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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마리곰 Aug 17. 2020

배냇이야기 2

죠슈아와 부모님의 상봉_실종아동의 해외입양사례

줄리의 부탁을 받은 그녀는 계속해서 해외입양인들의 연락을 받았다. 중앙입양원도 있고 아이들을 입양 보낸 기관을 통해 친부모를 찾으면 될 텐데 왜 그리들 그녀에게 연락을 하는지 궁금했다. 뭔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들이 아니었을까. 기관들을 통해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을 때 그녀가 뭔가 하나라도 더 알아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줄리 이후로도 그녀는 여러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중요한 연결자가 되어 상봉을 도왔다. 특히 실종아동임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입양된 사례가 있었는데 그녀는 당사자들 못지않게  큰 충격을 받은것 같았다. 해외입양 당사자는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부모는 한국에서 애타게 아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상봉 날까지도 그녀가 상봉의 중요한 연결고리였다는 걸 모르시고 단순히 통역사인 줄로만 아셨던 이 부모님들은 이후에 그녀에게 감사와 감동의 문자를 보내셨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아들과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원도 한도 없다고 좋아하시던 부모님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 아들의 소식이 궁금하실 땐 유경에게 연락을 하셔서 근황을 물으시기도 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가족의 상봉에 자신이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음에 뿌듯해했고 연결다리가 되어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기도 했다.

 

아주 평범한 주부로 자기 가족밖에 모르고 살던 그녀는 점점 변해갔다. 남의 인생의 아주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라며 온갖 귀찮을 수도 있는 입양인들의 메일에 일일이 답해주고 가끔은 통화도 하고 한국에 방문한 그들과 만나 축하를 해주기도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 그녀가 실종아동의 해외입양사례를 정리하여 기고한 기사.


이때부터 그녀는 한국의 실종아동 중 상당수가 해외로 입양 간 사실에 주목했다. 당시에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전화 연락이 쉽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아무리 감안해도 실종아동의 부모를 찾아주려는 노력보다 해외입양이 더 쉬운 일이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 주변의 어르신들 말씀이 그 당시 아이 한 명을 입양 보내면서 고아원이나 기관이 돈을 많이 받아서 그랬을 거라고 한다.  살기 어렵고 가난한 한국에서 크는 거보다 잘 사는 미국 가서 크는 게 아이한테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은 해외입양의 이유일까 변명일까....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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