 여긴건 아닐까?

설령 상대방이 잘못을 했더라도, 그 일을 대하는 나의 행동 역시 똑같이 유치하진 않았나?

이런 의문들은 그림자처럼 내 뒤에 남아서 이따금씩 떠올라 나를 괴롭게 했다. 성숙하지 못한 내 자신을 꼬박꼬박 들추어 스스로를 괴롭히는 기분이었다.


친구 H에게도 그 얘기를 해주었다. 

너에게 무례한 친구를 반드시 곁에 둘 필요는 없지만, 너 자신을 위해 좋은 마무리를 하는 건 소중한 경험이 될 거라고. 비록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일지언정, 그런 타인을 대할 때도 어른스럽고 성숙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란 걸 경험하고 나면 자존감이 쑥쑥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고.

정작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매번 어른스럽게 행동한 건 아니지만, 아주 가끔 현명한 처세술을 발휘한 뒤에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으니까.


그리고 끝으로 릴리에게 들었던 말도 전해주었다. 

- 무엇을 하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 하는 거야.


상처준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카운슬러가 했던 말이다. 복수를 해서 너의 마음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똑같이 상처를 주는 스스로의 모습에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너가 되고 싶다던 '어른'의 모습과 더욱 멀어지는 건 아닐까? 그러니 용서하는 것도 결국은 너 자신을 위해 하는거라고. 


멀어지는 관계에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도 - 지금은 비록 져주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결국 나중의 나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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