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1일 차_아내의 코로나 확진
코로나는 참 질 나쁜 녀석이에요. 사람이 관계할 수 없도록 막고, 거리를 두게 하니 말이에요
정확한 출처는 모르지만 어느 매체를 통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뉴스에서의 확진 소식, 매일 확진자 발생 수를 체크하는 정도.. 삶에서 귀찮지만 지켜야 하는 방역수칙을 지키는 정도.. 딱 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코로나 19가 이제는 내 삶을 후벼 파는 현실이 되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여보, 너무 걱정돼. 어떡하지?”
“너무 걱정하지 마, 어제 병원에서도 코로나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했잖아. 단순히 열이 나는 걸 테니 신경 쓰지 말자”
이틀 전, 아내가 일어나자마자 두통을 호소했다. 늘 주말이 되면 주중 업무의 스트레스와 피로감으로 종종 두통을 호소하던 아내였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두통약을 먹으라고 얘기했다. 아내는 이내 열이 나기 시작했고, 하루가 지나도 쉬이 가라앉질 않자 1339를 통해 안내받은 안심병원 응급실에서 코로나 검사까지 받았다.
사실 검사를 받은 상황에서도, 코로나 확진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항상 아내는 환절기에 비염으로 컨디션의 저하를 겪었기 때문에, 또 이사 준비로 이것저것 치우고 짐을 싸다 보니 몸살 기운이 왔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나에게 코로나 검진은 불확실한 가능성으로 걱정하는 것보다는 음성 판정을 받고 마음 편히 지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어머…. 뭐야… 나 코로나 양성이래 여보”
아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힘들어하던 아내는 정말로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머리를 무엇인가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인데 이번엔 그럴 수도 없다. 머릿속이 멍했다. 생각의 회로가 멈춰 버린 것처럼 말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상황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 확진 문자를 받은 이후 슬퍼할 잠시의 시간도 없이 이내 아내는 각종 보건소 및 관련자의 연락을 받아 내야 했으며, 아내의 밀접 접촉자인 나와 아이는 코로나 검사를 위해 보건소의 안내를 기다려야 했다. 나와 아내의 직장, 아이의 어린이집 역시 이 문자 하나로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내 직장에서는 나의 확진 여부가, 어린이집에서는 아이의 확진 여부가 중요한 만큼 수시로 전화해서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내일모레부터는 추석 연휴가 시작인데 그전에 대책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양성이냐 음성이냐에 따라 발생하는 시나리오의 차이는 너무 명확했다.
카드 사용내역, 이전 2일간의 동선을 기억하고 제출하느라 아내는 정신이 없었다. 아이도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최대한 엄마 아빠의 말을 듣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남편분과 아이는 지금 보건소로 오셔서 검사받으시면 되고요, 밀접 접촉자이시기 때문에 오늘부터 2주간은 댁에서 자가격리를 하셔야 합니다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추석 연휴 끝나고 바로 하려고 했던 이사계획도 틀어졌다. 추석 연휴에 천천히 짐을 싸고, 연차를 써서 편하게 이사하고 뒷정리를 하려고 했던 아름다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잡아놓은 예약을 모두 취소했다. 다행히 집에서 나가야 하는 마지노선과 자가격리가 해제되는 날이 동일하여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혹시 모르니 하루만이라도 늦출 수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생활치료시설로 이송이 된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정신없이 전화를 받느라 준비물들을 내가 대신 챙겨줬고, 구급차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가 코로나에 걸려서 지금 병원 같은 곳으로 가야 한대. 엄마 얼른 낫고 올게
아빠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알았지? 우리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애써 아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도 슬퍼하는 모습보다는 극복할 수 있다는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게 웬 생이별인지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한 마음이 가득했다.
불안함이 찾아왔다. 아이와 나 둘 중 한 명이라도 양성이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떤 대안이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대안을 고민했다. 내가 양성일때, 아이가 양성일때, 둘 다 양성일때, 둘 다 음성일 때 각 상황에서 확인해야 하는 것과 필요한 도움이 달랐다. 제발 둘다 음성이길 간절히 기도했다.
결과는 내일 나온다고 하는데...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는 아이에게 이 모든 상황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얘기해 줘야 했다. 엄마 아빠가 잘 극복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아이도 알아듣는 눈치였으나 당장 엄마를 못본다는 사실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5살 배기 아이와 함께 2주간 자가 격리를 하며, 육아를 하고, 격리 해제와 동시에 이사 갈 준비까지 마쳐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센터로 이송된 아내가 지치지 않고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심리적 정신적으로 지원하는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음을 다잡고자 이렇게 글의 힘을 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