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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화디렉터 Jul 25. 2023

사십춘기 남편의 세 번째 힐링미션

남편의 젊어진 모습을 보고 싶어!

남편에게는 결혼 전부터 새치가 많았다. 새치라고 해야 할지 흰머리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긴 했지만 그나마 결혼 전에는 브리지처럼 새치가 있었다. 그 시절엔 그것도 은근한 매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전체적으로 백발에 가깝다. 아니, 백발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가? 흰머리 반, 검은 머리 반이 골고루 섞여있어서 전체적으로 은발에 가깝다. 하지만 완벽하게 조화되지 않고 서로의 경계를 각을 세우고 대립하는 두 가지 색감의 머리카락을 보고 있노라면 ‘관리 좀 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남편은 30대 초반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 보니 외모를 가꿀 필요를 못 느낀다. (근자감인가?) 사실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나이가 조금은 들어 보이는 게 사회생활에 편한 점이 더 많다고 했었다. 그래도 나는 내 남편이 밖에 나가면 조금 더 젊어 보이면 좋겠고 민첩해 보이면 좋겠고 샤프해 보였으면 좋겠다. 한 회사의 대표로서 좀 더 세련된 인상을 풍겼으면 싶다. (요즘 MZ세대 창업자들은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쓰지 않나?)     




남편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사람과 더 일하고 싶을 것 같냐는 질문도 했다. 전문성이 충만한 사람과 전문성 충만하면서 외적으로도 본인을 가꾸는 사람. 남편은 노코멘트했지만 아마도 본인의 속마음은 전자이고, 후자도 부정할 순 없다고 느꼈기 때문 아닐까. 대답은 내가 대신했다. 물론 같이 일 할 사람으로 전문성이 제일 중요하지만, 이왕 같은 조건이라면 후자를 고르지 않겠냐고. 외부적으로 대표가 보이는 모습에서 회사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지 않겠냐고.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회사를 이끄는 CEO라면 대표의 모습에서 젊은 조직의 장점을 어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글로 쓰다 보니 나는 참 별 걸 다 간섭하는 아내였구나 싶긴 하다. 눈썹문신 얘기가 남편에게 다른 행성 이야기처럼 들렸을 법도 하다.     




아무튼 두 번째 미션을 수행하고 난지 시간이 좀 지나서 남편에게 세 번째 힐링미션을 줘야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어려운 미션이면 또다시 조율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잘 골라야 하는데 생각 중에, 오늘 남편이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간다기에 냉큼 던진 미션.      


[오늘 머리는 바버샵에서 하고 오세요! 예약, 결제는 내가 해줌 ^^]       


이렇게 상냥한 문자에! 예상 못했는데 남편은 또 거절했다. 정말 힘든 남자네. 내가 주는 미션을 매번 한 번씩은 튕겨내고 있어 ㅜㅜ 친구들 남편이 바버샵을 경험해 본 후로는 그 서비스가 마음에 들어서 두 번 세 번 걸음 하게 된다고 들었기에, 내 나름에는 남편을 생각한 미션이었는데 남편은 평소에 가던 미용실의 커트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거기로 가겠다고 고집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힐링미션으로 바버샵 체험 대신 염색을 하고 오겠단다. 오, 그거 괜찮지!     


그동안 내가 남편에게 꾸준히 제안해 온 것 중 하나는 ‘염색을 했으면 좋겠어‘였다. 그런데 그걸 오늘 본인이 스스로 하겠다고 하니 나도 남편의 역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남편이 퇴근해서 머리까지 하고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설렜다. 딸에게도 아빠가 염색을 하고 올 거라고 말해주니, 아빠의 염색한 머리를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딸은 아빠는 흰머리가 있어서 멋지다고 한다. 그건 네가 흰머리가 익숙해서 그렇다니까~     




잠시 후 도어락의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난다. 일곱 음이 울리고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소리. 남편은 두 팔을 활짝 펼치고 걸어들어 온다. “아빠, 어때?”


아이는 “우리아빠 아니야~”하면서 낯섦 반, 장난 반 의자 뒤로 숨고 나는 “훨씬 젊어 보이네! 보기 좋아!”라고 반응한다.      


염색한 남편의 모습을 결혼식 이후로 처음 보았다. 훨씬 젊어져 보이고 사람이 민첩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더 스마트해 보이는 느낌까지 플러스. 그리고 내 남편이 원래 동안이었지. 그래서 그렇게 꿋꿋이 반백발로 다녔구나 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모습이 훨씬 마음에 든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머릿속으로도 달라질 내 모습이 어느 정도 상상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를 실제로 겪는 것과 상상으로 그치는 일은 천지차이다. 남편도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염색한 모습을 그려보았겠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행위라고 느끼지 못해왔던 거다. 그런데 오늘 힐링미션의 후기를 전하며 ‘진작할 걸 그랬네’라는 말을 했다. 사소한 행위였지만 이미지 변신을 하고 나니 마음도 새로워지는 느낌이 든다며 만족해했다.      


얼마 전 나도 3년 만에 단발로 머리를 잘랐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에는 단발머리를 할 때 꼭 앞머리를 같이 냈는데 이번에는 앞머리가 없는 단발스타일을 해보고 싶었다. 자르기 전엔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는데 막상 자르고 나니까 상상속의 모습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혹시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하더라도 머리야 다시 기를 수 있으니까.     




요즘 남편에게 뿐만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도, 또 우리딸을 포함한 온가족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 가족을 ‘변화가족’이라고 불러야겠다.


아무튼 오늘의 ‘사십춘기 남편의 힐링미션’도 대성공.


남편이 미용실에서 보내온 사진, 사십춘기 남편의 힐링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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