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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하 Jan 21. 2024

블랙독

껴안고 살아야 한다


Georgia O'Keeffe,  Large Dark Red Leaves on White, Date unknown, still life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무탈하고, 매일의 일과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인데, 불현듯 불안이 엄습한다. 그 일과들 사이에서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일들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면, 그 아무것도 아닌 일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그럼 나는 태곳적에 길을 잃은 아이처럼 불가항력 상태가 된다. 그리하여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의 나락으로 빠져 든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를 이 나이에도 여전히 모르겠다.


결국, 이내 곧, 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이 되고 만다. 압력이 높아지고 공황이 점점 더 스며들면, 괜찮아질거야, 가 아니라, 하릴없이 불안하다, 불안하다를 되뇐다. 나는 부정적인 것들을 더 불러들인다. 그러다가 불안의 완급을 넘어, 롤러코스터를 타 듯 조급해지기까지 한다. 이제 세상은 어둠보다 더 짙은 칠흑으로 덮이고, 나는 자꾸 발아래 뭔가에 걸려서 넘어진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소리도 안 나온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이러는가. 이미 가진 것이 너무 많은 나는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누군가 그런다. 에라이,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위로라고 할 거면, 꺼져라.


사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나를 극복하고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온갖 방어기제를 이용하여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고, 살고 싶다가도 죽고 싶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번아웃이라는 우울증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 끔찍한 비밀을 언제쯤 승화시켜서, 나는 나를 꺼내 해방시킬 것인가.


부디, 이 블랙독을 여기에 끄적거리다가, 내일은 또 사라지기를 오늘 밤 기도한다. 내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엄마의 이런 바닥을 보지 않기를, 진심으로 신에게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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