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가 점점 성장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주어진 퀘스트를 이행하기만 해도 웬만큼 쉽게 성장할 수 있다. 그만큼 성장하는 재미를 느끼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나'라는 캐릭터를 성장시키기란 정말 어렵다. 게임처럼 주어진 길을 따른다고 마냥 성장하지 않는다. 남들이 정해놓은 테크트리를 따른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정체는커녕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나 강연, 조언들은 넘쳐난다. 물론 그것들이 도움이 되고 제대로 따라만 한다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곧바로 나오지 않을 때면 불안함이 커진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남의 성장 스토리가 아닌 내 성장 스토리를 통해 얻은 교훈은 좀 더 확신을 가지고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언제 성장했는지 돌이켜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성장은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물론 더 다양한 방식으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겠지만, 자의적이고 주도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식은 아래 3가지라 생각한다.
나는 커리어를 개발자로 시작했다. 하지만 비전공자에다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니 성장이 느렸고 개발 실력에 대한 자신감 또한 현저히 낮았다. 아직도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은 바닥을 기어 다니지만 그래도 이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성장의 가능성을 느낀 기간이 있었다. 어렵기로 소문난 컴퓨터 공학 온라인 교육 기관에 비싼 돈을 들여 배울 때였는데, 한 과목에 1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내야 했다. 가격만큼 매주 나오는 실습과 과제의 양은 어마어마했고,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지만 숨을 허덕이며 이 악물고 진도를 따라갔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진도를 따라가려 노력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역시 돈이 걸려있어야 열심히 한다. 음?)
그렇게 힘겹게 실습, 과제, 시험을 치르면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코딩이 갑자기 쉽게 느껴지던 순간이 아직 기억이 난다. 비슷한 난이도의 코딩 과제는 시간을 들이고 고민을 계속하면 풀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교육 기간은 단 4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짧은 기간에 얼마나 많이 성장할 수 있었겠냐만, 그곳에서 얻은 자신감은 더 어려운 도전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자랄 때 한 단계 성장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몇 년 전 교회 청년부를 열심히 섬기던 때에 100명 남짓 되는 그 공동체의 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일생을 내향적이고 소극적으로 살아왔던 나는 절대 내가 감당하지 못할 자리라 생각하고 거절했다. (군대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시켜준다는 분대장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당시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었고 억지로 떠밀리듯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실제로 경험했다. 이 말은 나쁜 의미로도 쓰이지만 나는 좋은 의미에서 사람이 만들어짐을 경험했다.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본인이 평소에 쓰지 않는 숨겨진 힘을 쓰게 되는 것 같다. 일이 눈앞에 닥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이면 결국 방법을 찾게 되고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잠재력을 확인하면서 무엇이든 주어진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그 상황을 뛰어넘을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한 동안 책을 정말 많이 읽던 시기가 있다. 그러다 그냥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은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는 소극적 독서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만의 챌린지를 만들어서 1주 1권의 책을 읽고 무조건 서평으로 남기는 적극적 독서를 실천해 보기로 했다. SNS에 공표를 하고 1주라도 빠지는 날이 있다면 제일 먼저 제보를 하는 사람에게 커피를 사주기로 했다.
그렇게 매일 책을 읽다 보니 짬을 내어 책을 읽는 습관이 생겼고 문해력이 올라 책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부수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책을 그저 읽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으니 훨씬 깊이 있게 독서를 하게 되고 내용에 대한 이해도도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그렇게 1년 동안 1주도 빠짐없이 책을 읽으니 사람 자체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순간순간 책을 읽을 때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꾸준하게 읽고 쓰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니 놀라운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쌓는다면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 이야기도 결국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남의 성장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처럼 본인의 성장 경험을 한번 되돌아보면 어떨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경험은 나를 설득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돌아보면서 반성도 많이 하게 되고 마음을 다잡게 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나는 또 성장의 계단을 한 계단 오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