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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임은정 Jul 13. 2023

강연을 하게 될 줄이야

(TEDx인천대학교 강연 비하인드 스토리)

TEDx인천대 '나답고 건강하게 인간관계를 맺는 법' 임은정

"우리 팀원 중에 강연하고 싶은 사람 있어?"

대표님 말씀에 잠깐 고민하다가 내가 하겠다고 했다. 무대공포증이 있는데 괜찮겠냐는 물음에 아직 시간 있으니 열심히 준비해보겠다고 했다. 처음에 대표님께 섭외 요청이 온 거였는데, TEDx측에서 팀원이어도 섭외할 의향이 있다고 했단다. 왠지 이런 기회는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발표를 힘들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포스럽게 생각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책 읽으라고 하시면, 얼굴이 빨개진 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염소 목소리로 책을 읽었다. 친구들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이는 게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공포증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꼭 발표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지각하는 바람에 강의실 앞문으로 들어가야 되는 일이 생기면, 차라리 결석을 해버릴 정도였다.


일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심하게 긴장한 티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대표님 말씀으로는, 너무 떨어서 저러다 토하는 거 아닌가 하고 조마조마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랬던 내가 강연을 하겠다고 용기를 낸 이유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는 걸 볼 때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느꼈다. 죽음이 더 이상 남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동안 뭐라도 인생에 남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최근에 다양한 일에 도전해오고 있었고, 강연도 여러 도전 중 하나였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분이 무대공포증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올리신 걸 봤다. 그걸 보고 나니까 갑자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동안 말을 잘 못하는 걸 숨기려고만 하고 발표도 피해 다니기만 했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알아볼 생각도, 노력도 안 했었다. 그 이후로 주변에 말 잘 하는 사람들한테 팁을 물어보기도 하고, 스피치 관련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면서 공부했다.    


그런데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강연 스크립트가 써지지 않았다. 스크립트를 먼저 써야 스피치 연습을 할 수 있는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안 써져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마음의 여유가 고갈 된 채로 교회에 갔다. 강연을 하게 됐는데 준비가 안되서 긴장된다고, 권사님께 말씀드렸더니 여러가지 좋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에 이렇게 마무리하셨다.

'은정 자매가 강연에서 하나님을 전하게 해주세요.'


강연에서 하나님을 언급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었기에 권사님의 기도에 움찔했다. 그런데 기도를 듣고 나니 하나님께서 나를 무대에 세우시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 가서 스크립트를 쓰는데 할 말이 줄줄 나왔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 회복했는지 쓰고 나니 그제야 스크립트가 완성된 기분이 들었다. 녹음을 해보니 주어진 강연 시간에 알맞은 분량이 나왔다. 공간을 대여해서 혼자 리허설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내가 인생을 비관하며 좌절할 때 친구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나중에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나이 마흔 정도 되면 사람들 앞에서 강연도 하고 있을 것 같아.'


나이 마흔이 되기도 전에 친구의 말이 현실이 됐다. 혼자 감격하는 게 참 웃기지만, 얼마 뒤면 정말로 무대에 선다는 생각에 설렘과 벅참으로 눈물 콧물 범벅 된 날이 많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곳에서 앞에 사람들이 있다고 상상하며 열심히 연습했다. 드디어 강연 당일이 됐고, 아침에 가서 리허설했는데 확실히 혼자 연설하는 것과 실제 청중을 앞에 두고 연설하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그동안 연습을 계속 해서 그런지, 긴장했어도 준비한 내용을 대부분 말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란 추상적인 게 아니라, 연습을 많이 하면 그게 바로 자신감이 된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스크립트를 늦게 작성하는 바람에 연습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연습을 더 했더라면 훨씬 잘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리허설을 마치고 뜻밖의 말을 들었다.

"종교적인 내용은 편집될 수도 있어요."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제발 편집 안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바꿔 먹었다. 객석에 있는 청중에게라도 전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대기실에서 혼자 중얼거리면서 연습하고 있었는데, 다음 차례인 연사님이 내 강연 내용을 듣더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드셨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연사님의 남편이 목사님이라고 하셨다. 자신의 강연을 위해서 연습해도 모자랄 시간인데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고 하니 너무 감사했다. 찰나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힘을 더해주시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왈칵 나오려고 하는데 내 차례가 되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든든한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 준비한 내용을 다 이야기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안 해본 일을 마치고 나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벅참을 느꼈다. 그런데 엄마께서 밖에서 기다리고 계셔서 울음을 꾹 참았다. 딸이 어떤 내용으로 강연하는지 몰라서 친구 분한테 대충 둘러댔다고 하는 엄마께, 내가 어떤 내용으로 강연했는지 자세히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어디 가서 과거 얘기하는 걸 안 좋아하시는데, 강연에서 다 말을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시골에서 올라오신 아빠께도 딸이 강연했다며 신나게 말을 했지만, 역시나 자세한 강연 내용을 말할 수가 없었다. 왠지 속상해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얘기도 편집 당할 위기에 처하고, 부모님께도 떳떳하게 강연 내용을 말하지 못하니 내 강연이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인 내용은 감동적이고 좋았지만, 기독교 적인 내용은 불편하게 느끼는 팀원들도 있다는 내용까지 전해 듣고 나니, 아까부터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집에 부모님이 계셔서 크게 울지도 못하고 숨을 죽이며 울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도 울고, 강연이 끝나고도 참 많이 울었다. 실컷 울고 난 후 씻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무대에 올라가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영광 받으시는 무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 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영광을 못 받아서 이렇게 속상해하는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살면서 이렇게 많은 응원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무대에 많이 서본 지인들에게 팁을 얻을 수 있었고, 한 자매님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가르쳐주시고 강연 당일 날도 응원해 주셔서 큰 힘이 됐다. 강연한다는 소식을 지인들에게 많이 알리지는 않았는데, 온라인 세상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응원을 받았다. 기도해 주신다는 분들도 많았다. TEDx 관계자분들도 참 좋으신 분들이었고, 필요한 부분을 세심히 챙겨주시고 장문의 글로 응원해 주셔서 감동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받은 건 생각 못 하고 더 많은 걸 원하는 내 모습이 보이자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감사하며 잠들 수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 힘든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되는 날이 온다고 믿는다.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기로 다짐했다. 연사로 무대에 섰던 경험은 앞으로 하게 될 많은 경험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천사 같은 사람들의 응원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TEDxIncheonU 강연 마음건강 활동가 임은정

+ TEDx인천대학교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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