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떠난 이를 그리워하다
비가 내린다. 바싹 마른 것들이 물기를 머금고 배시시 부풀어 오른다. 비가 대지를 적실 때, 냄새와 더불어 부풀어 오르는 나무와 풀들은 자신이 나무이고 풀이라는 존재를 상기시키며 스스로 회귀한다. 코끝으로 무작정 들이닥치는 냄새는 너무나도 감각적이어서,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다가온다. 나도 그랬을까. 비가 오면 실체 없는 정서들이 냄새처럼 피어올라, 스스로 회귀하려는 것일까.
빗물이 풀어헤쳐 놓은, 이름 모를 낙엽들이 썰물처럼 떠내려간다. 썰물이 된 낙엽들을 바라보다가, 계절을 잃어버린지 오래된 ‘아름다운 나타샤’가 오늘 밤은 눈이 아닌 비를 맞으며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나타샤!”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내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나타샤 같은 여인과 산속으로 가고 싶어서 눈도 내리지 않는 계절계절 굽이굽이마다 쓸쓸히 기대어 소주를 드셨다. 소주를 드시고 늦은 귀가를 하신 아버지는 나타샤를 사랑해서 잠도 오지 않았고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생의 뜨거움을 단 한 번에 식혀버리셨다. 그런 아버지를 떠올리며 빗물이 헤쳐 놓듯, 나의 가슴을 헤쳐 놓지만 백석의 시가 아련하도록 아름다워서 ‘나타샤 같은 여인, 당신’을 미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가 그런 것이었을까. 부조리함조차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시였을까. 그렇다면 나도 시를 쓰고 싶은데 떠다니는 표상들 사이에서 시어하나 제대로 낚아채지 못하는 나는 안타까운 사연만을 부여잡는다. 마음이 살얼음 마냥, 미말하게 부서진다. 아아, 그대는 왜 시를 안 쓰는가. 이 쓸쓸한 자괴여, 계절을 잃은 오늘 밤, 나도 응앙응앙 울어야겠다.
겨울비가 하루종일 내린다. 당신이 떠난 날처럼, 당신이 돌아 간 하늘에서, 꼭 그날 같은 겨울비가 내린다. 오늘은, 부초 같은 당신의 생을 시인의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 추념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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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詩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