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마리곰 Apr 24. 2020

코로나가  한방에 몰아낸 20세기 교육

중, 고, 대 세 자녀의 온라인 개학을 지켜보는 엄마의 교육에 대한 단상

  온라인 수업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  

 우리 집엔 본의 아니게 싸이버 학생이 되어버린 아이가 세 명 있다. 싸이버 중학생, 싸이버 고등학생, 싸이버 대학생.

 

 덕분에 나는 대한민국 온라인 수업의 진행상황을 골고루 지켜보게 되었다. 학교 별로 편차도 많이 있고 뭐 시작하는데 시행착오가 많아서 불편함도 불평 거리도 많다. 집에만 있어도 친구들과 카톡이나 페북으로 소통하는 아이들은 다른 학교의 진행상황도 서로 잘 알고 있다. 어느 학교 어느 선생님이 부지런하고 세련되게 온라인 수업을 잘하시는 지도 소문으로 알고 있다. 어느 학교가 합리적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학습 방향을 잘 끌어 가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개별 선생님이나 학교를 비난하거나 수업 영상이나 이미지를 공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학교도 선생님도 이런 사태는 처음이니까 답답하더라도 비난하기보다는 부족함을 서로 이해해야 한다.  학교의 오래된 컴퓨터로 갑자기 온라인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선생님들도 힘든 점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다만 앞으로 다가올 교실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배울 일이 많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냥 있다 보면 오히려 선생님이 학생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의 고통을 선생님들이 더 겪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노트북이 두 대 있고 탭도 있고 오래된 데스크톱 컴퓨터도 하나 있지만 결국 노트북을 하나 더 사게 되었다. 아이 셋이 각자 방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어색하던 초창기와 달리 아이들도 나름 적응해간다.


 중학생 막내는 온라인 수업을 듣는 동시에 컴퓨터 화면에 아이들끼리의 카톡창을 띄워놓고 있다. 수업이 될까 싶지만 수업 화면에 오류가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카톡방으로 아이들과 소통한다. 바로바로 그건 오답이래. 넘어가면 돼. 화면 어디에 있는 메뉴로 가야 해를 서로 알려준다. 수업 중 딴짓하며 카톡 이모티콘을 따라 그린 그림을 소규모 카톡방에 올리며 낄낄  대기도 한다. 교실에서 선생님 몰래 딴청 하며 쪽지를 돌리던 우리의 옛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수업 영상만 볼 때는 졸려하던 녀석이 수업을 들으며 카톡방으로 떠들 수도 있어서 신났다. 선생님의 지적도 안 받고 떠들 수 있다니. 죽이 잘 맞는  친구랑 톡으로 떠들기도 하고 단체 톡방으론 공지를 주고받는다.  수업 못 들은 부분은 되돌려 듣기도 되고...
아 이런 신세계...


고등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아직 교복 입고 등교해보지도 못한 꼼꼼한 둘째 딸. 우리 집에선 제일 부지런한 아이라 온라인 개학을 하기도 전에 학교 홈피에 올려진 영상들을 이미 다 찾아보았다. 영상이나 공지가 많지 않으니 다른 학교는 어찌하고 있는지도 궁금해하며 비교하고 좋아하기도 투덜대기도 한다. 며칠 전부터는 몇 달째 집에만 있어서 살이 쪘다며 아침마다 근처 공원을 뛰고 줄넘기를 하고 들어온다. 9시가 되면 카톡으로 출석을 하곤 새로 사준 노트북을 흐뭇하게 켜고 등교를 한다.  온라인 클래스룸에서 학교 교과서에 맞추어 링크해준 EBS 영상을 보는 과목도 있고 담당 과목 학교 선생님께서 직접 준비하신 영상도 있다. 프린트물은 인쇄를 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준비한 새 노트에 필기를 열심히 하고 뿌듯해한다. 일반 공립 고등학교인 둘째의 학교는 쌍방향 수업은 없다.


 대학생 딸은  쌍방향 수업을 할 때면 미리 나와서 내게 경고한다. "조용히 해야 해요  엄마. 갑자기 노래하거나 큰 소리로 얘기하면 엄마 목소리 온라인으로  생중계됩니다."  허걱...

 지하철이던 버스에서 던 전국 어디서나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는 게 자랑인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교실에서는 와이파이가 잘 되지 않던 학교. 천명이 넘는 전교생이 있지만 교실 컴퓨터는 오래되어 개별 노트북을 가져와서 수업하는 선생님도 계시던 학교. 수업에 방해될까 봐 아침이면 휴대폰 수거 가방으로 아이들의 휴대폰을 걷던 학교.

4차 산업혁명이 어쩌고 하며 너희들은 새로운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겨우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가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던 학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술대회나 토론대회를 여는 것이 변화였던 학교. 줄 세우기가 전부였던 옛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주입식 교육을 하던 학교.

20세기 한국학교. 아주 조금씩 변화해왔으나 크게 달라진 건 없던 학교를 코로나는 한방에 정리했다.


21세기를 맞은 지  20년 만에 21세기 교육으로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정말 한방에 많은 것을 바꿔버렸다.

전국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빛의 속도로 갖추게 했다. 아이들의 스마트기기를 뺏고 책만 가지고 수업하며 수행평가와 시험 점수를 무기로 아이들에게 여전히 시험공부하기만을 요구하던 선생님들은 이제  새로운 스마트 환경에 적응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대한민국 선생님들 파이팅이다.

앞으로  교육에 더 많은 좋은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입시제도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싸우지 말고 누구나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집중하면 좋겠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수용소 같이 생긴 학교 환경도 크게 손보고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다 같이 가면 좋겠다.

 위기가 닥치니 우리나라의 자산은  인간과 시스템, 잘 교육된 국민과 잘 만들어진 시스템 의료보험제도라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나라 시민의식과 의료보험제도가 얼마나 감사한지 절절하게 느낀다. 선진국인 줄로만 알았던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안전한 대한민국. 고생 많은 의료진과 봉사자들에게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고 물건 사재기는커녕 필요한 곳에 나눔을 실천하는 나의 이웃들에게 감사한다.

이제 우리는 교육선진국으로도 도약하면 좋겠다. 똑똑한 아이들이 내신 경쟁에 입시경쟁에 줄 서는 것부터 배우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법,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법부터 배우면 좋겠다.


 교육은 대체 어디부터 손봐야 할까. 입시제도를 깔짝깔짝 손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몇십 년간 보고 또 봐 왔으니.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특목이나 자사고의 존폐, 또는 학종이냐 정시냐 따위의 편협한 입시위주의 교육 이슈가 아니라  공교육 환경개선과 교육의 질에 관한 이슈가 계속되면 좋겠다. 특목 자사고가 잘하는 거  있으면 그 학교를 없애는 것이 평등교육이라 하지 말고 공교육에서 더 좋은 교육받을 수 있게 하는 쪽으로의 투자가 막대하게 있으면 좋겠다. 많은 담론이 형성되길...  우리의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면 좋겠다. 그리고 온라인 교육으로도 강의 잘하는 선생님과는 누구나 다 만날 수 있는 세상이고 정보는 널려있으니 학교는 학생으로 하여금 널린 정보 중 좋은 정보를 잘 찾고 활용하는 법을 배우게 하자. 21세기 학교는 스마트한 환경을 장착하되 친구들과의 경쟁보다는 좀 더 따뜻하게 배려하면서 즐겁게 놀고 배우며 생각하며 활동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바닥부터 다시.


어쩌면 우리는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부터 다시 생각해 볼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온라인개학 #코로나 #교육 #온라인교육 #교육선진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