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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Oct 14. 2020

고열 증상이 가져온 변화

자가격리 8-9일 차. 욕심을 내려놓기

새벽 4시쯤 뒤척이다 깼다. 체온을 재니 38.3도. 아직도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입맛도 없어 어제 점심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더부룩한 배는 이제 좀 진정되었다. 아이 체온이 정상임을 확인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이는 아무리 늦게 자도 기상시간은 같은데, 신기하게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난다. 어제 6시 반에 잠든 아이는 오늘 아침 6시 반에 기상했다. 평상시처럼 7시 반에 일어나면 얼마나 좋아. 아이는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잠들어 있는 내 모습을 보고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목소리로만 깨운다.


푹 잠을 잤더니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는지 아침은 훨씬 나았다. 아직까지 근육통은 있지만 열이 내렸음을 체감했다. 체온을 재보니 36.8도. 밤 사이 열이 내린 거다. 아무런 동반 증상 없이 열이 내리다니... 열이 내렸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지난번 검사 결과는 오전 9시경에 나왔으니 이번에도 비슷하게 나오겠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마음만 분주하게 있었다. 아내와 통화를 하며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 별로 대책을 논의했다.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 들이었다. 누구 하나라도 양성 판정이 나면 정말.. 대책이 없는 벼랑 끝이었다.


검사 결과가 카카오톡으로 오기 때문에 가장 큰 볼륨으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설정해 놓았다. 8시 반 정도부터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카톡~'하고 소리가 날 때마다 화들짝 놀라서 전화기를 쳐다보는데 오늘따라 다른 곳에서 이렇게 카톡이 많이 오는지... 보건소에서 오는 벨소리만 바꾸고 싶을 정도였다.


9시가 되어도 연락이 오질 않자 1분 1분 지날수록 염려는 더 커져만 갔다. 9시 10분, 20분...'혹시 진짜 양성은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의 고열은 이상했다. 그렇기에 더욱 '음성'일 것이라는 내 확신은 속절없이 휘청이고 있었다.


<ㅇㅇㅇ구 보건소 검사 결과 안내>
xxx님께서 보건소에서 실시한 코로나 19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예방수칙을 준수해 주세요 

오전 9시 26분, 음성 판정 연락을 받고 주저앉았다. 혹시나 내가 잘못 읽었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꼼꼼히 읽었다. 나 음성이지. 음성 맞는 거지.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가장 먼저 아이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아빠 검사 결과 나왔는데 괜찮대. 안 아프대.. 건강하대.. 이제 아빠가 장갑을 벗고 너랑 같이 놀 수 있어!!!"

"어제 코쑤신거 나왔대?"
"응 이제 괜찮대!!"
"예~ 아빠 건강하다. 건강하다!"

아빠가 위생장갑을 벗을 수 있고, 함께 놀 수 있다는 말이 가장 기뻤을 거다. 어제 하루 놀지 못했으니, 이제 놀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단비 같았을까.


걱정하고 있을 가족과 주변 분들에게 바로 이 사실을 알렸다. 아내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을 쓸어내리고 울기 시작한다. 가장 걱정 많으셨던 부모님은 소식을 듣자마자 너무 기뻐하셨다. 어젯밤엔 한잠도 못 주무시고,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셨다고 하신다. 그 2주간 격리하는 걸 몸 관리 잘 못하고 걱정을 끼친 아빠가, 남편이, 아들이, 사위가 되어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조용히 지나가면 좋았을 이 격리기간에 이런 클라이맥스 요소까지.. 너무 힘들고 지친다는 표현이 입밖에 나오기 시작했다.


"여보.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 모든 거 다 잘하려고 하지 마. 음식도 그냥 시켜먹고, TV도 그냥 많이 보여줘 지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 브런치 글도 쓰지 말고 그냥 쉬어"

"응, 알았어. 내 몸 관리를 좀 해야겠어"

아내는 울면서 나에게 말했다. 코로나 확진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아내에게 오히려 짐이 되면 안 되기에 격리 생활에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격리생활. 누구보다 잘해보자'에서 '건강히 완주하자'로 변화가 필요했다.


자가격리를 하며 놓친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을 소홀히 해서 이런 위험이 발생했겠구나 싶었다.

'나는 언제든 확진이 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밀접접촉자이다.'

'지금 내가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부분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 마치는 것이다'

'내가 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그냥 아이에게 많은 영향이 가지 않도록 격리기간 중에도 평범한 일상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빠랑 있는 동안 재미있게 놀면서 엄마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상쇄해 주고 싶었다. 전심을 다해 놀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줬다. 좀 더 잘해 보겠다는 의욕과 이삿짐 싸기라는 특수 상황이 몸을 퍼지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며칠 남지 않은 시간, 좀 더 내 몸이 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1) TV 시청시간을 늘리기: 내가 피곤함을 느끼는 순간이 오고, 쉼이 필요하겠다 싶을 때는 혼자 놀 수 있게 하거나 TV를 보여주기.

2) 배달음식 시키기: 우선 내가 음식을 만드는 횟수를 줄이고,  이틀에 한번 꼴 정도로 배달 음식을 시켜서 음식 준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아무래도 난 장염 증상이 생긴 것 같으니, 죽을 시켜서 먹자.

3) 브런치 글쓰기 중단 : 건강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브런치 글쓰기 중단. 사실 그날그날 일기로 남기고 싶었지만, 글 쓰는 것도 많은 체력이 소요되기에 당분간 중단. 회복 후에 다시 작성하는 것으로.

4) 새로운 놀잇감, 책 구매 : 아무래도 새로운 놀잇감에 대한 탐색과 새로운 책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놀이 시간을 다양하게 구성 가능하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부탁.

5) 이삿짐 싸는 것 최소화 : 건강 회복 후 조금 더 시간을 소요해서 짐을 싸는 것으로 하고, 웬만한 것은 버리기


자. 이렇게 해서 남은 5일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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