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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프로 May 14. 2024

미국의 출산휴가

에어비앤비 본사 출산휴가 정책 파헤치기

지난 일요일은 미국의 어머니 날이었다. 내가 이제 두 아이의 엄마라니. 둘째가 곧 5개월. 원래는 이번 주부터 복직인데 추가로 2주 휴가를 냈다. 정말 눈깜박할 새에 나의 출산휴가가 증발해 버렸다.


에어비앤비는 출산휴가(Maternity Leave)로 최대 5.5-6개월(24-26주)의 유급휴가를 준다. 미국 기준으로 굉-장히 후하게 주는 편이다. 미국은 충격적이게도 나라(연방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유급 출산휴가가 없다. OECD 회원국 중 유급 출산휴가 보장이 없는 유일한 국가란다. 연방법으로 「가족 및 의료 휴가법(FMLA)」이 있어 최대 12주의 부모휴가를 보장하지만 급여는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고용주는 이를 무급으로 할 수 있다. 만약 주(State)에서 별도로 정한 법이 있다면 그 주법에 따라 추가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는 고용주의 재량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주에 사는지, 어느 회사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출산휴가 혜택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은 복지가 좋은 캘리포니아의 주 법을 따라야 하고, 치열한 인재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인지 출산 관련 복지가 매우 후한 편이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이 8주, 10주 만에 복직할 때 6개월 가까이 급여를 100% 받으며 마음 편히 산후회복과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내 상황에 매우 감사했다.


그런데 처음엔 이 출산휴가 정책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아서, 첫째를 낳고 출산휴가를 무사히 마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설명을 읽어봐도 시스템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신청하는 과정에서부터 큰 애를 먹었다. 신청을 무사히 한 후에도 수당을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수당 지급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다 보니 도무지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건지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걸 찾아내느라고 엑셀표를 만들고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는데, 이건 사람들이 실수가 생겨도 따지지 못하도록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 거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이번에 두 번째 출산휴가를 지내며 이제는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한번 정리해보려 한다.  




첫 아이를 낳을 때, 나는 출산휴가도 평소 월차를 쓰듯이 시스템에서 "출산휴가" 선택 -> 쓸 수 있는 출산휴가가 최대 몇일인지 확인 -> 출산휴가 쓸 기간 선택 (시작하는 날짜와 끝나는 날짜) -> 신청 -> 매니저 승인 -> 평소처럼 급여 통장에 급여 입금이 되는 거겠지 하고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웬걸,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출산휴가 24주 = 임신휴가(산전휴가+산후휴가) + 육아휴직

처음에 내가 에어비앤비 출산휴가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혼란을 겪은 이유는 흔히들 ‘출산휴가(Maternity Leave)’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의 실체가 알고 보니 3가지 다른 휴가를 합친 거였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의 출산휴가는 임신휴가(Pregnancy Leave) 산전 4주 + 산후 6주 (제왕절개는 8주), 그리고 육아휴직(Parental Leave or Bonding Leave) 14주를 합쳐 최대 24주(제왕절개는 26주)이다.



임신휴가(산전): 출산예정일 최대 4주 전부터 쓸 수 있는 산전 임신휴가는 캘리포니아 주의 법이 보장하는 제도로 다른 주에는 원래 없는 혜택이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에 근무하는 덕에 덩달아 혜택을 보고 있다. 안 쓰면 없어지고 산후휴가를 더 길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4주를 다 썼는데 완전 꿀이었다. 아이가 예정일에 맞춰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첫째는 2주 반 일찍 태어남), 만삭이 되면 하루종일 몸이 불편한데, 쉬면서 여유롭게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임신휴가(산후): 실제 출산일로부터 자연분만은 6주, 제왕절개는 8주까지 쓸 수 있다.


육아휴직: 임신휴가는 출산준비와 회복을 위한 휴가이므로 출산전후에 무조건 써야 하지만 육아휴직은 아이 출생 후 1년 안에, 원할 때 쓰면 된다. 나는 둘을 붙여서 한꺼번에 썼지만 나눠서 쓰는 사람들도 있다.


출산휴가 수당 = 급여의 100% by 보험회사 + 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의 출산휴가는 최대 24주(제왕절개는 26주)까지 100% 유급이다. 상한선이 없기 때문에 많이 벌던 적게 벌던 원래 버는 만큼의 수입이 보장된다. 한국은 육아휴직 기간이 미국보다 더 길지만 급여는 100% 보장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각자 장단점이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짧더라도 100% 급여보장이 좋은 것 같다.


금액은 보험회사와 에어비앤비가 나누어 부담하는데, 임신휴가의 경우는 보험회사가 내 원래 수입의 60%, 에어비앤비가 나머지 40%를 채워주고, 육아휴직의 경우 에어비앤비가 100%를 지급한다. (만약 캘리포니아와 같이 주에서 법으로 보장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내용이 추가되겠지만 어쨌든 회사가 주 법과 보험이 보장해 주는 만큼을 제외한 나머지를 채워준다!)



첫 출산휴가 때, 휴가 수당이 여러 갈래에서 쪼개져 들어오고, 지급 주기도 서로 제각각이어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수당 지급에 문제가 생겨서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도무지 어디서 구멍이 생긴 건지를 알아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 거라며 욕을 했지만 그래도 100% 주는 것에 감사...


점층적 복직 프로그램 (Return to Work program)

출산휴가와 더불어 에어비앤비에는 출산 관련 혜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점층적 복직 프로그램(Return to Work program)이 있다. 출산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첫 12주 동안은 원래 업무 강도의 80%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나는 월-목만 일하고 금요일은 쉬는 방식을 택했었다.


5.5개월이면 출산휴가로 충분히 긴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첫 번째 출산휴가를 끝내고 복직했을 때, 5개월인 아기에겐 아직도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했다. 모유를 끊기 전인 데다 젖병을 거부했기 때문에 일하는 중간중간 모유수유를 해야 했고, 그때까지도 통잠을 못 자기 때문에 밤에 3-4번이고 깨서 다시 재워야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4일만 일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회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리콘밸리의 IT 회사들은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출산혜택을 주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구글의 경우, 산전휴가 4주, 산후휴가 6/8주는 에어비앤비와 같고, 육아휴직이 18주로 에어비앤비보다 4주 더 길고, 점층적 복직 프로그램(Ramp-up)은 2주로 에어비앤비보다 짧다고 한다.


에어비앤비의 출산휴가 정책은 내가 아이 둘을 다 낳을 때까지 회사를 떠나지 못한 이유 중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ㅎㅎ 아이를 낳기 전엔 복지가 회사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는 복지가 우선순위 중 한 자리를 당당히 꿰차게 되었다. 특히 국가 차원의 보장이 너무 없어서 회사에 따라 받는 혜택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살벌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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