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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May 14. 2023

사람은 안 바뀐다. (쉽게는)

내면 소통 - 김주환


 한국 사회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 두려움은 실체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체가 없다. 우리는 환상을 걱정하며 자신의 내면에 속삭인다. 오지 않을 미래를 계속 시뮬레이션 하며 두려움을 키운다. 이는 현재에 머물지 못 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낫는다. 스트레스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스트레스가 없어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 하면 그것이 쌓여서 트라우마로 변할 수도 있다. 걱정이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순간에 머물며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질문에 답이 있다. 말 그대로 이 순간에 머무르면 된다. 순간에 머무는 것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행복에 다가가게 된다. 


 '자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 자아, 자의식, 의식, 마음, 같은 말 같으면서도 설명을 하려고 하면 당최 뭐가 뭔지 헷갈린다. 책에서는 자아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기억 자아, 경험 자아, 배경 자아.


 기억 자아란 쉽게 말해 '나'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들을 의미한다. '나'라고 느끼는 '나', 말이 어렵지만 내가 나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그런 기억의 덩어리들이 이야기를 통해 '기억'된 나이다. 설명하니 어렵지만 한 마디로 '내가 기억하는 나'가 기억 자아인다.


경험 자아란 그런 나를 떠올리고 일상적인 경험을 하는 '나'다. 맛을 느끼고 감정을 느끼고 아픔을 느끼는 자아. 경험 자아는 의식하기가 쉽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을 먹는 나에게 집중을 해보라. 아니면 내 팔을 꼬집고 아픔을 '경험'하는 내가 있을 텐데 그 자아를 느껴보라. 바로 그 것이 경험 자아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방금한 행동은 경험 자아를 '관찰'한 것이다. 관찰은 타자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험 자아를 관찰한 행위자는 누구일까? 그것이 바로 배경 자아다. 배경 자아는 그저 알아차릴 뿐 주체적인 대상이 아니다.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방금 했던 행동처럼 경험 자아가 느끼는 것을 관찰할 때 그 일을 배경 자아가 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배경 자아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배경 자아를 느끼는 대상은? 어렵게 들리겠지만 배경 자아를 관찰한 자아 또한 배경 자아이다. 자아란 사실 세 가지로 분류할 뿐 세 가지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변증법적인 관계에서는 셋이 있어야 둘이 존재할 수 있고, 둘이 존재한 연후에야 하나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제3의 자아를 깨닫는 순간 그 제3의 자아를 바라보는 또 다른 제4의 자아의 관점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무한히 반복될 수 있다. 이러한 반복의 과정이 우리를 깊은 내면소통으로 안내한다. (p. 188)


 서두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복을 찾을 것인지 이야기 했다. 우리의 뇌는 몇 만년 전 원시인의 뇌와 별 다를 게 없다. 몇 만년은 극적인 진화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기간이다. 우리의 뇌는 들판에서 멧돼지를 만났을 때 순간적으로 맞서 싸울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이 낫다면 싸울 태세, 도망갈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똑똑한 우리의 뇌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쓴다. 근육의 힘을 최대한 사용하기 위해 온 몸에 혈액을 평소보다 많이 보내고 아드레날린을 분출한다. 그리고 먼저 소화 기관 같은 즉각적인 생존에 필요 없는 기관에 혈액을 차단한다. 죽네 사네 하는 순간에 소화나 시키고 있을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평온을 되찾으면 몸은 다시 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원래대로 돌아간다. 


 주마등도 같은 원리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절벽에서 떨어질 때 뇌는 '죽는구나' 하는 것을 단번에 느낀다. 죽음의 위기에서 뇌가 하는 일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다. 그래서 온 사력을 다해 자신이 이때까지 저장했던 모든 기억을 다 꺼내보며 이 순간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는 행동을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아왔던 순간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어떤가? 순간적으로 근육의 힘을 내어서 극복해내야 할, 목숨이 위태로운 일들이 있을까? 사실 거의 그런 일은 없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은 여전하다. 직장 상사로부터 혼이 나거나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등. 그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는 멧돼지를 만났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소화력을 떨어트리고 혈액을 온몸에 퍼트리고 아드레날린을 분출해 심장을 빨리 뛰게 하는 것이다. 멧돼지는 피하면 해결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스트레스는 만성적일 수밖에 없다. 상사를 매일 피해다닐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이런 스트레스 반응을 매일 겪다 보면 소화는 안 되고 염증이 나면서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 생긴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를 지키기 위한 뇌의 반응이 우리를 서서히 죽이는 것이다. 


하나는 뇌의 기본적인 작동방식 가운데 일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잘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적절한 훈련을 한다면 뇌의 작동방식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p.33)


자아는 '내가 나에게 한 이야기'의 집적물이다. 그렇기에 내면소통을 통해서, 즉 내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p. 169)


 우리는 이런 뇌의 작동 방식을 훈련을 통해 바꿀 수 있다. 스트레스를 안 받겠다고 결심하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다. 굳은 결심이나 마음 먹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반복된 훈련과 실행을 통해 마음 근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과정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는 편도체인데, 편도체는 포유류의 뇌라고도 불린다.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살아남기 위해 몸을 조작한다. 이 부위를 안정화 시키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고 전전두피질 중심으로 신경망을 활성화 해야 한다. 


 뇌의 습관적인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내면소통의 핵심이고 이는 책에서 설명하는 여러 명상을 통해 훈련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배경 자아를 알아채는 것, 내 감정과 생각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면 감정과 생각에 휘둘려 행동하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습관적으로 나에게 말하는 방식이 변하게 되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한 호흡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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