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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Meow Jul 09. 2019

친구들은 나를 효녀라고 했다

엄마아빠와 31세 딸내미의 이탈리아 여행기 (1)

 소확행과 욜로의 시대에 '여행'은 신성한 것이 되었다.  

 누구나 살면서 해외 여행 한 번쯤 다녀오는 게 당연하고, 퇴사 후 훌쩍 해외로 떠난다면 '쿨'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며, 여행에 관한 글과 에세이, 사진, 정보가 넘쳐 흐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탈리아'는 특히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여행지다. 명품과 유적, 토스카나 평야와 지중해 바다, 역사와 유행, 커피와 파스타 그리고 젤라또. 넓은 범주의 여행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이 가득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60대와 30대, 부부와 솔로 여행객.

 우리 가족에게도 이탈리아는 그래서 좋았다.

 아직 4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본 적 없지만 뒤늦게 여행 늦바람이 든 아빠, 시간과 돈의 낭비를 두려워하는 실용주의자 엄마, 그리고 정보가 많아 엄마아빠를 안내하기에는 용이하지만 그럼에도 식상하지는 않은 여행지를 찾는 나. 세 사람의 니즈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나라.

 이탈리아는 비싼 항공권이 아깝지 않을만큼 자연이 만들어 낸 관광지와 인간의 역사를 담은 유적들이 꽉꽉 차 있으니, 여행을 자주 다녀보지 못한 아빠의 첫 장거리 여행지로도, 걷기 좋아하는 엄마의 실속 꽉꽉채운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약 10여 년 전 이탈리아를 5일 정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생 배낭여행이 으레 그러하듯 25일동안 무려 7개국을 꾸역꾸역 눌러담은 일정에 숨돌릴 틈도 없이 이탈리아를 스쳐 지나간 그런 여행이었지만. 짧은 일정 중에도 이탈리아는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서 친구와 수다를 떨 때면 '아, 그 때 로마 젤라또 진짜 맛있었지', '피렌체 빨간 지붕 정말 예뻤어' '베네치아에서 결혼식 봤던 거 기억나?'하며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이다.

 지난 경험과 아쉬움을 살려 다시 한 번 방문한다면 정말 계획 잘 짤 수 있을텐데 하는 마음이 한 켠에 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로마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던졌기 때문인지.

 그렇게 너무나 많은 여행객들이 다녀가고, 누군가에게는 뻔할 지 모를, 그러나 여전히 많은 여행객의 로망 이탈리아는 우리 가족의 첫 장거리 해외여행지로 간택(?)되었다.



 

"나도 데려가라냥!"

  




 스타벅스에 가족끼리 앉아 일사천리로 항공권을 끊고 나니, 당장 나는 퇴사를, 아빠는 장기 휴가를, 엄마는 … 방학을, 준비해야 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요즘 대세인 '과감한 사표던지기' 식 퇴사는 아니고, 다행히 이직 구직 재취직이 자유로운 편인 직업이다. 그렇다고 퇴사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들에 비해 짊어질 무게가 가볍다는 건 꼭 말해두고 싶다. 대책없이 '너도 퇴사하고 자유를 찾아!' 라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니까.





 가족 여행기를 쓰다보면 자연스레 우리 가족의 성향이 묻어나오게 될 것이다. 옛날 아빠 친구 분이 우리 가족을 보고 묘사하기를 "아빠 진지, 엄마 진지, 딸은 더 진지"한 가족이라고 하셨더랬다.


여행을 준비할 때 '진지'한 가족은 어떻게 할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불안 요소들을 걱정하고 대비하고 공부한다!


 여행의 큰 계획을 짜고 여러 사이트에 접속해서 숙박, 기차, 렌트카 등을 결제하는 일은 내가 맡았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여행을 다니며 (전폭 지원해주신 아빠 감사합니다) 학습되었던 대로 꼼꼼하게 동선을 체크하고, 소요 시간을 계산하고, 예산을 적는다.

 그렇지만 엄마아빠 두 분 모두 마냥 나에게 맡겨놓고 맘 편히 계실 성격은 또 아니셔서, 각종 이탈리아 관련 지식을 섭렵하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도리아식과 코린트식 기둥의 모양을 공부하고, 로마 역사를 겉핥기로나마 종이에 연도별로 정리하셨고, 나에게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의 특징을 물으셨다.

 아빠는 로마 고속도로 톨게이트 지나는 법, 주유하는 법 유튜브 동영상을 반복 재생해 보고, 한 달 전부터 짐을 어떻게 싸야할까 고민하셨다. 이탈리아 ZTL 앱을 깔고, 환전을 하셨다.

  온가족이 금요일 밤 모여앉아 이탈리아 관련 예능을 시청했다.


 



 처음 부모님과 같이 이탈리아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모두 나를 보고 효녀라고 했다.


 부모님과 패키지도 아닌 자유여행을 간다는 게 일단 무리라고 했다. 성인이 된 자녀로서는 부모님과의 의견충돌을 감당하기도 어렵고, 부모님 몫까지 세 사람 계획을 짜고 관리하고 책임지기가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외국의 문화에 익숙치 않은 부모님이 실수하실까봐 전전긍긍해야하고, 부모님의 음식 취향과 컨디션을 신경써야한다 했다.

 얘기를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는 대체로 해당되지 않는 얘기들이었다. 엄마는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보셨고, 아빠도 문화적 포용력이 있으신 편이니 외국 음식, 문화적 차이, 여행으로 인한 일상의 특수성 모두 잘 받아들이실 것이다. 위에 적었듯 여행 공부도 준비도 열심히 하시는데다가, 유럽의 역사나 문화예술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계시니 관광 내용도 흥미로워 하실 것이고, 오래 걷고 돌아다니는 소위 '빡센' 여행을 좋아하시니 이 또한 문제가 없다.

 

 오히려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로 10여 년을 떨어져 살면서 혼자 사는 것에 익숙했다. 갑작스럽게 일상의 모든 부분들을 부모님과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매사 부딪치게 될 테다.

 게다가 예민하고 신중하기가 세 사람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이니 서로의 작은 행동과 말에 과도한 의미부여로 항상 상처를 받곤 하는 것이다. 상대가 어느 부분에서 예민해져 화를 낼 지 모르니 지나치게 매사 조심하고 눈치보게 되고, 가족이 남보다 더 불편해져 버린다.

 친구들과는 여유를 가지고 이해심 있게 접근했을 일들도 '가족'의 문제가 되면 더 자존심 세워 까탈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가족이니까 더 이해해줘야 함에도, 가족이니까 더 많이 이해해줘야지 하고 바란다.


 어쩌면 패키지 여행으로 여행사에 모든 책임을 맡겨버리면 훨씬 편했을 것이다. 다만 우리 가족 세 사람 모두 남들이 짜 준 일정에 고분고분 버스 실려다닐 스타일이 못 된다. 반드시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내' 귀로 듣고, '내'가 납득한 정보들로 직접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 꼼꼼하고 합리적이며 한 번 결정을 내린 뒤에는 책임있게 행동으로 옮기지만, 남이 하자는대로 따라하기엔 너무나 생각이 많은 성격들. 게다가 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하는 내성적인 가족이니 패키지 여행은 역시 무리다.




 자, 이제 항공권은 결제 되었다.

 아주 빡빡한 여행계획도 짜 놓았고 숙소도 예약해두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과 부딪치지 않고 '잘' 다녀올 수 있을까. 30년을 부모님과 지냈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운 가족이란 관계.

 진지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진지한 나는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보다는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걱정을 앞세운다.


 이탈리아의 마법은 우리 가족에게 어떤 경험을 선물하게 될까.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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