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금희의 본심, <작가의 본심> 강연 후기
누군가를 알아갈 때 제일 재밌는 것은 나와 같거나 다른 점을 찾는 일이다. 왜 그런진 모르지만 나는 나와 너무 비슷하거나 너무 다른 사람에게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나와 어느 정도는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건 별로 거창한 게 아니라서 아주 시시콜콜한데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면 나는 계단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더 좋아한다거나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에 대한 흥미가 생긴다. 집에만 있는 걸 못 견디는 사람들에게는 집에만 있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뭘까 관심이 생기고, 내선번호를 못 외우는 사람에게서 불현듯 내 기억력의 쓸모를 깨닫고 친구가 될 운명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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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준은 친구를 사귈 때뿐만 아니라 나 혼자 알고 지내는 소설가에게도 적용된다. 소설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라서 나 같은 독자가 소설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대부분 그 작가의 소설이(문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주에는 김금희 작가의 <작가의 본심 - 탈락된 페이지들>이라는 강연에 다녀왔다. 소설가를 소설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은데 소설엔 실리지 못한, 소설가만 아는 탈락된 페이지들을 엿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과연 소설가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하며 패기롭게 후반차를 상신했다. 패기로웠던 이유는 2년 만에 회사에서 연가보상비를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연차 한 톨 한 톨이 아쉬운 상황이지만 소설가를 직접 만나는 일은 회사에서 연가보상비를 줄 가능성보다 더 희박할 것 같았다.
기억에 남는 건 하나의 단편을 쓸 때 약 100개의 파일이 나오는데, 이건 어떻게 보면 100개의 실패라 할 수 있고 더 이상 실패할 수 없을 정도가 될 때 원고를 보낸다는 말이었다. 그 예로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필용이 차를 타고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에 간다고 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운전해서 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걸어서 가는 것으로 바꿨다고 했다. 실제로 드라이브 스루는 잠깐 지나치는 곳이라 장소성도 없어서 독자들이 감정선을 따라오기 힘들 것 같았다고! 메뉴도 처음엔 치킨버거였는데 치킨버거는 지금도 판매 중이어서 단종된 피시 버거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가 소설가에 대해 흔히 하는 착각은 소설가는 완벽할 거라는 생각이다. 소설가는 글 쓰는 게 직업이고 직업이 된 건 글을 잘 쓰기 때문이니까 단 한 번에 소설을 후루룩 완성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강연에서 만난 김금희 작가는 한 편의 단편을 위해 최소 100번을 실패하고, 잠이 많아서 집에서는 작업을 못하기 때문에 집 앞 카페로 자진해서 출근하며, 마감 때는 햄버거와 탕수육을 끊임없이 먹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쓰는 사람도 매번 실패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며 정크푸드도 즐겨 먹는다는 그 사소한 사실에 감동받아서 강연에 오려고 반차를 쓴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됐다. ⠀
김금희 작가를 좋아한다면서 0.5개의 연가보상비를 계산해본 나는 어쩌면 쓰레기 독자다. 그런데 김금희 작가는 이런 갈팡질팡한 독자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소설을 쓸 때는 독자가 몰입해서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쓰는 건 어렵지만 읽는 것도 쓰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다. 독자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좀 더 궁금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작가의 책을 읽어 온 시간에 대한 또 다른 보상이 되었다. 1호선과 2호선과 또 신분당선을 타고 정자역으로 달려온 시간조차도 충분히 가치 있게 느껴졌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금희 작가는 쓰고 싶다는 열망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열망은 인내심과는 다른 의미라고 했다. 글쓰기라는 건 안 쓴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일인데, 그럼에도 의지를 가지고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작가가 될 만한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답변이 질문자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말 같아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답변의 형식을 빌려 온 위로처럼 느껴졌다. 아마 오래전에 작가가 해왔던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구구절절 썼지만 하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본심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강연이었다는 것. 마감 때마다 햄버거를 매일같이 먹는 게 작가의 본심 중 하나라면 햄버거라는 사소한 공통점에도 기쁜 게 독자의 본심이라는 것.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작가의 자질 중 하나라면 적어도 기죽을 필요는 없겠다는 것. 소설이란 ‘받지 않는 전화를 오래 거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던 하루였다는 것. 세상에는 몇 푼의 반차 보상비 - 0.5개의 연가보상비 - 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